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파기환송…국가배상액 늘어날 듯(종합)
검사·필적감정인 등 개인들은 책임 면해…"시효 완성"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대법원이 '유서대필 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더욱 넓게 인정했다. 강씨는 2심이 인정한 금액보다 더 많은 배상금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30일 강씨와 가족이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하급심에서는 불법 필적 감정으로 인해 강씨가 큰 피해를 본 점은 인정됐지만 위법한 조사, 접견교통권 침해, 피의사실 공표 등 수사과정에서 있었던 개별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1991년부터 24년이 지난 2015년 소송이 시작돼 장기소멸시효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입은 손해에는 국가배상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강씨는 2심이 판단한 손해배상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2심은 국가가 강씨에게 8억원, 아내에게 1억원, 두 동생에게 각 500만원, 사망한 강씨 부모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형사보상금을 제외하고 부모 상속분을 더한 강씨의 실제 배상액은 약 6억8000만원이다.
다만 검사들과 필적감정인 개인의 손해배상 책임이 시효 완성에 따라 소멸했다고 본 원심 판단은 확정됐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1991년 5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당시 25세)가 분신하자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가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강씨를 기소한 사건이다.
강씨는 징역 3년의 판결이 확정돼 복역했지만 재심을 청구해 2014년 무죄를 받았다. 강씨는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인권을 유린한 조작사건"이라고 주장하며 2015년 11월 국가를 상대로 총 3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2017년 7월 1심은 국가 등의 배상 책임이 총 8억7000만원이라고 판단했다. 강씨에게 7억원, 아내에게 1억원, 강씨의 부모에게 각 2000만원, 강씨의 두 동생에게 각 500만원, 강씨의 두 자녀에게 각 1000만원의 배상액을 인정했다.
1심은 "강씨는 잘못된 필적 감정 결과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아 3년1개월이 넘는 기간 구금됐다"며 "국민적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피의사실과 인적사항이 대대적으로 공개돼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밝혔다.
이어 "석방 뒤에도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 이후 태어난 자녀들도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고통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와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필적감정인 김모씨의 책임을 함께 인정했다.
다만 수사책임자였던 강신욱 전 대법관(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과 신상규 전 광주고검장(당시 주임검사)의 강압행위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8년 5월 항소심에서는 강씨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액이 기존 7억원에서 8억원으로 늘었다. 강씨 부모의 배상액도 각 2000만원에서 각 1억원으로 증액해 총 2억6000만원의 배상 책임을 추가로 인정했다.
2심은 "강씨 두 자녀는 사건 이후 태어나 법률상 손해배상청구권이 없다"며 두 자녀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국가가 항소하지 않아 자녀 2명에게 1000만원씩 지급하라는 1심 판단은 유지했다.
2심은 또 배상해야 할 책임자가 국가뿐이라고 판단했다. 1심과 달리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김씨의 항소를 받아들여 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강 전 대법관과 신 전 고검장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판단은 1심과 같았다.
par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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