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 순간’ 황선우, 1분43초92로 아시아 신기록 폭발

부산 사직 실내수영장 전광판에 ‘1:43.92’가 찍히는 순간, 관중석에서 들려온 환호가 체육관 천장을 흔들었다. 황선우가 자유형 200m에서 마침내 1분 43초대를 뚫었다. 쑨양이 2017년에 세워 놓은 아시아 기록(1:44.39), 그리고 본인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적어둔 한국 기록(1:44.40)까지 한 번에 뛰어넘는 기록이다. 전국체전 무대에서, 시즌 3위에 해당하는 타임으로, 게다가 4연패라는 타이틀도 함께 챙겼다. 경기 직후 황선우는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닌데 오늘은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터치패드를 두드리고, 시상대에서 메달을 목에 걸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기까지 그는 여러 번 눈가를 훔쳤다. 2021년 도쿄에서 본격적으로 세계와 맞붙기 시작한 뒤 줄곧 부딪혀 온 “1분 44초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린 날이었으니, 울 만도 했다.

기록의 의미부터 짚자. 1:43.92는 단순한 개인 베스트가 아니다. 그동안 아시아 자유형 200m의 기준점처럼 불리던 쑨양의 1:44.39를 0.47초나 앞당겼다. 수영에서 0.47초는 구간 하나를 통째로 바꿔야 나오는 차이다. 더구나 전국체전은 세계선수권처럼 오전·저녁 예선·결승 루틴에 맞춘 테이퍼링의 정점이 아니다. 그럼에도 1:43대를 찍었다는 건, 몸이 확실히 올라와 있고, 레이스 설계가 체화됐다는 뜻이다. 황선우 스스로 “이제 1분 43초대 ‘클럽’에 들어왔다”고 표현한 것도 괜한 허세가 아니다. 이 문턱을 넘은 선수들만이 올림픽에서 금·은메달 싸움을 한다. 리우·도쿄·파리 올림픽 금메달 기록이 모두 1:44대였다는 걸 떠올리면, 더 분명해진다. 그는 “두세 번은 더 1:43대를 찍어야 진짜 내 기록”이라고 고개를 숙였지만, 그 말에는 오히려 자신감이 묻어난다. 한 번 해봤으니, 다음은 재현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날 레이스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왜 이 기록이 나온지 감이 잡힌다. 최근 몇 달 사이 그가 강조해 온 것이 웨이트 트레이닝과 구간 페이스의 안정화다. 초반 50m를 무리하지 않고 가져가면서도 100~150m 구간에서 스트로크 길이를 유지하는 훈련을 반복했고, 마지막 50m에선 킥을 한 단계 더 밟는 방식을 체득했다. 결과적으로 레이스가 쪼개지지 않고 한 덩어리로 이어졌다. ‘타다 꺼지는’ 스플릿이 아니라 ‘꾸준히 올라타는’ 스플릿이었다는 얘기다. 올 초 싱가포르 세계선수권 4위(1:44.72) 당시와 비교해도, 마지막 50m에서 체력 저하가 확 줄었다. 그는 “오늘 영법 감각이 참 좋았다”고 했다. 간단하지만 본질을 찌르는 말이다. 수영은 결국 물에 대한 감각 싸움이고, 그 감각이 살아 있는 날은 기록이 따라온다.

더 큰 그림에서도 이 기록은 묵직하다. 솔직히 올여름 파리 올림픽은 아쉬웠다.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출발했지만 200m 준결승 9위(1:45.92)로 결승을 놓쳤다. 4년을 걸고 달린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턱밑에서 미끄러졌다. 세계선수권 3연속 메달(부다페스트 은, 후쿠오카 동, 도하 금)로 쌓아 올린 자신감이 한 번에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았다. “싱가포르 4위가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훈련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얻어낸 결과였고, 그 대회부터 반등이 시작됐다”고 스스로 정리했다. 오늘 1:43.92는 그 반등의 결과물이다. 좌절을 묻고, 다시 올라오는 법을 보여준 기록. 그래서 눈물이 난다.

