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배드민턴 단식에서 같은 태극마크를 단 두 선수가 결승 무대에 함께 섰다. 20일 마카오 이스트 아시안게임즈 돔에서 열린 BWF 월드투어 마카오 오픈(슈퍼 300) 여자 단식 결승에서 김가은이 박가은을 게임 스코어 2-0(21-16, 21-13)으로 제압했다. 두 선수 모두 같은 협회 소속 동료지만 결승 코트 위에서는 양보가 없었다. 김가은에게는 2024년 8월 코리안 오픈 이후 끊겼던 개인 타이틀 가뭄을 끝내는 승리였고, 박가은에게는 시드조차 받지 못한 처지에서 거둔 생애 첫 월드투어 결승 진출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붙었다. 두 선수의 격차가 경험치에서 갈렸다는 점이 이 결승전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김가은은 세계 랭킹 18위로, 1위 안세영과 함께 한국 여자 단식의 두 축으로 꼽힌다. 직전까지 김가은의 이름이 크게 부각된 무대는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전이었다. 세계여자단체선수권대회(우버컵) 결승에서 세계 최강으로 통하던 천위페이를 잡아내며 한국의 깜짝 우승을 이끈 주역이 바로 김가은이었다. 그 성과가 워낙 컸던 탓에 오히려 개인 투어 성적표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마지막 개인 타이틀이 2024년 8월 코리안 오픈이었다는 사실은, 단체전에서 정점을 찍은 선수가 개인전에서는 1년 10개월 가까이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는 간극을 보여준다.
박가은의 행보는 정반대 방향에서 흥미롭다. 세계 랭킹 61위로 이번 대회 시드를 받지 못한 채 출발한 그는 매 라운드 상위 랭커들을 연달아 무너뜨리며 결승까지 올라왔다. 시드 없이 결승에 도달했다는 것은 토너먼트 대진표상 까다로운 상대들을 피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해서, 이 자체로 박가은의 기복 없는 경기력을 증명하는 지표가 된다. 결승 상대가 같은 한국 선수, 게다가 대표팀 선배인 김가은이었다는 점은 두 선수 모두에게 부담과 동기를 동시에 안겼을 법한 대목이다. 9월로 예정된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단식 출전권이 2장뿐이라는 점도 이번 대회의 무게를 키운 요인이었다. 랭킹 포인트가 곧 출전권 경쟁으로 직결되는 시즌 중반, 이번 마카오 오픈은 단순한 우승 트로피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결승전은 게임당 평균 약 19분, 총 39분 만에 끝났다. 1게임에서 김가은은 초반 8-3으로 앞서 나갔고, 중반 5연속 득점으로 13-5까지 격차를 벌렸다. 박가은이 16-14까지 추격하며 한때 위협적인 흐름을 만들었지만, 김가은은 곧바로 3점을 연속으로 따내며 21-16으로 첫 세트를 마무리했다. 2게임은 초반 6-6 동점에서 출발했으나 김가은이 다시 5연속 득점을 터뜨려 11-6으로 달아났고, 이후 격차를 줄이지 못한 박가은을 상대로 21-13 승리를 확정했다.
결승 이전까지의 행보를 보면 김가은의 안정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32강 천수위(대만)전을 21-16, 21-17로 마무리하며 36분 만에 2-0 승리를 거뒀다. 16강에서는 태국의 톤룩 새행을 상대로 21-13, 22-20으로 이겼고 경기 시간은 44분이었다. 8강에서는 한국 선수 김민지를 만나 21-11, 22-20으로 승리, 47분이 걸렸다. 준결승 상대 한첸시(중국)와의 경기에서는 1게임을 22-20으로 따냈지만 2게임을 14-21로 내주며 이번 대회 첫 게임 패배를 기록했고, 3게임에서 21-12로 뒤집으며 2-1, 57분 만에 결승행을 확정했다.

결승까지 4경기 합산 성적은 8게임 승, 1게임 패, 총 득점 185점, 총 실점 150점으로 득실 차는 +35점이다. 누적 경기 시간은 3시간 4분이었고, 결승전 39분을 더하면 우승까지 총 3시간 43분이 소요됐다.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경기 시간이 36분→44분→47분→57분으로 늘어난 점도 눈에 띄는 수치다.
이번 우승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지점은 경기 시간의 증가 추세가 결승에서 다시 39분으로 꺾였다는 사실이다. 준결승까지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경기 시간이 길어졌던 흐름과 비교하면, 결승에서의 빠른 마무리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상대적 경험치 차이가 만든 결과로 읽힌다. 박가은이 시드 없이 올라온 다크호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무대 경험이 부족한 선수가 결승이라는 압박 속에서 흔들릴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반대로 김가은은 우버컵 결승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천위페이를 상대로 승리를 따낸 경험이 있다. 그 경험치가 이번 결승의 빠른 마무리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랭킹 포인트 측면에서 이번 우승의 실질적 가치도 짚을 필요가 있다. 9월 아시안게임 단식 출전권이 2장뿐인 상황에서, 이번 타이틀로 김가은은 안세영과 함께 출전권을 확보할 가능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단체전에서 이미 검증된 기량을 개인전 포인트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우승은 트로피 하나의 의미를 넘어 시즌 후반 출전권 경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결과로도 평가된다. 박가은 입장에서도 이번 결승 진출은 손해가 아니다. 무시드 선수가 월드투어 결승까지 올라 처음으로 시상대에 섰다는 사실 자체가 랭킹 상승의 발판이 되며, 다음 대회부터는 시드를 받는 위치로 올라설 가능성이 생겼다. 한국 여자 단식 뎁스가 안세영, 김가은에 이어 박가은까지 확장되는 흐름이라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같은 국가 동료가 결승에서 맞붙는 코리안더비는 흔한 장면이 아니다. 이번 결과로 김가은은 개인 타이틀 공백을 끝냈고, 박가은은 다음 시드 배정을 기대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9월 아시안게임 출전권 2장을 놓고 한국 여자 단식 내부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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