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그리고 또 반전. 토트넘 프랑크푸르트 원정 36시간의 기록

조회 75,8002025. 4. 20. 수정

반전의 연속이었다. 손흥민은 갑자기 오지 않았고, 토트넘은 갑자기 승리했다. 모두의 예상을 깬 승리이자 유로파리그 4강 진출이었다.

토트넘의 유로파리그 8강 2차전 프랑크푸르트 원정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그 순간순간의 상황을 따라가보자.

#고역

8강전 하루 전인 4월 16일 수요일 오전 10시 50분(영국 시간)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쾰른으로 가는 유로윙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바로 날아갈 수가 없었다.

영국은 부활절을 맞이해 각급 학교들이 짧은 방학(하프텀)에 돌입했다. 영국의 부모들은 휴가를 내고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이미 독일로 넘어간 영국인들이 많았다.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표는 천정부지로 오른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프랑크푸르트와 어느 정도 가까운 쾰른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비행기표가 저렴했다.

자리에 앉았다. 앞자리에는 토트넘 팬들이 앉아있었다. 원정 응원을 가는 이들임에 틀림없었다. 토트넘의 현상황에 대해 강도높은 비난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다니엘 레비 회장에 대한 비판 그리고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1시간여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쾰른에 착륙했다. 입국 수속 줄에 섰다. 앞에 있던 토트넘 팬들에게 물었다.

"스퍼스 경기 보러 이 곳으로 온 것인가요?"

그들은 필자를 한 번 훑어보았다. 한국인이고 경기를 보러 왔다고 하니 경계를 풀었다. 그러더니 하는 말.

"아 정말 그렇긴 한데요. 올 시즌 토트넘의 경기를 보는 것은 너무나 고역입니다. 피를 말리는 것 같아요."

이해할 만 했다. 토트넘은 들쭉날쭉했다. 조심스럽게 경기 예상을 해달라고 했다.

"솔직히 승리에 대한 자신은 없어요. 그래도 우리는 이기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청천벽력

4월 16일 수요일 오후 5시 45분(독일시간). 분위기가 묘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미 공지된 기자회견 시작 시간은 지나있었다.

3분 전 토트넘 SNS에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독일로 향하는 토트넘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하나 둘씩 비행기에 올라탔다. 제임스 매디슨, 미키 판 더 벤, 굴리에모 비카리오.

손흥민의 모습이 없었다.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손흥민은 없었다. 댓글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손흥민을 찾는 한글 댓글, 한국인들이 쓰는 영어 댓글 그리고 영국 현지팬들까지 손흥민을 찾았다. 분명 전날인 화요일 토트넘 SNS에 올라온 훈련 영상에는 손흥민이 있었다.

설마....

울버햄턴 원정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멘트가 생각났다.

"손흥민은 타박상이 있었어요. 선수 보호 차원, 예방 차원에서 원정에 동행하지 않았어요."

울버햄턴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차피 토트넘에게 프리미어리그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더라도 강등 여부에는 큰 상관이 없다. 이겨도 리그 순위로 인한 유럽 대회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원정은 달랐다. 이 경기는 올 시즌 마지막 유럽 대항전이 될 수 있었다. 승리해야만 4강에 오른다. 지면 탈락. 비기면 연장전이었다. 손흥민과 토트넘에게 모두 중요한 경기였다. 그런데 손흥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일단 기사를 준비했다. 제목은 이렇게 달았다.

[현장긴급속보]'손흥민 프랑크푸르트전 안 뛴다" 포스텍 감독 공식 확인

이 기사가 전송되지 않고 그냥 휴지통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리 준비했다.

6시 45분. 예정 시간보다 1시간 늦게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선수 대표로 나온 판 더 벤과의 질문과 답이 끝났다. 그리고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나왔다. 손흥민의 몸상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그리고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대답.

"손흥민은 원정에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빠진 선수는 그가 유일합니다."

청천벽력이었다. 옆에 있던 영국 기자가 날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멋쩍게 그에게 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기사를 써내려나갔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어 경기장으로 향했다.

친하게 지내는 토트넘 홍보 담당자가 나를 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도 쏘니가 올 줄 알았어요. 쏘니가 오지 않아서 난감하네요,"

"어쩔 수 없죠. 빨리 낫기를 바랄 뿐이죠. 그래도 다른 선수들로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냥 런던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알아볼까.'

물론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부활절 연휴로 인해 비행기표가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었다.

#예상 밖 변화

4월 17일 목요일 오후 10시 40분(독일 시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나왔다. 엔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브레난 존슨을 빼고 케빈 단조를 투입했다. 쓰리백. 아니 파이브백을 선택했다.

평소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축구, '엔지볼'은 공격적이다. 점유율을 극대화하길 원한다. 좌우 풀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측면에서 수비진을 흔든 후 대각선으로 공격하며 반대편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단 올 시즌 '엔지볼'은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어설픈 완성도로 인해 최악의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어설픈 점유율 축구, 산만한 공격 축구를 고집하다가 실점하며 무너지곤 했다. 그래도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런 그가 수비를 강화하는 선택을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원정 후반 40분. 1-0으로 토트넘이 이기고 있었다. 버티면 4강 진출이었다. 선수들은 4강행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더욱이 이 날 토트넘은 공격에 대한 생각을 비웠다. 원정이었기에 일단 수비에 치중했다. 데스티니 우도기와 페드로 포로는 올라가지 않았다. 수비형 풀백의 모습을 보였다.

뒷공간이 안정되니 수비도 탄탄해졌다. 로메로와 판 더 벤의 센터백은 그 어느때보다 집중력을 발휘했다. 비카리오는 선방을 거듭했다. 점유율도, 슈팅수도, 패스 숫자도 모두 프랑크푸르트에게 밀렸다. 그러나 승리했다. 수비 축구의 승리였다. 변화를 택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유감

경기 후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기자회견에 들어갔다. 영국 기자들은 질문을 할 때마다 "축하합니다(Congratulations)"라고 말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언론과의 전쟁에서 한 번 이겼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말은 신중했다.

"우리는 준결승에 올랐고, 준결승에서는 또 어려운 상대를 만나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제 믿음이 아니라, 선수단 스스로가 가진 믿음입니다. 우리처럼 힘든 시즌을 보냈다면, 선수들과 스태프가 분열되어 저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었지만, 전혀 그런 기운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시즌 내내 떠들썩했지만, 그럼에도 이 팀은 하나로 뭉쳐 있었습니다."

말에 뼈가 있었다. '시즌 내내 떠들썩'은 자신의 팀을 흔든 미디어에 대한 일종의 비아냥이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말을 이었다.

"힘든 시즌일수록 이런 믿음은 더욱 중요합니다."

말을 덧붙였다.

"저는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감독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겼다고 해서 제가 더 나은 감독이 된 건 아니고, 어제 제가 일을 잘 못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지금도 똑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신경 안 씁니다. 제가 하는 일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비판적이던 미디어와 일부 팬들에게 한 방 날렸다. 약간의 뒤끝이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여러분들은 저를 조금 더 어래 봐야 할 것 같네요."

시계는 4월 17일 오후 11시 30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영국에서 독일로 출발한 지 약 36시간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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