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 창간 19주년 특별기획
기업의 성공과 실패는 리더의 한 수에 달려 있습니다. 블로터는 기업 대표이사가 직면한 위기 상황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 행동, 그리고 그 결과까지 STAR(Situation, Task, Action, Result) 기법으로 분석해 리더십의 본질을 조명합니다.

삼성·롯데 간 석유화학 빅딜을 통해 재도약한 롯데케미칼은 그룹의 명실상부한 캐시카우였다.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는 CEO가 '내년은 더 잘할 것'이라고 주주 앞에서 선언하기도 했다. 장밋빛 시절이 지나고 지금 롯데케미칼 앞에는 전운이 드리웠다. 파고를 넘겨야 하는 이영준 대표의 어깨도 한층 무거워졌다.
혁신 압박 속 이영준 체제 돌입
이 대표는 삼성 출신으로 1991년 삼성종합화학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R&D와 현장 실무를 모두 경험한 소재 전문가로 당시 삼성그룹의 석유화학·소재 사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제일모직 케미칼연구소, 삼성SDI 여수사업장 등을 거쳤다. 2015년 삼성의 석유화학사가 롯데그룹으로 넘어올 때 이 대표도 함께 적을 옮겼다. 2016년부터 3년간 삼성SDI의 케미칼 사업부문이 전신인 롯데첨단소재 PC사업본부장을 역임한 뒤 2020년 롯데첨단소재가 롯데케미칼에 흡수된 그해 해당 사업부문 대표에 올랐다.
이 대표는 두 그룹 간 빅딜을 계기로 합류했지만 롯데가 지향하는 인사 혁신의 흐름을 상징한다. 당시 신동빈 회장 의지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이뤄졌고 유통·호텔 계열사 대표급 자리는 외부 출신이 차지했다. 이러한 세대교체 분위기는 화학 부문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쳤고 이 대표가 적임자로 꼽혔다.
첨단소재 사업부에는 ABS(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타이렌), PC(폴리카보네이트), TPO(열가소성 폴리올레핀), LFT(장섬유 강화 열가소성수지), EPP(발포 폴리프로필렌), 이스톤 등 대체로 특수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고기능성 제품군이 포함됐다. 이러한 고부가가치 분야를 키우기 위해 M&A에 나섰지만 롯데케미칼은 대량 생산 가능하고 일상적인 용도에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소재 부문에 치중했다. 첨단소재 사업부의 수익 비중은 20~30% 수준에 머물렀으며 기초 소재는 70% 이상 차지했다.
중국이 쉽게 따라올 수 있는 에틸렌(EL), 프로필렌(PL),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범용 제품에 기대온 결과 중국의 물량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수익성이 크게 흔들렸다. 실제 롯데케미칼은 연결 기준 영업손익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사채 투자자와 약정한 재무 비율을 어겨 긴급 처방으로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걸고 투자자와 조율에 나서기도 했다. 에프앤가이드 추정치에 따르면 영업적자 기조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보다 보릿고개가 길어지자 이 대표는 기초 소재 부문을 축소하겠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이 대표는 올초 열린 주총에서 "현재 진행 중인 고부가 사업구조로의 전환을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본원적인 운영 경쟁력 확보 위해 혁신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 차원의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 방향과도 일치한다. 지난달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연말까지 최대 370만톤 규모의 나프타 크래커(NCC) 설비 감축을 목표로 각 사별로 구체적 사업재편 계획을 제출한다"고 말했다. 그는 "'버티면 된다',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라는 안이한 인식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며 뼈를 깎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에 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고부가·친환경 중심의 전환을 위한 정책적 지원안을 자문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긴급입찰에 부친 것으로 알려졌다.

경고등 꺼질때까지 개편…NCC 설비 감축 눈치싸움
이 대표는 첨단소재 사업의 비중을 키우는 한편 재무제표에 켜진 경고등이 꺼질때까지 사업구조 개편을 쉼없이 추진해야 한다.
현재까지 롯데케미칼은 파키스탄 PTA 생산 회사인 LCPL, 수처리 분리막 생산공장 등의 경영권을 매각했다. 또 LCLA, LCI 등 해외 자회사 지분 일부를 기반으로 주가수익스왑(PRS)을 체결해 현금을 확보했다. PRS 계약은 구조상 투자금 회수가 수반되는 파생상품이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도래하면 롯데케미칼이 지분을 되사오거나 제3자에게 매각해야 한다. 롯데케미칼은 후자를 염두에 두고 PRS를 설계했다. PRS에 활용된 해외 자회사 지분도 향후에는 순차적으로 매각될 예정이다. 이밖에 롯데케미칼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보유한 일본 회사 레조낙 지분 4.8%도 처분했다.
이같은 사업구조 전환을 바탕으로 약 1조7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으며 해당 자금은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 등 신성장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대표적으로 율촌산업단지 내 신규 컴파운드 공장이 내년 상반기 준공을 앞뒀다. 총 3061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해당 투자는 가전, IT기기의 내·외장재 소재부터 건축, 의료기기, 자동차의 최첨단 소재에 적용되는 ABS, PC, EP 등의 생산능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성낙선 재무본부장은 "신규 컴파운드 공장은 현재 시운전 단계에 있으며 10월 중 일부 양산을 시작하며 기존 여수 공장의 컴파운드 설비도 이곳으로 이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컴퍼운드 공장으로 내년 하반기 전체 설비가 상업 가동을 개시하면 스페셜티 소재의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롯데케미칼은 조인트 벤처를 구상하는 방식으로 수소 밸류체인을 강화하고 있다. 에어리퀴드코리아와 추진하는 부생수소를 활용한 고압 수소출하센터는 올해 3분기 중 상업 가동된다. 또 SK가스, 에어리퀴드코리아와 공동 투자한 부생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발전 사업은 현재 울산에서 20MW급 발전 설비가 가동 중이며 나머지 60MW 급 발전소도 내년 중 전력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정부 차원의 구조조정 주문에 맞춰 적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구상을 마련 중이다. 정부가 무임승차하려는 기업은 향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여수, 대산에 위치한 NCC 설비를 하루빨리 축소해야 한다. 여수의 경우 타 화학사의 NCC 설비와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또 HD현대오일뱅크와 공동 출자한 HD현대케미칼을 통해 운영하는 대산 공장 설비는 지분 재정립 등 다양한 재편안이 거론되고 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업계 전반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분위기이며 이에 맞춰 당사도 여러 시나리오를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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