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대박 쳤던 '017'의 남자, 10만원대 가성비 태블릿으로 연타석 홈런

큐버 이장희 대표
아트란 큐패드를 고 있는 큐버 이장희 대표. /더비비드

큐버의 이장희(57) 대표는 늘 변화에 한복판에 있었다. 017 신세기통신 공채 1기로 입사해 이동통신사의 전성기를 경험했고, 모빌리언스를 창업해 통신 부가 서비스 시장의 문을 열었다.

요즘 그의 화두는 태블릿PC와 인공지능(AI)이다. 엔지니어링 역량을 살려 개발한 큐버의 보급형 태블릿PC는 다양한 산업군 뿐만 아니라 소비자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물리적 AI의 근간 기술을 대기업에 납품하며, 시대의 부름에 부응하고 있다. 이 대표를 만나 기술로 신시장을 개척하는 법에 대해서 들었다.

◇ 10만~20만원대 국산 태블릿PC 제조사의 정체

(왼쪽부터) KT의 기가지니, 나무엑스의 웰니스 로봇. /큐버

2015년 설립한 큐버는 안드로이드 기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사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기기와 미들웨어, 셋톱박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융합한 서비스와 기술을 만들어 기업에 제공한다. 평창올림픽 당시 KT의 세계 최초 AI 음성인식 셋톱박스 기가지니 개발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큐버의 노하우는 온디바이스(On-device) AI로 집대성됐다. 온디바이스는 클라우드나 원격 서버에 의존하지 않고 디바이스 자체 하드웨어를 활용해서 AI 작업을 처리하는 기능이다. 큐버는 현재 퀄컴의 IoT 부문 디자인 센터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SK인텔릭스의 AI 웰니스 로봇 ‘나무엑스’(NAMUHX)에 자사의 안드로이드 기반 CPU 플랫폼을 공급해 주목을 받았다.

(왼쪽부터) 큐패드 미니, 큐패드 원, 큐패드 프로. /큐패드

안드로이드 B2B 영역에서 굵직한 포트폴리오를 쌓은 큐버는 아트란(ARTRAN) 큐패드 시리즈로 B2C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가격 거품을 빼고 기본에 충실한 큐패드 3종은 두번째 태블릿PC, 어린이 및 청소년용 태블릿PC로 인기몰이 중이다.

◇ 통신업 성장의 한복판에 있던 남자

큐버 사무실 내부의 제품 테스트실에서 포즈를 취한 이 대표. /더비비드

이장희 대표는 통신, IT 분야에서 굵직한 경험을 쌓았다. 신세기통신 공채 1기로 입사해 통신업이 급성장하는 현장의 한복판에 있었다. 2000년 동종업계인 018(한솔PCS), 016(한국통신프리텔) 동료들과 KG모빌리언스(이하 모빌리언스)를 창업했다. 모빌리언스는 세계 최초로 휴대폰 결제 서비스를 상용화한 기업이다. 이 대표는 이곳에서 부사장으로서 사업운영, 해외 사업, 투자 유치 등을 수행하며 스타트업과 상장 기업의 성장 과정을 두루 경험했다.

모빌리언스는 틈새 시장에 파고들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30대에 상장을 경험했다. “처음엔 커머스 시장을 노렸는데, 신용카드라는 경쟁자를 이기기 어려운 구조였어요. 다른 공략처를 찾다 발견한 게 게임 시장입니다. 한게임이 처음으로 유료화를 도입하면서 저희와 손을 잡았어요. 네이버도 모빌리언스를 채택했죠. 이때부터 게임회사와 콘텐츠 회사의 제안이 쏟아졌습니다. 휴대폰 결제 도입 후 고객사 매출이 적게는 30%, 크게는 50%까지 늘었습니다. 말 그대로 게임 시장과 함께 성장했죠. 창업 5년 차인 2004년 코스닥에 상장했습니다.”

