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스타에서 100억 자산가, 그리고 나락으로”
한지일은 1970~80년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대표 미남 배우였다.
광고 모델로 데뷔해 ‘바람아 구름아’, ‘아제아제 바라아제’, ‘도시로 간 처녀’ 등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특히 1980~90년대에는 영화 제작자로 변신, ‘젖소부인 바람났네’ 시리즈 등 30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며 흥행 신화를 썼다.
이 시절 한지일은 100억 원대 자산가로, 대저택과 고급 외제차, 부동산까지 갖춘 ‘성공의 아이콘’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혼, 그리고 파산”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며 한지일의 인생은 급전직하했다.
영화 제작사와 호텔, 부동산 등 과잉 투자한 사업이 연이어 무너졌고,
융자와 빚에 시달리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됐다.
IMF 여파로 아내와도 이혼했고, 아이들은 엄마와 살게 됐다.
한지일은 “IMF 터지기 전부터 평택 호텔, 대전 5층 건물, 영화사 주택, 거주 주택 등 과잉투자를 했다.
IMF가 터지자 융자받은 것들이 문제가 됐다”고 회상했다.

“미국행, 27가지 직업 전전한 생존기”
모든 것을 잃은 한지일은 2005년 미국으로 떠났다.
생계를 위해 블라인드 청소, 나무 베는 일, 화장품 회사 직원, 마트 매니저, 박스보이 등 27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한때의 톱스타, 100억 자산가는 온데간데없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노동자의 삶이 이어졌다.
그는 “미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며 좌절도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귀국 후, 11평 임대아파트 기초수급자 신세”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을 계기로 한국에 돌아온 한지일.
하지만 과거의 영광은 사라진 뒤였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주차 요원, 웨이터, 벨보이, 여행가이드 등 다양한 일용직을 전전했고,
결국 11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살아가게 됐다.
“톱스타가 땅에 떨어지면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 고독사하는 게 가장 두렵다”며 쓸쓸한 심정을 내비쳤다.

“건강 악화와 외로움, 그리고 봉사로 찾은 삶의 의미”
고령에 건강까지 악화된 한지일은 최근 허리와 다리 통증, 거동 불편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55년째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탈북 어린이, 무료급식소, 노인복지센터, 환경정화 캠페인 등
자신도 어려운 처지지만 “움직일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봉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영광과 나락, 그리고 다시 희망으로”
한지일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100억 자산가에서 기초수급자, 27가지 직업을 전전한 생존기, 그리고 50년 넘게 이어온 봉사 인생.
그는 “세월이 흘러 알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래도 작은 집이 오히려 편하다. 내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남을 돕는 일이 내 삶의 이유”라며,
봉사와 나눔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