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격전지 황무지…천막 교실서 공부하는 아이들
1951년 영천은 한국전쟁 최전선 격전지로, 미군 40사단과 한국군이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서울 재탈환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었다.
전투로 모든 학교가 파괴된 황폐한 땅에서 아이들은 폭격 흔적 천막 아래 모여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40사단 사단장 클리블랜드 준장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민족"이라며 병사들에게 모금을 호소했다.

미군 40사단 1만5천 명 1달러씩…전쟁 중 학교 건립 모금
클리블랜드 장군의 부탁에 40사단 소속 미군 병사들은 월급 1달러씩을 떼어주며 "한국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모금 운동을 펼쳤다.
1만5천 명 병사들이 모은 1만5천 달러(당시 환율 약 1억 원)는 전쟁 물자 부족 속에서도 학교 신축에 투입됐다.
1952년 완공된 영천 미군학교는 콘크리트 벽돌 건물과 교과서·책상까지 완비, 전쟁 중 최초의 제대로 된 교육시설로 탄생했다.

클리블랜드 장군의 확신…"희망 잃지 않는 민족, 반드시 승리"
클리블랜드 장군은 "총탄 속에서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의 미래를 믿었다"며 "이 학교는 우리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의 예언대로 한국은 휴전 1년 만에 경제부흥을 시작했고, 학교는 지역 명문고로 성장하며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미군 측은 장군의 유지를 계승해 매년 졸업식에 참석, 장학금 전달로 70년 인연을 이어왔다.

매년 졸업식 미군 장교들…40사단 후손 정복 차림 장학금 수여
현재 주한미군 40사단 후손 장교들은 매년 2월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생 10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
2026년 졸업식엔 제19지원사령관 진H 김 준장 등 10여 명 미군 장교가 정복 차림으로 입장, "40사단의 약속 지킨다"고 축사했다.
장학금은 1인당 100만 원 상당, 누적 50억 원 이상으로 지역 교육 발전에 기여 중이다.

학교의 역사 계승…미군 동상·기념관, 학생들 교육 현장
학교 정문엔 클리블랜드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고, 미군 기념관엔 1952년 모금 사진·병사 편지 원본 보존됐다.
학생들은 매 학기 미군사·한미동맹 교육 필수 수강하며, 졸업생 30%가 미군 장학금으로 대학 진학한다.
미군 장교들은 "당신들의 조상이 우리를 살렸듯, 우리가 미래를 돕겠다"며 학생들과 기념촬영한다.

한미동맹 살아있는 증거…70년 전쟁의 빚 갚는 미군 전통
이 학교는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주한미군 사령관도 초청 대상이며 트럼프 대통령도 "40사단의 숭고한 희생" 언급했다.
2025년 졸업식엔 용산 미군 사령부 참모진 20명이 참석, "한국 청년들이 세계 최강 미군과 어깨 나란히" 격려했다.
전쟁터 모금으로 지은 학교가 70년째 미군 장학금 받는 모습은 한미 우호의 살아있는 역사다.

미래로 이어지는 약속…학생들 "미군 형님들 덕에 대학 간다"
졸업생들은 "미군 장교 형님들 덕에 꿈 키운다"며 감격, 40사단 후손들은 "조상의 뜻 잇겠다"고 약속한다.
학교는 미군 장학금으로 장기 장학생 제도 운영, 의대·공대 진학률 80% 이상 기록 중이다.
한국전쟁 희생이 낳은 교육의 열매는 한미동맹의 영속성과 미래 세대 교류의 상징으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