전국체전 전체 그림에서도 수영장은 축제였다. 16살 문수아(서울체고)가 여자 평영 200m에서 1년 만에 자신의 한국기록을 갈아치웠다. 우리 수영의 세대교체가 기록으로 증명되는 장면이었다. 같은 날, 레슬링 정한재, 사격 오예진도 금메달로 가을 체전을 빛냈다. ‘국내대회’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콘텐츠가 풍성했다. 황선우는 전날 800m 계영 금메달에 이어 2관왕에 올랐고, 21일에는 개인혼영 200m와 400m 계영에도 나선다. 단거리 자유형 전문이지만 혼영에 나서는 건 체력과 전신 밸런스를 체크하려는 의도가 있다. 시즌 막판, 내년 일정까지 보고 준비하는 루틴이란 뜻이다.

물론 자축만 할 시간은 아니다. 황선우 본인도 말했다. “올림픽은 레이스 운영이 정말 중요하다. 1:43대를 여러 번 찍어야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다.” 말 그대로다. 세계 무대에선 예선·준결승·결승을 연달아 소화하면서도 1:44 중·후반을 ‘기본값’으로 깔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의 근력과 유연성을 조금 더 미세하게 조율해야 한다. 스타트 반응, 턴에서의 벽 터치 각도, 드라이브 킥의 길이, 100~150m 구간에서의 스트로크 템포 유지…. 세부를 더 세분화해야 한다. 특히 올림픽은 긴장도가 다르고, 결승에서는 옆 레인의 파도와 레이스 흐름이 기록만큼 중요하다. 황선우가 “오늘의 기억을 몸에 새겨 두겠다”고 한 이유다. 물이 좋았던 그 느낌을, 큰 무대에서도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1:43.92가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 수영의 간판’이 다시 한 번 세계와 맞짱 뜰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100m에서 47.56으로 아시아신기록을 썼던 2021년, 그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오늘은 그보다 더 짜릿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200m는 그의 본진이기 때문이다. 100m는 속도로 밀어붙이는 힘싸움이라면, 200m는 체력·기술·운영·멘탈이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래서 200m의 1:43대는 선수에게도, 코치에게도, 팬에게도 특별하다. ‘나는 다시 올라왔다’는 선언과 같다.

이 기록의 파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선 국내에선 다음 세대들에게 “가능하다”는 표본이 된다. 문수아가 그 증거다. 고등학생이 평영 200m에서 한국기록을 바꾸는 흐름, 대학·실업 무대를 넘어 10대가 기세를 타는 흐름은 수영 풀 전체의 물살을 바꾼다. 황선우라는 정상의 깃발이 높이 올라갈수록, 밑에서 그 깃발을 보며 달려오는 선수들이 많아진다. 국제적으로도 메시지가 간다. “황선우가 다시 1:43대로 왔다.” 내년 아시안게임, 2027년 세계선수권, 2028년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큰 무대의 밑그림이 여기서 그려진다. 상대들은 분석을 시작할 것이고, 우리는 재현으로 답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황선우가 스스로 꺼낸 말이 오래 남는다. “아직은 내 기록이 아니라 생각하겠다.” 기분을 누르겠다는 뜻이 아니라, 루틴을 흐트러뜨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수영은 결국 반복의 스포츠다. 같은 동작을 수천 번 곱씹고, 같은 숨을 수만 번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몸이 먼저 기억하게 만드는 일. 오늘 만들어낸 감각을 내일 다시 꺼내고, 한 달 뒤에도 꺼내고, 내년 큰 무대에도 꺼내는 일. 그게 진짜 강자의 길이다. 그는 이미 그 길의 방식을 안다. 세계선수권 3연속 메달로 증명했고, 파리의 실패를 씻고 다시 올라오며 다시 증명했다. 이쯤 되면 팬들이 할 일은 단순하다. 다음 경기에서 또 한 번 “1:43대”라는 숫자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 숫자가 더 익숙해지길 바라는 것.

부산의 수영장은 오늘 오랜만에 ‘기록의 맛’을 제대로 봤다. 황선우는 4연패를, 아시아신기록을, 그리고 “나는 아직 성장 중”이라는 메시지를 함께 남겼다. 문수아는 한국신기록으로 미래를 밝혔다. 다른 종목의 금메달도 체전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하루가 길게 느껴졌고, 긴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하나의 직관을 확인했다. 가장 어려운 벽은 결국 가장 간절한 사람이 먼저 넘는다. 그 사람이 지금, 한국 수영의 200m 레인에 서 있다. 다음은 재현이고, 그다음은 큰 무대다. 오늘의 물살을 잊지 말자. 황선우의 1:43.92, 한국 수영이 다시 세계와 맞붙을 준비가 됐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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