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수장 표적 암살…이스라엘 스파이 역량 '눈길'

황철환 2024. 9. 2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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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레바논 침공 실패후 와신상담…정보수집 대폭 강화
최첨단 해킹 도구로 감청, 무인기 동원해 적진 예의주시도 위력 발휘
나스랄라가 숨진 베이루트 폭격 현장 (베이루트 AFP=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군의 표적공습에 사망한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지역에서 한 여성이 쿠란을 낭송하는 모습. 2024.9.29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지닌 비국가단체로 불리던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불과 10여일만에 와해 직전으로 몰리자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의 역량에 새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고전한 이후 해외정보기관 모사드와 군정보기관을 중심으로 절치부심 헤즈볼라를 겨냥한 정보수집 역량을 강화해 왔다.

이스라엘은 당시 34일간 이어진 전쟁에서 헤즈볼라의 게릴라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헤즈볼라가 납치한 자국 군인들을 구출한다는 당초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지도부의 동향과 그들이 구사할 전략·전술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 압도적 전력을 지니고도 사실상의 패배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후 이스라엘군의 산하 비밀첩보기관 '8200 부대'는 헤즈볼라의 휴대전화와 여타 통신수단을 더 잘 감청할 수 있도록 최첨단 해킹 도구를 개발했고, 미 국가안보국(NSA)과의 협력 강화에 나섰다.

또, 더 많은 무인기(드론)와 최신 인공위성으로 헤즈볼라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중요한 정보가 일선 병사와 공군에 더 신속히 전달되도록 전담반을 신설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헤즈볼라 무장대원의 장례식 상공을 나는 이스라엘군 정찰무인기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레바논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접근하기 쉽다는 점을 활용해 민간인으로 위장한 특수부대원을 잠입시켜 민감한 정보공작도 벌였다. 또한, 헤즈볼라와 이란 내부에 정보원을 심는 작업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헤즈볼라는 이에 맞서 이란과 협력해 스파이를 색출하고 통신망 해킹 시도를 막아내려 했으나 충분한 효과를 거두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강화한 정보 역량을 바탕으로 헤즈볼라지도부를 정조준해 왔다.

이스라엘과 미 당국자들에 따르면, 모사드와 미 중앙정보국(CIA)은 2008년 서방을 겨냥한 여러 건의 테러를 주도한 헤즈볼라 최고위급 간부 이마드 무그니야를 폭사시켰다.

2020년 1월에는 이란혁명수비대(IRGC)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시리아를 경유해 레바논에 입국, 나스랄라와 만나는 정황이 이스라엘 8200 부대에 포착됐다.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을 우려해 이들을 공격하지 않은 채 관련 정보를 미국 측에 전달하기만 했는데, 미국은 이후 솔레이마니를 계속 추적하다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 근처에서 드론 폭격을 가해 그를 제거했다.

올해 7월에는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이었던 푸아드 슈크르가 베이루트의 정부를 찾았다가 이스라엘군의 미사일 공격에 사망했고, 이달 초에는 8200 부대가 시리아에 있는 헤즈볼라와 이란의 미사일 공장을 찾아내 폭격을 퍼부었다.

베이루트 시내 건물에 내걸린 나스랄라의 초상 (베이루트 EPA=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시내의 한 건물에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사망한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초상이 내걸려 있다. 2024.9.29

그러나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능력이 가장 빛났던 것은 최근 10여일이었다.

레바논에서는 지난 17∼18일 헤즈볼라 조직원들이 주로 사용하던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 수천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휴대전화 도·감청을 우려한 헤즈볼라가 무선호출기(삐삐) 사용을 장려하자 헝가리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모사드가 폭발물이 심긴 삐삐를 헤즈볼라에 대량으로 팔아치운 결과라고 NYT는 전했다.

이어 19일부터 이스라엘군은 지금까지의 수세적 태도를 버리고 레바논 각지의 헤즈볼라 목표물을 겨냥한 대규모 공습에 착수했다.

20일에는 헤즈볼라 특수작전 부대 라드완의 지휘관 이브라힘 아킬 등 핵심 지휘관 10여명이 무더기로 숨졌다.

이스라엘 측은 아킬이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본토 침투를 위한 땅굴을 살피고 돌아오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다가 베이루트의 작전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건물을 폭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이후에도 23일 헤즈볼라의 미사일·로켓 부대 사령관 이브라힘 무함마드 쿠바이시를 표적 공습으로 제거하는 등 참수작전을 지속했고, 결국 27일 수장인 나스랄라마저 비밀 본부와 함께 폭사시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에 머물면서 이 작전을 승인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CIA 분석가 출신의 중동 전문가 칩 어셔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성공 비결을 묻는 말에 "그들은 상당히 명확히 규정된 목표물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보기 드물 정도로 끈기도 강하다"고 짚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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