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병을 늦추는 약은 정말 있는 것일까요?

디멘시아뉴스(dementianews) 2026. 4. 16. 12: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① 파킨슨병이 남긴 오래된 질문

"선생님, 이 약은 병을 고치는 약입니까, 아니면 그냥 증상만 조금 덜하게 하는 약입니까?"
진료실에서 보호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의사도 잠시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열이 날 때 해열제를 복용하면 열이 떨어집니다. 몸도 한결 덜 아프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해열제가 감기의 원인을 없앤 것은 아닙니다. 반면 세균성 폐렴에 쓰는 항생제는 병의 원인 쪽을 직접 겨냥합니다. 증상을 덜어주는 것과 병의 흐름 자체를 바꾸는 것은 이렇게 다릅니다.

신경과에서는 이 차이를 설명할 때 'DMT', 즉 Disease-Modifying Therapy라는 용어를 씁니다. 우리말로는 '질병조절치료제' 또는 '질병수정치료제'라고 부릅니다. 이름은 다소 딱딱하지만, 뜻은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덜 힘들게 해주는 약이 아니라, 질병이 앞으로 흘러가는 방향과 속도 자체를 바꾸려는 치료라는 뜻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천장에서 비가 새어 거실 바닥이 젖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걸레로 바닥을 닦습니다. 당장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니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지붕 위로 올라가 깨진 기와를 고칩니다. 둘 다 필요할 수 있지만, 역할은 완전히 다릅니다. 신경과에서 말하는 DMT는 대체로 "걸레질"보다는 "지붕 수리"에 더 가깝습니다.
챗지피티 생성

문제는 이 둘을 실제로 구별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파킨슨병이 그러했습니다. 

파킨슨병은 오랫동안 "혹시 병 자체를 늦출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끈질기게 받은 질환이었습니다. 레보도파, 도파민 작용제, MAO-B 억제제 같은 약들이 등장하면서 환자들은 실제로 많이 좋아졌습니다. 손 떨림이 줄고 몸이 덜 굳고 걸음이 나아졌습니다. 가족들이 보기에도 "병이 덜 진행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줄 만큼 변화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아주 중요한 함정이 생깁니다. 겉으로 덜 나빠 보인다고 해서, 정말 병이 덜 진행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최근 리뷰들도 현재까지 파킨슨병에는 승인된 DMT가 없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오히려 파킨슨병약이 너무 잘 듣기 때문입니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실 수 있지만 사실입니다. 파킨슨병의 많은 약은 증상을 꽤 강하게 개선합니다. 그러면 환자는 덜 나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신경세포가 덜 죽고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부족한 도파민 기능을 외부에서 보충해 일시적으로 몸을 잘 움직이게 만든 것인지, 그 둘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자동차 엔진이 계속 망가지고 있는데도 누군가 바깥에서 밀어주어 차가 멀쩡하게 잘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파킨슨병 연구자들은 아주 영리한 시험 설계를 고안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연 시작 연구(Delayed-Start Trial)입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한 그룹은 약을 일찍 시작하고, 다른 그룹은 한참 뒤에 시작합니다. 만약 그 약이 단지 증상만 덜하게 하는 약이라면, 뒤늦게 시작한 그룹도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약이 정말 병 자체를 늦추는 약이라면, 먼저 시작한 그룹은 이미 병의 궤적이 달라졌기 때문에 나중에도 차이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마치 같은 산길을 내려오는데 한 사람은 처음부터 좋은 등산화를 신고, 다른 사람은 한참 맨발로 걷다가 뒤늦게 신는 것과 비슷합니다. 등산화가 단지 "잠깐 편한 신발"이라면 뒤늦게 신어도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발의 손상 자체를 줄여주는 신발이라면 처음부터 신은 사람이 끝까지 더 유리할 것입니다.

