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 적자에 발목이 잡히며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섰다. 정유·석유화학 부문의 부진까지 겹치며 올해 들어 적자의 늪에 빠진 와중, 부채는 자기자본의 두 배를 웃돌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국내와 달리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투자 부적격으로 매기면서, 재무건전성 관리가 본격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일 60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만기 구조(트랜치)는 2년물 1700억원 표면이율 2.836%, 3년물 2900억원 표면이율 2.962%, 5년물 1400억원 표면이율 3.161%으로 구성됐다. 자금조달 목적은 채무상환이며, 발행대리인은 SK증권이 맡았다.
SK이노베이션은 최초 모집액 3000억원에 최대 60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번 수요예측에서 2년물 1000억원에는 3300억원, 3년물 1300억원에는 4900억원, 5년물 700억원에는 2800억원의 주문이 접수되며 총 1조1000억원의 수요가 모였고, 증액 발행에도 성공했다.
금리 수준은 희망 밴드 내에서 안정적으로 형성됐다. SK이노베이션은 희망 밴드로 개별 민간채권평가사 평균인 민평금리 기준 ±30bp(1bp=0.01%p)의 금리를 제시했다. 수요예측 결과 2·3·5년물 모두 민평금리 대비 +8bp 수준에서 모집 물량을 채웠다.
이로써 올해 회사채 발행으로만 조 단위의 자금을 조달하게 됐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4월부터 지난달까지 공모채로 약 1조4000억원을 조달했다. 4월에는 2년물 3500억원, 3년물 2900억원, 5년물 1600억원 트랜치로 구성된 8000억원 규모의 공모채를 발행했다. 또 지난달 4일에는 30년물로 70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끌어온 자금은 차입금 상환으로 활용해 재무 안정성을 높일 계획이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부문 투자 부담으로 재무지표 악화를 면할 수 없었다. SK이노베이션의 실질적인 빚인 순차입금은 2021년 말 10조486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35조5185억원으로 불어나며 3년여 만에 3.5배 가량 치솟았고, 같은 시점 부채비율은 152.4%에서 202.6%로 상승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전방위적 자산 효율화를 지속하고 있으며, 비핵심 자산 매각 및 유동화를 통해 차입금을 1조5000억원 줄일 계획"이라며 "제3자배정 유상증자와 영구채 발행 등을 통해 5조원을 확충했고 연말까지 3조원을 추가로 조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부문을 살펴보면 2022년 9912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이후 △2023년 5809억원 △2024년 1조1270억원의 적자를 이어왔다. 올 상반기 전년 동기 7916억원의 영업손실 대비 개선된 3657억원의 영업손실 기록했지만, 적자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 여파로 앞으로의 앞날도 불확실하다. 한기평은 "배터리산업에 내재돼 있는 수급 불안 요약 및 정책 리스크를 감안할 때 배터리부문의 부진한 실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전사 실적 회복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나마 배터리 설비 투자가 일단락되면서 올해 자본적지출이 지난해 10조2000억원에서 약 6조원 수준으로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한기평은 "배터리부문 실적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재무안정성 제어를 위한 적극적인 자구 계획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올 상반기에는 정유·석유화학 부문 부진이 겹쳐 SK이노베이션 연결 기준의 영업 실적도 적자로 돌아섰다. 유가와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확대로 정유부문이 적자를 냈고, 석유화학부문도 올레핀과 파라자일렌(PX) 마진 약세로 적자를 낸 영향이 컸다.
눈에 띄는 대목은 국내와 글로벌 신용평가의 신용등급 간 간극이다. 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SK이노베이션 신용등급으로 'AA(안정적)'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다르게 보고 있다. 무디스는 올 3월 투자적격등급 'Baa3' 등급에서 'Ba1(부정적)'로 등급을 강등하며 사실상 '하이일드(투기등급)'로 분류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평가년도 2025년 현재 기준 'BBB-(부정적)'를 부여해 투기등급 직전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재무건전성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배터리 부문의 경우 초기 비용이 크다 보니 일시적으로 비용이 많이 발생했지만 굵직한 투자들은 거의 마무리가 됐다"며 "올해 설비투자 축소와 배터리 부문 순손실 개선으로 재무구조가 많이 개선되고 있고, 앞으로도 재무건전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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