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금융은 극빈층에 부적합… 그들에겐 지원이 필요하다”

손고운 기자 2024. 10. 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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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캄보디아 마이크로파이낸스 실태조사 프랑크 블리스 독일 함부르크대학 교수 화상 인터뷰 “빈곤층 대출 제안, 극히 비윤리적”
2023년 11월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캄보디아 소액금융 관련 세미나에서 프랑크 블리스 함부르크대학 개발인류학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해 있다. 유튜브 갈무리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하는 이는 드물다. 갚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선 가난한 이에게 빌려준 돈을 회수하려면 더 많은 정보를 수집·감시·관리해야 하는데, 이는 곧 ‘비용’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선 ‘가난한 이들이 돈을 빌릴 때 더 높은 이자를 지불’하고, ‘생계수단인 담보물도 저당 잡히는 것’이 당연한 규칙처럼 통용된다.

고리대금업과 마이크로파이낸스… “독일도 기업이 직접 하진 않아”

그러나 때로 이 규칙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가령 최빈개도국에 살고 금융문해력이 낮은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고리대금업’이란 본질에서 벗어나기 힘든 마이크로파이낸스(소액금융)를 장려하는 게 맞는가? 이들에게 높은 이자율을 부과하는 것이 맞는가? 돈을 못 갚으면 담보 잡힌 유일한 생계수단인 농지를 팔게 해 더 가난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 당연한가? 프랑크 블리스 독일 함부르크대학 개발인류학 교수도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2022년 캄보디아에서 포화 상태에 이른 소액금융업으로 인해 현지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는지 무작위로 선정된 1388가구를 설문조사하고 100여 건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연구보고서는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캄보디아 대출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설문조사에서 대출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대다수였다”고 기술하는 등 객관적 관점을 견지해 더욱 설득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리스 교수를 2024년 9월30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개발인류학이란 분야가 낯설다. 어떻게 이 분야를, 또 캄보디아를 연구하게 됐나.

“독일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집트에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처음엔 주로 문화적 변화를 연구했다. 하지만 연구하다보니 ‘개발’이 문화적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인류학적 연구’와 ‘개발 지원 분석 및 비판’을 결합해 연구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국 뉴욕주립대학 개발인류학 연구소에 있는 동료들과 협력해 새로운 분야인 ‘개발인류학’을 만들었다. 이 분야는 개발정책과 실무에 인류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제학자나 기술자들처럼 현장으로 바로 달려가 조사하고 보고서를 준비하는 연구가 아니라, 일하기 전에 언어를 배우고 현장에 대해 이해하고 사람들의 문화를 익히면서 그 나라에 익숙해질 준비를 하는 식이다. 현지에 최소 6개월~1년 머물면서 연구를 준비하고, 박사과정 학생들은 보통 2년간 현지 연구를 수행한다. 이와 같은 학문적 배경이 있는 상황에서, 독일 연방경제협력부(BMZ)의 프로젝트로 캄보디아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독일 정부는 왜 캄보디아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가.

“내가 아는 한, 독일 은행들은 캄보디아에서 직접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소액금융업을 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캄보디아 소액금융 부문에 대한 독일의 재융자가 있었다. (독일은) 수년 동안 캄보디아 소액금융 부문에 가장 큰 자본 제공자 중 하나였던 거다. 이로 인해 독일 의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세 차례나 있었다. 더 이상 독일은 이 부문의 가장 큰 투자자는 아니지만, 여전히 사회적 펀드 등 부문에선 연관돼 있다.”

악덕 대출 담당자 비윤리적 계약문제 해결해야

—한국에서도 공익변호사들이 현지조사를 했는데, 캄보디아 채무자들은 ‘한국 은행의 대출 담당자가 집과 땅을 팔아서라도 돈을 갚으라고 했다’거나 ‘사채를 쓰게 하고,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일하도록 압박했다’는 등의 말을 했다. 이런 사례가 당신의 연구에서도 발견됐나?

우리가 알아본 사례들에선, 은행이 땅을 직접 압류하진 않았다. 그러나 은행의 대리인(대출영업직원)들은 사람들에게 매우 가까이 접근한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대출을 원하느냐 묻고, 그 사람이 대출을 받으면 매주 혹은 매달 와서 이자를 묻는 식이다. ‘자녀를 일하러 보내라’ 이런 식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이 빚을 갚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하려 한다. ‘당신은 땅을 팔 수 있다. 빚을 제때 갚으라’, ‘누군가 일하러 가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주노동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일해봐야 한 달에 50달러쯤 벌 건데 3천달러, 4천달러를 상환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 심각한 문제는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권유하는 거다. 소액금융기관(연 이자율 18% 수준) 빚을 갚기 위해 더 높은 이자율인 사채(연 이자율 120% 수준)를 쓰게 되면, 가난하고 소득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이것이 곧바로 (생계수단인) 토지 매각으로 이어진다.”

—공권력을 동원해 채무자들을 압박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런 사례는 있었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경찰이 동원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마을 지도자나 지역 공무원이 개입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마을 지도자 24명과 인터뷰했는데, 그들 중 대다수는 대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을 지도자들은 오히려 토지 수탈을 막으려고 한다. 물론 일부 마을 지도자는 부패해 대출 기관과 협력해 채무자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맥락을 알아야 한다. 캄보디아 전통사회에서는 빚을 갚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극단적인 행동이 없어도 심적으로) 절대적 압박을 받는다.”

