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창성의 인문학 산책] 왕사남, 생육신 원호(元昊)
‘간밤에 흐르던 여울 슬피 울며 지나갔는네 / 이제 와 생각하니 임이 울던 소리였구나 / 저 물이 거슬러 흐를 수 있다면 나도 울어 보내리라.’
1728년(영조4년) 남파(南坡) 김천택(金天澤) 선생이 엮은 시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나오는 시입니다. 하지만 누가 지은 시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에 남송마을이 있습니다. 마을을 지나는 도로 왼편, 송림이 우거진 야산에 불사이군(不事二君), 오로지 한 명의 왕을 모셨던 ‘왕사남’이 잠들어 계십니다.

원호 선생은 누구실까요?
원주 원(元)씨로 원주가 고향입니다. 1423년(세종5년) 식년 문과에 급제한 뒤 문종 때 집현전(集賢殿)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습니다. 1453년(단종1년) 수양이 황보인(皇甫仁)과 김종서(金宗瑞) 등 원로 대신들을 도륙하고, 전권을 장악하자 병을 핑계로 고향에 돌아와 은거했습니다.
1457년(세조3년) 6월22일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그 서쪽에 집을 지어 관란정(觀瀾亭)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강가에 나가 시를 읊기도 하고 집에서 글을 짓는 것으로 시름을 달랬습니다. 그러면서 아침 저녁으로 영월 쪽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임금을 사모했습니다.
그해 10월21일 단종이 정치적으로 피살되자 내 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삼년상을 치렀습니다. 상을 마친 뒤에는 원주 남송마을로 돌아와 두문불출했죠. 동네 사람들도 선생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앉을 때는 반드시 동쪽을 향해 앉고, 누울 때도 반드시 동쪽에 머리를 두었다고 합니다. 가신 님이 잠든 묘소가 집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한번은 세조가 선생에게 호조 참의(戶曹 參議)라는 높은 벼슬을 내리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죽기를 맹세하고 수양의 명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1469년(예종1년) 손자인 원숙강(元叔康)이 사관으로 있었습니다. 그해 4월 민수(閔粹)의 사화(史禍)에 휘말려 결국 참형(斬刑)을 당했습니다. 그는 사초에 좌의정 권람(權擥·1416~1465년)의 졸기(卒記)를 쓰면서 ‘임금(세조)이 부처를 좋아하고 대신이 큰 저택을 지었다(上好佛 擥治第)’는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사화가 번지자 화를 피하기 위해 사초의 일부 기록을 삭제했다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원호 선생은 평생을 유일무이한 왕, 단종을 그리다 왕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진정한 ‘왕과 사는 남자’였던 것입니다. 선생의 묘역은 단종이 잠들어 있는 영월 장릉(莊陵)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인근에서 보기 드문 늘푸른 송림이 우거져 있고 그 유려한 산세도 그러합니다.
240여 년이 지나 1698년(숙종24년)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위됐습니다. 신주도 종묘에 모셔졌습니다. 이듬해 숙종25년 2월10일 왕이 모든 신하들을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판부사(判府事) 최석정(崔錫鼎·1646~1715년)이 아룄습니다.
“장릉의 헌관은 영월군수로 정하여야 하니 영월을 부사(府使)로 승격시켜 높이소서.” 임금이 옳게 여겨 윤허했습니다. 최 판부사가 또 건의했습니다.
“듣건대 원호(元昊)는 문종조에 벼슬하여 직제학을 지냈는데 단종 초년에 원주에 물러가 살다가 단종이 승하하자 영월로 들어가 3년상(三年喪)을 입었다고 합니다. 광묘조(光廟朝·세조)에 특별히 호조 참의에 제수하고 누차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니 정표(旌表)하여 권장하는 도리가 있어야 합니다. 사인(士人) 김시습(金時習)은 광묘조 때부터 입선(入禪)하여 머리 깎고 세상을 피하였다가 환속하여 아내를 얻었으나 자손이 없습니다. 그의 문장과 절행이 우뚝하여 숭상할 만하니 증직(贈職)시키고 사제(賜祭)하여야 합니다.”

얼마 후 원주 남송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했습니다. 4년 뒤 1703년(숙종29년) 선생은 원천석(元天錫) 사당에 배향됐습니. 그리고 1713년(숙종39년) 12월 영의정 최석정이 글을 짓고, 우의정 조상우(趙相愚·1640~1718년)가 쓴 비석이 원호 선생 묘지 앞에서 우뚝 섰습니다.
1782년(정조6년)에는 선생과 함께 이맹전(李孟專·1392~1480년), 조려(趙旅·1420~1489년), 김시습(1435~1493년), 성담수(成聃壽·생몰연대 미상), 남효온(南孝溫·1454~1492년)이 이조판서에 추증됐습니다. 생육신입니다.
선생은 그 뒤 원주 칠봉서원(七峰書院), 함안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제향됐습니다.
지난 11일 관란 선생 묘역을 처음 찾았습니다. 수백 년 성상의 늘푸른 소나무들이 원호 선생을 향해 일제히 절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의(義)를 버리고, 녹(祿)을 쫓는 세상에도 천지 자연은 변함없이 절개와 지조에 머리를 숙인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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