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부르지마' 20살 연상과 비밀 출산 후, 아들을 동생으로 호적 올린 최고 톱스타

‘빙글빙글’,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1980년대를 휘어잡았던 가수 나미. 독보적인 무대 장악력과 중독적인 댄스곡으로 시대를 대표하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가요계에서 사라졌습니다. 누군가는 그녀가 은퇴했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해외로 떠났다고 수군댔지만, 정작 그 뒤에는 그 누구도 몰랐던, 너무도 조용하고 가슴 저린 이야기가 숨어 있었습니다.

1979년, 해외 무대에서도 인기를 끌던 나미는 한 공연에서 소속사 대표 최봉호 씨를 만나게 됩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딛고 음악 하나로 살아가던 나미에게, 최 씨는 반포동 아파트를 선물하며 후원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나미는 “가난하게 살아도 좋으니, 노래만 계속 부를 수 있게 해달라”며 그 선물을 거절했고, 바로 그 진심 어린 태도에 최 씨는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했고, 당시 이미 아내와 별거 중이었던 최 씨는 1980년부터 나미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연예계 거물이자 나이트클럽 사업의 큰손이었던 최 씨, 그리고 당시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던 나미.

1984년, 나미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그녀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냉혹했습니다. 20살 연상의 유부남과의 관계, 그리고 결혼이 아닌 상황에서의 출산. 그 모든 것이 나미를 침묵하게 했고,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 아들을 ‘남동생’으로 호적에 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엄마’라고 불릴 수조차 없던 나미는, 외출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가족 외출 중에도 아이는 남편과 함께 걷고, 나미는 늘 앞서 걸으며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 한 번은 백화점에서 아이가 멀리 있는 나미를 “엄마”라고 불렀고 이에 혼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흐른 1995년, 최 씨는 전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마침내 나미와 법적으로 부부가 됩니다. 결혼식도 없었고, 축하받을 시간도 없었지만 그 순간은 그들에게 가장 큰 해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나미는 자신의 아이를 ‘아들’로 당당하게 호적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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