◇ 세계 최초로 AI 음성인식 셋톱박스 개발

큐버는 셋톱박스 미들웨어, 온디바이스 AI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기술력을 쌓았다. /더비비드

모빌리언스를 떠나고 대기업에 IT 인프라를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했다. 그러던 중 방송장비 제조사 가온그룹(구 가온미디어)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큐버의 전신은 가온그룹의 자회사 이노디지털입니다. 처음엔 가온그룹이 셋톱박스의 하드웨어를, 저희가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했어요. 매출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미국, 브라질, 케냐 등 해외에 플랫폼과 설루션을 납품하며 포트폴리오를 쌓았습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이 성장의 변곡점이 됐다. “올림픽은 한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세계적인 이벤트잖아요. 당시 KT가 음성을 인식하는 AI 셋톱박스를 공개하기로 하고, 저희가 개발업체로 선정됐습니다. 예상대로 KT 기가지니는 큰 주목을 받았어요. 이 일을 계기로 방송 미들웨어 분야에서 입지를 구축하게 됐죠. 현재까지도 KT에 AI 셋톱박스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큐버가 보유한 특허증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 대표. /더비비드

첫번째 성공에 안주할 수 없었다. 이 대표는 방송 시장에서 성장하는 덴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 시장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비즈니스는 열세입니다. 로열티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결국 물리적인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얹는 방식의 비즈니스가 답이라고 판단했어요. 확장성과 범용성 좋은 시장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파트 월패드로 시작해 스마트 미러, 매장 포스 단말기 등 다양한 시장 진출을 시도했다. 각 시장마다 고유한 어려움이 있었다. “건설 시장은 함부로 진입할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스마트 미러는 조도에 따른 시야의 차이와 위생 문제가 상용화의 걸림돌이었어요. 단 열 명이 스마트 미러를 손대고 지나가도 금방 더러워졌죠.”

◇ 퀄컴 공식 파트너사로 도약, 예상치 못할 때 찾아온 기회

다양한 시도의 흔적들. (왼쪽부터) 큐버의 키오스크, 테이블오더를 설치한 모습, 캐치테이블 서비스에 도입된 큐버의 태블릿PC. /큐버

시행착오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길은 있었다. “CPU 플랫폼 전문 기 업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유명 핀테크 기업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안드로이드 결제용 단말기를 시장에 도입하고 싶다며, 초기 모델 개발을 의뢰했죠. 좋은 포트폴리오를 확보한 덕일까요. 게임사에 인수된 가전업체로부터 가정용 사이클에 접목할 단말기 개발을 요청받았습니다. 해당 제품은 상용화되지 못했지만 큰 성과가 있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퀄컴의 IoT 부문 디자인 센터 역할을 맡게 됐거든요. CPU 플랫폼 개발사로서의 역량을 공인받은 겁니다.”

신용카드 밴(VAN)사에 포스 단말기 도입 제안을 하던 중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밴사에서 ‘가맹점 사장님들이 손님이 몰려오는데, 종업원을 구하기 힘들어한다’ 며 테이블에 비치해 앉은 자리에서 주문할 수 있는 태블릿PC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그렇게 2023년 태블릿PC 3만대를 밴사에 납품했어요. B2B 태블릿PC 시장에 발을 디디는 계기가 됐죠.”

이 대표는 태블릿PC B2B 납품을 하며 가성비 태블릿PC 시장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더비비드

외식업으로 시작해 교육업, 스포츠업, 병원 등으로 태블릿PC 납품처를 확대했다. 식당 예약 및 웨이팅 서비스 ‘캐치테이블’ 전용 태블릿도 만들었다. “프리미엄 태블릿PC 시장과 별개의 가성비 태블릿PC 섹터가 존재했어요. 태블릿PC가 교육 시장에서는 종이 학습지를, 식당에서는 주문 전표를 대체하고 있더군요. 포지셔닝을 잘 하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 가성비 태블릿PC 시장에 일으킨 이변

