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박신자컵] '전설' 박신자 여사 "난 감독으로선 별로였어…'조카' 정은이는 달라"

부산/홍성한 2025. 8. 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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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자 여사가 현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 10주년에 세 번째로 박신자컵 현장을 찾는 뜻깊은 시간이 만들어졌다.

다음은 30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박신자 여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난 선수는 잘했지만, 감독으로서는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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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부산/홍성한 기자] 박신자 여사가 현장을 방문했다.


19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 대회 준우승 주역, 국민훈장 석류장, 5.16 민족문화상 수상, 2015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선정, 1999년 동양인 최초 세계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아시아 선수 최초 2020 FIBA(국제농구연맹) 명예의 전당 선수 부문 헌액 대상자 선정.

이 모든 건 전설 박신자 여사(83)가 만든 업적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 10주년에 세 번째로 박신자컵 현장을 찾는 뜻깊은 시간이 만들어졌다.

다음은 30일 부산사직체육관에서 박신자 여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부산 방문 소감이 궁금하다.

부산에 처음 온건 6.25 전쟁 때였다. 전쟁을 피해 피난 왔다. 나이로는 9살이었던 것 같다(웃음). 그때 부산과 지금 부산이 너무 다르다. 지금은 정말 천국이다. 방을 구해 살았었는데 워낙 오래돼서 그 집을 지금 찾기 어려울 거다. 당시 계셨던 모든 피난민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부산에 대한 인상이 그래서 좋다.

Q. 최근 근황은 어떻게 되는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한 건 2013년이다. 50개 주에서 가장 작은 시골에 살고 있다. 지금은 나이가 있어서 뛰는 운동을 하지 못해 걷는 운동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Q.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조카 박정은 감독(BNK). 옛날엔 어떤 아이였는지?

비판하면 싫어하겠지만 내가 볼 땐 농구를 잘 못했다(웃음). 가드를 했다.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힘든 건 하나도 안 하려고 했다. 포워드, 센터도 하면서 몸을 부딪혀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 걸 싫어했다. 밖에서 3점슛만 시도했다. 농구는 맥이 있다. 그건 잘 봤다. 그런데 옛날에 원로 한 분을 만났는데 당시 그분이 그랬다. 너보다 농구 잘하는 애 나왔다고. 그게 박정은 감독이었다.

Q. 10주년 의미, 그리고 유소녀 국제대회도 열렸다.

감회가 남다르다. 부산에 와 농구인으로서 기뻤던 건 WKBL 고위 관계자분들이 농구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다. 유소녀 선수들이 많이 앉아 있는데 들어갔다가 눈물이 날 뻔했다. 애써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다.

Q. 여자농구 경쟁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요즘 일본한테 지고 이런 것 보면 보기 힘들다. 내가 워낙 지는 걸 싫어한다. 채찍질이 필요하다. 체력, 슈팅 훈련을 더 해야 한다. 지난 올림픽에 우리나라가 없어서 화났다. 옛날에는 올림픽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



Q. 본인의 이름을 딴 박신자컵에 뛰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뛰고 싶다(웃음). 박신자가 박신자컵에 왜 못 뛰겠나(웃음).

Q. 박정은 감독이 지난 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난 선수는 잘했지만, 감독으로서는 별로였다. 방열 전 감독을 만났는데 그분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박정은 감독은 감독을 더 잘한다고.

Q. 시투도 예정되어 있는데?

연습을 좀 했는데 골대가 높더라(웃음). 옛날에는 느끼지 못했다. 3번 정도 연습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연습광이었다. 훈련 끝나고 자유투 10개 안 들어가면 집에 가지 않았다. 될 때까지 했다.

#사진_W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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