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와인] '마르케제 안티노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와 '수퍼 투스칸'
안티노리 후작이 수퍼 투스칸이 아닌 토착 품종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까닭
마르케제 안티노리(Marchese Antinori). 우리말로 안티노리 후작이라고 번역되는 이 와인은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로 빚는다. 최소 27개월 이상 숙성시켜야 하는 리제르바(Chianti Classico Riserva)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루비 레드의 색깔의 이 와인은 잘 익은 과일·블랙베리·자두·체리 향이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타닌과 넉넉한 구조감은 인자한 얼굴의 피에로 안티노리(Piero Antinori, 1983~) 후작을 떠오르게 한다.
피에로 안티노리는 이탈리아 와인 혁신의 대명사인 수퍼 투스칸, 솔라이아(Solaia)와 티냐넬로(Tignanello)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후작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와인에 자신의 이름을 넣을 만도 하지만 안티노리 후작이 자신의 이름을 붙인 와인은 토스카나의 전통적인 와인인 '키안티 클라시코'였다.
그 이유는 안티노리를 언급하지 않고는 이탈리아 와인을 말할 수 없다는 안티노리 가문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안티노리는 이탈리아 와인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티노리 가문의 와인 생산 역사는 11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피렌체 와인 길드에 공식적으로 가입한 1385년을 와인 생산 원년으로 삼는다.
이후 단 한 세대도 끊이지 않고 가족 경영으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현 회장인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이 25대이며 그의 세 자녀 모두 가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탓에 안티노리는 윌리엄 오하라(William T. O’Hara)의 저서 ‘세계장수기업, 세기를 뛰어 넘은 성공’에 세계 최장수 와인회사로 소개됐다. 물론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안티노리, 그리고 수퍼 투스칸
600년 이상의 역사를 축적하며 세계 최장수 기업으로 거론되는 안티노리의 놀라운 발전은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의 업적이다.
그는 혁신과 창조의 산물이자, 이탈리아 고급와인의 대명사가 된 '수퍼 투스칸' 와인의 창조자다.
그는 이탈리아 와인산업의 근대화와 고급화에 앞장섰다. 세계 유명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탈리아 와인을 내놓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노력으로 1970년 수퍼 투스칸 와인의 효시로 불리는 티냐넬로가, 그리고 1978년에는 솔라이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2000년, 이탈리아 와인 역사의 커다란 이정표가 세워진다.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라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미국의 저명한 와인 전문잡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지의 100대 와인에 솔라이아 1997 빈티지가 1등으로, '올해의 와인'(Wine of the Year)에 선정된 것이다. 이탈리아 와인 역사상 처음이었다.
좋은 작황만으로는 슈퍼투스칸이 탄생하지 않는다. 안티노리 후작의 끝없는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이 더해져 세계적인 품질의 수퍼 투스칸 티냐넬로와 솔라이아는 탄생했다.
이 와인들이 생산되는 고장은 토스카나에서도 키안티 클라시코라고 불리우는 지역이다. 이 곳에서는 그 지역 고유의 포도 품종인 산지오베제(Sangiovese)를 주로 사용하고 전통적인 양조방식을 따라 생산된 와인에 높은 등급을 부여한다. 이 조건에 위배될 경우 등급에서도 탈락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은 이러한 관례를 과감하게 깨버렸다. 그는 1970년 초 국제적으로 인기를 끌던 포도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도입했다. 그리고 새로운 양조방법으로 티냐넬로를 만들었다.
1978년에는 티냐넬로 포도원에서 가장 좋은 곳에서 수확한 포도로 솔라이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와인들은 전통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았기에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없었다. 세계 최고의 품질임에도 불구하고 본국에서는 가장 하위 등급인 '비노 다 따볼라'(Vino da Tabola)라는 등급으로 출시됐다.
우리에게 친숙한 그리고 듣기에도 멋진 '수퍼 토스카나(Super Toscana)'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미국의 와인 애호가들이었다.
안티노리, 그리고 마르케제 안티노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를 바꾼 거장’이라는 찬사를 받는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이지만 그도 전통을 뒤엎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프랑스 포도 품종을 들여오고, 기존 와인 생산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와인을 생산했을 때 전통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들었다. 토스카나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주변 와인 생산자들의 비난은 날카롭고 거칠었다.
하지만 혁신과 전통이 정반대의 개념이 아니었던 듯 싶다.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은 이탈리아 와인의 전통을 지켜내기 위해 혁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변의 비난을 이겨내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와 실행력이 필요했다.
그의 이런 노력 덕분에 와인 명가라는 안티노리 가문의 전통이 지속되고 있다.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은 가문의 근간이 된 키안티 클라시코 지역과 산지오베제 품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이름 ‘마르케제 안티노리’를 수퍼 투스칸 와인이 아니라 키안티 클라시코에 부여했다. 그의 끊임없는 품종 개발 노력은 토스카나의 자존심인 산지오베제를 이제 피노 누아와 같은 귀족 품종으로 끌어올렸다.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의 땀과 열정으로 키운 산지오베제 포도로 만든 와인이 바로 '마르케제 안티노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