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를 위한 섬, 호주 모튼 아일랜드
Moreton Island
에스프레소용 커피 가루 같은 모래가 발가락 틈으로 파고든다.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모래섬, 모튼 아일랜드가 품은 사막에 왔다. 등산용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무장하고 언덕 앞에 비장하게 섰다. 이틀 전, 골드코스트에서 서핑 강습을 받고도 파도를 못 타 분했던 마음을 샌드보딩으로 설욕하고 싶었다. 광대한 모래 언덕과 짙푸른 하늘 사이, 나무 몇 그루가 파슬리 가루처럼 뿌려진 비현실적인 풍광은 눈부시지만 옆구리에 판자를 끼고 언덕 오르기는 녹록지 않다. 없는 고소공포증도 생길 것 같은 아찔한 높이, 네발로 기지 않으면 굴러떨어지는 가파른 경사와 작렬하는 햇빛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자세를 제대로 잡지 않으면 뒤집혀 밀가루 범벅한 동태전 꼴이 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꽤 긴장됐다. 겁먹은 것이 무색하게 보딩은 12초 만에 끝났다. 속도가 시속 40km/h 정도에 달하기 때문이다. 스피드와 스릴을 좀 더 체감하고 싶다면 고강도 운동에 버금가는 ‘듄(Dune)’ 클라이밍의 고통을 이겨낼 것. 세 번쯤 타면 아쉬움도 직성도 풀린다. 다음 순서를 위해 지체 없이 길을 나선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모튼 아일랜드는 액티비티의 천국이다.
섬의 베이스캠프이자 안내자, 탕갈루마 아일랜드 리조트(Tangalooma Island Resort)에선 섬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레저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헬기를 타고 쐐기를 닮은 모래섬과 너무 투명해서 가라앉은 난파선의 형체까지 또렷이 보이는 바다를 조망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물놀이다. 15척의 난파선을 해양 생물 기지로 만든 탕갈루마 렉(Tangalooma Wrecks)엔 무려 돌고래, 수염상어, 듀공 같은 ‘대어’들이 찾아온다. 헤엄 좀 치는 이들은 수영으로 충분히 닿는 거리지만 굳이 사서 힘을 빼고 싶지 않은 이를 위한 스노클링 보트도 있다. 짠물 맛을 실컷 봤고, 섬에 머물 시간이 더 있다면 블루 라군(Blue Lagoon)으로 향하자. 섬의 토양이 뿜어내는 신선한 지하수 층이 만든 담수호다. 이름은 ‘블루’지만 물빛은 갈색. 주변의 티트리나무에서 흘러나온 성분 때문이다. 이곳에서 할 일이란 물에 떠다니며 티트리 향에 취하기, 라군에 서식하는 조개와 해조류, 새우 같은 것을 먹기 위해 앞다퉈 찾는 조류 관찰하기 등 한량 같은 일과뿐이다.
전지훈련 온 운동선수처럼 섬 곳곳을 휘젓고 다닌 후 해변으로 향했다. 혼신을 다해 나를 보필해준 액티비티 가이드에겐 미안하지만 모튼 아일랜드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모래사장 위에 등 깔고 누웠을 때다. 모튼 베이의 광활한 수평선, 바다를 태워버릴 기세로 빛을 쏟아내는 해,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반짝이는 윤슬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몸이 뜨거워지면, 아무리 걸어 나가도 허리를 넘기지 않는 너그러운 바다에 몸을 적셨다. 종아리를 툭툭 치며 지나가는 크고 작은 물고기의 자태를 코 박고 응시하다 보면 이 섬의 별명이자 리조트 이름인 탕갈루마의 뜻, ‘물고기가 모이는 곳’이 비로소 실감나게 와닿는다. 유럽인이 이 땅에 발 들이기 전, 2천여 년 동안 섬의 원주민이었던 콴다무카(Quandamooka)의 응구기(Ngugi)족은 이 탐스럽고 통통한 물고기와 조개, 거북, 갑각류를 힘 하나 안 들이고 잡아서 실컷 먹었겠구나. 그런 생각이나 하며 해가 수평선 아래로 자취를 감출 때까지 해변을 지켰고, 정말 좋았다. 서울에 사는 나는 9시간 반을 날아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순간을 브리즈번 사람들은 배를 타고 90여 분만 달려오면 누릴 수 있다.
모튼 아일랜드의 정수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야생 돌고래와 놀기
매일 일몰 전후 섬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야생 돌고래 얘기다. 지능이 비상한 이 동물 집단은 파란색 옷을 입은 여자(탕갈루마 아일랜드 리조트의 에코 레인저다)가 처음 보는 인간 몇몇과 함께 자신에게 맛있는 청어를 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돌고래의 자생을 위해 엄격한 지침에 따라 먹이를 주고 제한된 시간 동안 교감을 나누는 이 액티비티는 탕갈루마 아일랜드 리조트의 데이 투어를 신청하면 체험할 수 있다.
하룻밤 머물기
탕갈루마 아일랜드 리조트는 모튼 아일랜드와 이음동의어로 여겨지는 존재다. 섬을 들고 나는 배편부터 곳곳의 야생 자연을 매끄럽게 누릴 수 있는 액티비티까지 모두 탕갈루마를 통해 이뤄진다. 섬 곳곳을 구경하고 싶다면 최소 이틀 이상 필요하다. 밤을 나길 원하는 이들에게 탕갈루마는 빌라, 아파트먼트, 호텔, 베케이션 홈 등 9가지 타입의 ‘머물 곳’을 선택지로 제공한다.
문의 www.tangalooma.com
야생에서 뒹굴기
모험 지수가 더 높은 시간을 원한다면 과감히 리조트를 벗어날 것. 멀검핀 캠핑장은 야성 넘치는 탐험가의 베이스캠프로 해변가와 사막, 숲에 10개의 캠프 사이트를 갖추고 있다. 단, 섬을 직접 누빌 사륜구동차를 가지고 들어와야 하며,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차량 출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의 www.mulgumpincamping.net.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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