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를 여행한다면 대개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같은 역사 유적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화려한 문화재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진, 조용하고 푸른 쉼터가 천년고도에 숨어 있다.
오직 연구와 보존을 위해 닫혀 있던 ‘비밀의 숲’이 마침내 문을 열고, 이제는 시민과 여행자의 품에 안긴 것이다. 수십 년간 가꿔온 숲의 시간은 단순한 공원을 넘어선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로에 자리한 경북천년숲정원은 본래 1960년대부터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으로 쓰였던 공간이다. 천연기념물 후계목을 증식하고 희귀 식물을 보존하며, 산림 병해충 연구를 이어온 핵심 전초기지였다.
오랫동안 일반인에게는 닫혀 있던 이 숲은 2023년 4월 24일, 마침내 도민과 여행객을 위한 휴식처로 개방됐다. 축구장 46개 크기에 해당하는 33만㎡ 부지 안에는 4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단순한 조경 차원을 넘어 거대한 야외 식물도감 같은 가치를 품고 있다.
특히 ‘경상북도 제1호 지방정원’이라는 법적 지위를 갖춘 점에서, 이름뿐인 공원이 아닌 전문성과 체계를 갖춘 국가 인증 정원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정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하는 풍경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다. 길의 끝에 이르면 ‘거울숲’이라 불리는 독특한 공간이 등장한다. 잔잔한 물 위에 메타세쿼이아 숲이 데칼코마니처럼 비치는 모습은 마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칠엽수와 메타세쿼이아가 4열로 늘어선 가로수길은 여름철 뜨거운 햇볕마저 부드럽게 걸러내며 숲의 품 안에서 걷는 진정한 여유를 선사한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주목받은 이곳은 주말이면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발길로 붐비기도 한다.

경북천년숲정원은 단순히 걷기 좋은 숲길에 머물지 않는다. 신라의 역사와 경주의 자연을 모티브로 한 다채로운 테마 정원이 곳곳에 자리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서라벌정원’은 신라의 수도를 형상화해 조성되었고, 김유신 장군과 단석산의 설화를 모티브로 한 암석원은 기암괴석과 야생화가 어우러져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버들못정원’에서는 수양버들이 잔잔한 연못을 감싸며 고즈넉한 동양화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이 외에도 사계절 꽃이 흐드러지는 초화원,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 분재원 등 총 13개의 주제 정원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방문객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경북천년숲정원은 수십 년간 연구와 보존의 땅이었지만, 이제는 시민과 여행자가 함께 즐기는 모두의 숲으로 변신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에서부터 신라 설화를 담은 정원까지, 이곳은 경주의 역사 유적과는 또 다른 ‘휴식의 경주’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입장료와 주차료 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다. 다만 매주 월요일과 명절 당일은 휴무이니 방문 전 운영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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