실제로 라사길린 같은 약은 한때 이런 설계에서 "혹시?"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용량에서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지만, 다른 용량에서는 재현되지 않았고 결국 해석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레보도파 역시 파킨슨병 치료의 핵심 약이지만, 조기 시작이 장기적인 질병 수정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쪽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결국 파킨슨병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좋은 약과 DMT는 같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말 훌륭한 증상 치료제라도 DMT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파킨슨병만 그랬습니까? 다른 신경과 질환들도 비슷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DMT라는 꿈은 파킨슨병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다발성경화증(MS)입니다. MS는 엄밀히 말해 전형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이라기보다 면역매개성 염증성 탈수초 질환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신경과에서 '질병조절치료제(DMT)'라는 개념이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분야가 바로 MS입니다. 인터페론 베타, 글라티라머 아세테이트, 나탈리주맙, 핀골리모드, 오크렐리주맙 같은 여러 약제가 재발을 줄이고 새로운 MRI 병변을 억제하며 장애 축적을 늦추는 치료 전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시 말해, 신경과에서 DMT라는 말은 공허한 구호만은 아니며, 어떤 질환에서는 실제로 성공한 개념입니다.

반대로 여전히 "꿈의 영역"에 가까운 질환도 많습니다. 헌팅턴병은 수십 년째 병 자체를 늦추는 치료를 찾고 있지만, 최근 문헌들은 여전히 승인된 DMT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여러 유전자 치료와 헌팅턴 저감 전략이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질병 조절 치료"의 자리에 오른 것은 없습니다.

다계통위축증(MSA)도 마찬가지입니다. 파킨슨 증상과 자율신경장애가 함께 오는 무서운 질환이지만, 현재 표준 치료는 여전히 증상 완화와 지지요법 중심입니다. 최근 리뷰도 MSA에는 승인된 DMT가 없다고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은 조금 다릅니다. 이 분야는 완전한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부분적인 DMT" 혹은 "제한적이나마 진행을 늦추는 치료"가 실제 진료에 들어와 있습니다. 릴루졸은 생존을 조금 늘리고, 에다라본은 일부 환자에서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출 수 있으며,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에서는 표적 치료가 등장했습니다. ALS 관련 최근 문헌은 이런 약들을 제한적이지만 승인된 Disease-Modifying Treatments로 다룹니다. 즉, 신경과 질환의 세계는 흑백으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어떤 질환은 DMT가 확립되었고, 어떤 질환은 후보만 있으며, 어떤 질환은 부분적 성공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여러 질환의 역사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신경과에서 DMT란 "신기루"도 아니고 "기적의 주문"도 아닙니다. 어떤 병에서는 진짜였고, 어떤 병에서는 너무 서둘러 불렀으며, 어떤 병에서는 지금도 그 문턱 앞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알츠하이머병과 레켐비를 논할 때, 우리는 들뜬 마음과 신중한 태도를 동시에 가져야 합니다. 파킨슨병은 우리에게 "증상이 좋아 보인다고 병이 늦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가르쳤고, MS는 "그래도 진짜 DMT는 존재할 수 있다"고 보여주었습니다. ALS는 "제한적이지만 의미 있는 질병 조절"이라는 중간지대를 알려주었고, 헌팅턴병과 MSA는 "좋은 과학이 곧바로 승인된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레켐비는 이 지도에서 어디에 놓여 있을까요?

*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며 근력 약화와 마비가 진행되는 질환
* 다발성경화증(MS, Multiple Sclerosis): 면역 이상으로 중추신경계의 탈수초가 발생하는 염증성 질환
* 다계통위축증(MSA, Multiple System Atrophy): 파킨슨증과 자율신경장애가 함께 나타나는 진행성 신경퇴행성 질환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현 용인효자병원 진료부장, 연세대학교 신경과 외래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동대학 석·박사 취득
2000년 세계적인 인명사전인 Marquis Who's Who 등재
2006년 대통령직속 산업의학 발달위원회 전문위원
저서 《프리온병, 가장 낯설고 가장 위험한 치매 이야기》, 《치매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야기》, 《담장 너머 치매》, 《우리 부모님의 이상한 행동들》 등

Copyright © 본 기사의 저작권은 디멘시아뉴스에 있으며, 사전 동의 없는 무단 복제·배포·전송·변형을 일체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