(왼쪽부터) 큐패드 3종을 설명 중인 이 대표, 큐패드 3종. /더비비드

B2B 시장에서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B2C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2024년 4월 자사 태브릿PC 브랜드 아트란(ARTRAN)을 론칭했다. 기존 가성비 태블릿PC 브랜드의 뿌리가 유통사인 것과 달리, 아트란은 기술적 토대를 다지며 품질에 집중했다. 공장 선정부터 개발, 조립, 검수 과정까지 전문가가 직접 진행하며, 불량 발생 시 로그를 분석해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가장 보편적인 제품부터 출시한 후, 타깃을 좁혀가는 식으로 상품 전략을 짰다. “액정 크기가 10.1인치인 큐패드원과 큐패드프로를 먼저 선보였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태블릿PC의 규격이거든요. 반년 뒤 작고 가벼워 휴대성이 좋은 8인치 제품 큐패드미니를 출시했습니다.”

당시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같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등장으로 가성비 태블릿PC 비즈니스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추세였다.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가성비 제품은 결국 가격이 중요한데요. ‘저가 제품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식부터 깨야 했어요. 태블릿PC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가격 낮추기 전쟁이 한참이었는데요. 생존하려면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품질에 주목해야 했어요.”

유통업에 베이스를 두고 개발된 타사 저가형 태블릿PC와 달리 큐패드는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더비비드

기본기를 탄탄하게 잡았다. “큐패드원과 큐패드 미니는 일반 화질로 영상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전자책으로도 활용 가능합니다. 고급형인 큐패드프로에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HD 이상 고화질 재생이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Widevine(와이드바인)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와이드바인은 구글이 만든 보안 등급으로 와이드바인 L1 인증을 받은 태블릿PC만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주요 플랫폼 영상으로 고화질로 재생할 수 있죠. 세 제품 다 SD카드 삽입해서 저장공간을 늘릴 수 있어 편리합니다.”

품질은 자신 있는데, 부족한 인지도가 문제였다. “전문가 플랫폼에서 몸값이 비싼 마케팅 전문가를 섭외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알게 됐어요. 수요를 확인한 후 생산 할 수 있으니 훌륭한 테스트 배드로 보였어요. 수익 창출보다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펀딩을 진행했는데 이틀만에 준비수량 3000대가 다 팔렸습니다.”

◇ 신제품 4종 출시 임박, 2라운드 눈앞

이 대표는 아트란 큐패드와 나무엑스 프로젝트에 탄력을 받아, 올해 큰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비비드

큐패드 3종 판매량은 전분기 대비 50% 증가했다. 큐패드원이 스테디셀러였지만 후발주자인 큐패드미니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추세다. 태블릿PC 시장에서 고유의 섹터를 점유한 덕이다. “삼성, 애플의 태블릿PC를 보유한 직장인들이 출장, 이동용 세컨드 태블릿PC로 많이들 구매합니다. 자녀의 ‘인생 첫 태블릿PC’ 용도로 구매하는 학부모 층도 많아요. 요즘은 부모님 선물용으로 인기입니다. 수요층이 큰 시장에 잘 자리잡았으니, 점차 니치한 시장을 공략할 거예요. 2K 화질을 지원하는 버전, 액정이 큰 버전 등 신제품 4종이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매년 연매출이 20~30%씩 신장했다. 2024년엔 연매출 13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보다 큰 폭의 성장을 예상한다. “SK인텔릭스의 웰니스 로보틱스 브랜드 나무엑스의 신제품 출시가 9월로 결정됐습니다. 신성장 동력이 본격 가동화 되는 거죠. 그동안 다양한 시도를 했고 될 듯, 안 될 듯 줄다리기를 탔는데요. 드디어 물꼬가 트인 기분입니다. 아트란도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어요.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으니 곧 성장의 변곡점을 맞이할 겁니다. 큐버의 2막이 기대됩니다.”

/진은혜 에디터

Copyright © 더 비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