[볼스트릿저널]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진짜 타율은 4할6리가 아니다?


메이저리그 사상 마지막 4할 타자는 1941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왼손 타자 테드 윌리엄스(Theodore Samuel Williams)였습니다.

'타격 기계' 또 혹은 '타격의 교과서'라고 불렀던 그가 4할 타율을 기록한 지가 벌써 80년이 더 지났고, 이 분이 타계하신 지도 20년 지났지만 여전히 미국 야구계에서는 역대 최고의 완벽한 타자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 4할 타율을 기록했던 1941년 그 시즌 마지막 날의 신화적인 이야기는 야구팬이라면 꼭 알아둬야 할, 그러니까 술자리 같은 데서 절대 빠지지 않는 안주거리가 될 수 있는 굉장히 재밌는 야구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림같은 스윙을 시전했던 테드 윌리엄스는 역대 최고로 완벽한 타자로 추앙받습니다.

시즌 마지막 날을 남기고 테드 윌리엄스의 타율은 0.39955, 반올림하면 당연히 4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윌리암스는 시즌 막판에 미니 슬럼프였습니다. 그러자 감독을 비롯해서 주변에서는 모두 마지막 날 경기는 뛰지 않는 게 좋지 않겠느냐, 어차피 4할을 만들었는데 결장하라고 권했습니다.

전날 비가 와서 하필 그날은 필라델피아와의 더블헤더였습니다. 두 경기를 망치면 4할은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벤치에만 앉아 있어도 ‘꿈에 타율 4할’은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 윌리엄스가 직접 한 이야기를 옮겨보겠습니다

“시즌 마지막 날을 남기고 내 타율은 0.39955까지 떨어졌다. 물론 당시 계산법으로는 딱 4할로 기록될 그런 기록이었다. 우리는 필라델피아와의 더블헤더를 남기고 있었다. 날이 선선해질수록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6월에는 4할3푼6리를 쳤는데 8월말에는 4할2리로 떨어졌다. 9월에 4할1푼3리로 조금 올랐지만 마지막 열흘간 내 타율은 매일 거의 1리씩 떨어졌다. 내 타율은 이제 겨우 4할에 턱걸이하고 있었다. 크로닌 감독을 비롯해 주위에서는 마지막 날 경기에 나가지 말 것을 권했다. 당시는 그런 일이 빈번했다.”

윌리엄스는 당연히 명예의 전당 멤버입니다.

야구에서 기록을 지키기 위해 시즌 막판에 변칙 기용 등 편법을 쓰는 것은 과거에는 종종 있던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제의를 거절했다. 마지막까지 4할을 치지 못한다면 나는 4할 타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경기 전날 밤 나는 클럽하우스 직원으로 늘 내게 큰 도움을 주던 조니 올란도와 필라델피아의 밤거리를 걸었다. 적어도 15km 이상을 걸으면서 다음날 경기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지친 그는 스카치를 마시기 위해 두 번 바에 들렸고, 나는 아이스크림을 두 번 먹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1941년 시즌의 마지막 날인 9월 28일 일요일의 아침이 밝아 옵니다.

굉장히 춥고 정말 끔찍한 날씨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쉬비파크에는 약 1만 명 이상의 관중이 모였습니다. 'The Kid'라고 그런 애칭으로 불렸던 테드 윌리엄스가 과연 4할 타율을 기록할 것인지 야구팬들이라면 모두 궁금했겠죠.

결론부터 가면 'The Kid'는 그날 8타수 6안타를 칩니다. 그래서 시즌을 0.406로 마치면서 1930년 빌 테리 이 후에 11년 만에 다시 4할 타자가 됐습니다. 물론 당시까지만 해도 윌리엄스 이후로 80년 넘게 더 이상 4할 타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하지 못 했겠지만 말입니다. 실은 앞으로도 4할 타자가 다시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입니다.

읠리엄스는 전성기 시절에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하느라 두차례에 걸쳐 3시즌 이상 야구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날 더블헤더를 모두 출전해서 안타를 6개나 치면서 멋지게 4할 타자에 등극했던 윌리암스였지만, 또 다른 뒷얘기가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야구 규정이 그대로 적용이 됐더라면 테드 윌리암스는 마지막 날의 출전, 뭐 이런 걸 전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는 겁니다. 바로 희생플라이(Sacrifice Fly)라는 규정 때문입니다.

‘타석에 나선 타자가 뜬 공을 보내서 아웃이 돼도 루상의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인다면 그 타석은 타수에서 빠진다는 것’이 희생플라이의 규정이죠.

그러니까 그 타석이 아웃돼도 타율은 전혀 까먹지 않는다는 규정인데, 그런데 이 희생플라이 규정이 야구 역사에서 몇 차례나 포함됐다가 빠졌다가를 반복합니다.

처음 희생플라이 규정이 도입된 것이1893년! 기억나시죠, 1893년 야구의 원년, 60피트 6인치 18.44미터. 바로 그 해 1893년에 도입된 여러 가지 규정 중에 하나가 바로 희생플라이 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1931년에 희생플라이가 규정에서 빠집니다.

즉 희생플라이는 그냥 일반 아웃으로 또 처리가 됐다가 1939년에 재도입 했다가 40년에 다시 빠졌다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을 몇 차례나 거치게 되는데 하필 윌리엄스가 마지막 4할 타자가 됐던 1941년에는 희생플라이 규정이 적용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구 역사가들이 따져 보니까 그 해 테드 윌리엄스가 14개 희생플라이를 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오늘날의 규정이 1941년의 테드 윌리엄스에게 그대로 적용이 됐다면 그의 타율은 4할6리가 아니라 4할1푼9리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야구 역사가 계속 많은 변화 속에 이어지면서 어찌 보면 테드 윌리엄스는 그 피해자가 돼서 4할 타자가 되지 못 할 뻔도 했는데, 마지막 날 더블헤더를 모두 출전해 6안타를 치고 0.406로 시즌을 마쳤다는 신화 같은 윌리엄스의 이야기였습니다.


MLB는 1941년 이후에 4할 타자가 나오지 않고 있고, KBO리그도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80경기 시즌에 백인천 선수 겸 감독이 4할1푼2리의 엄청난 기록을 쓴 이후 4할 타자는 없습니다.

과연 앞으로 4할 타자가 나올까요?


오늘의 볼스트릿저널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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