—소액금융기관들에악덕 대출담당직원들이 존재할 거라고 보나?

“내가 만난 소액금융 부문 관리자들은 모두 악덕 대출담당자가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출담당자들은 실적에 따라 급여를 받고, 더 많은 새로운 대출을 승인하고 상환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이 성과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자주 발생하냐고 관리자들에게 물었는데, 자신들도 모른다고 말했다.”

프랑크 블리스 교수 연구팀이 캄보디아에서 소액금융 피해 실태에 대해 조사하는 당시의 모습. 출처 ‘캄보디아의 마이크로 금융: 발전, 도전과제 및 권장사항’ 보고서

소액금융 개선된 준칙 따르고 대출 아닌 지원 필요하다

—장기적으론 은행도 잠재적 고객들이 땅을 잃고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 피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은행은 왜 그러는 걸까?

“은행 입장에선 제때 상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고객이 신규 대출을 받으면 포트폴리오가 늘어 (은행 대출영업직원이) 거기서 또 이득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2천달러 대출이 있어 이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못 갚고 있어) 다른 2500달러 신규 대출을 받아 앞의 원금과 이자를 낸다고 생각해보자.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성과는 더 좋아지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관련해 2022년과 2023년 독일대사관과 함께 세미나를 주최했고, 소액금융기관·국립은행·유엔 등이 참석해 소액금융기관 부문의 준칙을 개선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영업을 하면서) 처음에 현금흐름을 분석했느냐는 거다. 갚을 능력이 안 되는 빈곤층에는 항상 이 같은 대출이 ‘경제적 위기’로 끝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단지 토지를 담보로 잡힐 수 있다는 이유로, 그런 빈곤층을 상대로 대출을 제안한 사례들은 ‘절대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원도 그들이 땅을 팔지 않고서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소액금융기관을 인수해 캄보디아에 진출한 상업은행들이 18~20% 중반대 연 이자율에 대출사업을 벌이는 것과 관련해 ‘사채업자보단 윤리적’이라고 말한다. 아예 대출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농사나 병원비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소액금융의 문제 중 하나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건 캄보디아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그렇다. 일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나이 많은 사람, 아픈 사람,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 등)에게는 소액금융 시스템이 효과적이지 않다. 돈이 경제활동을 위해 쓰여야 하는 것 아닌가? 예를 들면 코로나19 기간 동안 사람들은 직업을 잃었고 생계를 위해 대출을 받아야 했다. 상환을 위한 수입은 없는 상태였다. 토지 담보만 있으면 대출받을 수 있었고, 대출받은 사람들은 토지를 팔고 그 돈으로 대출을 상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때는 토지를 단기간에 팔아야 하므로 제값을 받을 기회마저 잃게 된다.”

—국제금융공사(IFC)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보나?

“국제금융공사는 우리의 보고서와 연구 결과에 따라 소액금융기관에 대한 일부 재융자(자금 공급)를 취소했다. 또 대출 신청 때 더 철저히 분석하라고 (소액금융기관에) 요구했다. 이건 중요한 진전이었다. 2023년 11월 룩셈부르크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콘퍼런스가 열렸는데, 여기에 소액금융 부문에서 온 사람 5명이 참석했고, 그들은 2500달러 이하 대출에 대해서는 담보 요구를 취소하고, 3500달러 이하 대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담보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포인트가 있다. 이제 많은 사람이 (돈이 필요해도) 대출을 못 받게 된다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한다. 대출이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거다.”

2024년 9월30일 한겨레21과 화상 인터뷰 중인 프랭크 블리스 교수. 줌 갈무리

극빈층에 푼돈 주고 최고 이자 내라는 ‘자본주의 금융’

—당신이 제시한 해결책 중 하나는 대출담당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대출 권유하기를 중단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게 시장에서 가능한 일일까?

현재 너무 많은 돈이 소액금융 부문에 투입되고 있어, 이 관행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거리로 나가보면 지역에도 은행이 50개씩 있을 정도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은행 대출전담직원들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은행들이 집집마다 방문하기보다, 라디오나 티브이(TV), 공공 포스터 등을 통해 선전하도록 설득하려 했다. 대출 담당자들이 상환 능력 분석을 더 엄격하게 한다면, 그래서 상환 능력은 없고 농지만 있는 사람들에게 대출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이러한 방문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규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인류학자로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나.

“당연하다. 물론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항상 무겁게 비판해왔던 부분이다. 독일의 개발 금융기관과도 이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금융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이자율이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장 가난한 사람이 아주 적은 돈을 대출받기 위해 가장 높은 이자율을 부담해야 한다는 건 불합리하다. 우리는 두 가지 해결책을 제안했다. 첫째, 은행 내부에서 대형 대출이 소형 대출을 보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대기업 대출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소액금융 부문에 재투자해 소액 대출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둘째, 개발 원조 분야에서 (대출 과정에 필요한) 기술 지원 비용을 따로 지원함으로써, 이자율을 7~8% 수준으로 낮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원조 분야에서 대출과 기술 지원을 분리하는 거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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