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이 이상형이라고 고백한 그녀, 대체 누구길래?
“모든 매력을 다 갖춘 여자”, 그녀는 누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미모는 전설처럼 회자됩니다. “성형이 필요 없는 신의 창조물”, “단군 이래 최고의 미인”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던 그녀. 심지어 홍콩을 대표하는 스타, 성룡조차 그녀를 이상형으로 꼽았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미모와 파란만장했던 삶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8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그 이상의 존재

8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트로이카라는 말이 있지만, 그녀는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트로이카는 무슨, 정윤희가 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압도적인 미모와 독보적인 분위기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와 동시에 방송, 광고, 영화계를 휩쓸며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이라는 수식어를 거머쥐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2016년, 한 증권사에서 여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배우 2위에 오를 만큼 그녀는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정윤희입니다.

경남 통영에서 서울까지, 운명적인 캐스팅

정윤희는 1954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지역 최고 미인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그녀가 등장하면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치 영화 ‘말레나’의 한 장면 같았다고 할까요?

서울에 올라와 언니 집에 머물던 어느 날, 명동을 걷던 정윤희는 이경태 감독의 눈에 띄어 그 자리에서 캐스팅 제안을 받게 됩니다. 이경태 감독은 그녀를 보자마자 “완벽한 마스크와 균형 잡힌 몸매, 화면에 담아야 할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중앙일보 사진기자 역시 “어떤 각도에서든 카메라에 완벽하게 담겼다”라고 극찬했습니다.

한 번은 촬영 중에 정윤희가 잠깐 길거리를 걸었는데, 그녀를 보기 위해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교통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윤희를 보기 위한 인파로 서울 시내가 막히다’라는 기사가 보도될 정도였으니, 그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류 스타의 시조새?
정윤희가 출연한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가 대만과 홍콩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그녀의 인기는 글로벌하게 확장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한류 배우의 시조새라고 할 수도 있겠죠.
성룡이 그녀를 이상형으로 꼽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룡이 한국에 자주 방문했다는 사실과 엮여 성룡이 정윤희에게 프러포즈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윤희는 “성룡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라며 소문을 일축했습니다. 이제는 해명하기도 지친다고 할 정도였죠.
결혼과 은퇴, 그리고 평범한 삶
승승장구하던 정윤희는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은퇴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가 교제하던 조 모 회장은 혼인 관계에 있었고, 두 사람은 간통죄로 고소되어 구속까지 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죄 판결 후 1984년 조 회장과 조용히 결혼했고,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결혼 이후 정윤희는 가정과 신앙에 집중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착하고 정 많은 동네 아주머니’로 그녀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외아들이 미국 유학 중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남편의 회사가 기울면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등 부침을 겪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이민설이 돌기도 했지만, 현재는 경기도에서 조용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전설은 영원하다
지금까지 성룡이 이상형이라고 고백했던 한국 배우, 정윤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으며, 그녀는 영원한 전설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