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질악화로 다 죽는데 붕어 넣나"…의사대표들, 정부 규탄(종합)
"필수의료 저수가, 20년간 곪은 문제…왜 민간 의사들에 책임 떠넘기나" 비판
비대위 "협의체서 '2천' 언급도 된 적 없어…정부 합리화해도 국민들 알아줄 것"
내달 3일 총궐기 앞둔 의협 "정부, 일방 강행 시 모든 적법수단 동원해 끝까지 저항"
"국가가 '허준'이 되고 '히포크라테스'가 돼야지, 왜 95%나 되는 우리 민간 의료진들에게 그 부담을 모두 떠넘기는 것입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대통령이건 복지부 장·차관이건 이렇게 떠들어서 되겠습니까?
20년간 방치해서 곪을 대로 곪은 필수의료에 '낙수 효과'를 기대하며 (의대생) 숫자를 늘리겠다? 이게 상식입니까? '쇼'들 좀 그만하라고 해주십시오. 낙동강 수질이 나빠져서 고기들이 다 죽었는데 한강에서 붕어 잡아다가 넣어놓으면 그 붕어들이 살 수 있겠습니까?"
김보석 부산시의사회 총무이사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열린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 회의' 후 참석자들과 대통령실 부근으로 가두행진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총무이사는 소위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를 가리켜 "없으면 그야말로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인데 대한민국의 저수가 정책 안에서 '적자가 필수'인 그런 과들이 되지 않았나"라며 이 인프라 유지책임이 있는 정부는 의료계에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필수의료 살리기'를 위해 향후 5년간 건강보험 재정 10조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언 발에 오줌 누기", "코끼리 비스킷"이라고 폄하했다. 김 이사는 "의사가 붕어빵도 아니고 그냥 툭툭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각고의 노력으로 의대에 진학한 (상위) 0.1%의 학생들과 전공의들이 왜 (병원) 밖으로 먼저 뛰어 나갔겠나"라고 반문했다.
또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추진이 이번 사태와 유사하다 지적하면서 "젊은 산은 직원들은 전부 다 사표를 냈다. 시대가 이런데 학생만 많이 뽑는다고 필수의료가 살아나고 지역의료가 살아나겠나"라며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용산에 가서 얘기해 주고 싶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한림대성심병원 교수)도 "환자와 의사는 한 편이 되어 적절한 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요구해야 한다"며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환자와 의사가 한 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에서 20년 넘도록 일했지만 응급의료는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위기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응급실 뺑뺑이' 등 정부가 위기라고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필수의료를 살리겠다 하더라"며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 3년간 정부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의료체계 전반을 수술해야 하는 문제를 일시적 의대 증원으로 상쇄하려 한다며 '졸속 추진'이라고 규탄한 것이다. 정부가 의사 확충이 시급하다며 근거로 든 보고서들을 작성한 서울대·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을 두고는 "일부 어용학자들"이라며 "정부와 그들이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실 맞은편에 위치한 전쟁기념관 앞에 당도하기까지 전국 시·도 의사회장 등 의사 대표들은 "근거없는 의대정원 증원 저지하라. 대한민국 의료붕괴 막아내자", "무계획적 의대증원, 건보재정 파탄난다", "일방적인 정책 추진, 국민건강 위협한다" 등의 구호를 연호했다. 이 자리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400~500명이 참석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마지막 발언을 통해 "(정부가) 갑자기 4명이 사는 집에 3명이 더 들어가 살라고 한다. 40개 의대가 있는데 24개 의대를 새로 만들겠다면서, 대책도 없다"며 "MZ세대가, 국민 여러분의 어린 아들·딸들이 왜 화가 났는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달래는 게 먼저"라고 밝혔다.
또한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전 회초리를 들고, 회초리로 안 되니 몽둥이를 들다가 그걸로도 안 되니 '구속 수사'란 엄포를 놓고 있다"며 "법으로 해결할 게 있고 대화로 해결할 게 있다. '대화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것(은 정부)"이라고 화살을 정부에 돌렸다.
김 위원장은 "의료정책은 한 번 망가지면 되돌릴 수 없다. 의료전문가로서, 의료체계 붕괴를 막고자 목소리를 드리는 게 어떻게 이기주의인가"라며 "그 사람들(복지부)이 28번 회의하는 동안 우리에게 '2천'이란 숫자를 이야기한 적이 있나, 국민들이 보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가) 거짓말을 합리화해도 언젠가 국민이 알아줄 거라고 믿는다. 저희 목소리가 하나로 통일돼 국민에게 알려지는 순간까지, 항상 14만 의사가 함께하겠다"며 "잘못된 정책이기 때문에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는 입장이다. 그 때까지 여러분과 앞장서서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약 3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를 연 의협은 회의 후 "의대정원 2천 명 증원 졸속추진을 즉각 중단하라"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정부가 당초 일종의 '당근책'으로 여겼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대해서도 "불합리하다"며 강력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의사 대표들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특히 저렴한 비용으로 국민 모두가 의료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로 의료접근성에서 세계 최상위 위치"라며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또 비필수의료에 비해 처우가 열악하고 형사소송이 빈번한 필수의료의 구조적 문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결코 증원으로 늘어난 의사인력이 필수·지역의료로 유입될 것으로 단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신규 의사가 양성되는 10년간 당면한 의사부족 실태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정책도 전무하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2천 명 증원 추진은 필연적으로 막대한 의료비 증가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면서 "의료계와 합의해 (의대정원) 정책을 추진하기로 한 2020년 의료계와 국민과의 합의를 지키라"고 촉구했다.
의협은 내달 3일 2만 명 규모의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를 앞두고 있다. 의사 대표자들은 "의료계 대표들의 우려와 경고를 무시하고 정부가 의대 증원·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일방적으로 강행할 경우, 어떠한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며 "전체 의료계가 적법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항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선언했다.
다만, 향후 협회 차원의 집단행동을 결정하기 위한 전 회원 투표 등에 대해선 "마지막 행동을 위한 투표일정은 정해진 바 없다"며 "정부가 고집을 꺾지 않을 경우엔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 결정을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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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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