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범죄'는 가족의 몫?…정부 "총력 대응" 홍보하더니
[앵커]
지금 보시는 이 사람,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이웃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안인득입니다. 안인득은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폭행과 난동으로 여러 차례 신고가 이뤄졌지만, 경찰의 조치는 없었고 결국 끔찍한 범행으로 이어졌습니다. 법원이 오늘(30일) 범행을 막지 못한 국가에게 책임이 있다며 피해 유족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뒤늦게 국가 책임이 인정된 건데 문제는 이런 정신 질환 범죄, 갈수록 늘고 있는데도 정부 대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겁니다.
임지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3년 전 처음으로 안인득 사건 피해자 유족을 찾아가 국가에 책임을 묻자고 설득한 건 다름 아닌 정신장애인 가족 단체와 의사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수 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 (설득까지) 1년 가까이 걸린 것 같아요. 정신질환자 신고가 왔을 때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도록 (소송에 나서주시라.)]
하지만 그동안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실제 피해가 일어나지 않으면 정신질환자를 의사 앞에 데려다놓는 건 온전히 가족 몫입니다.
[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 너 지금 칼에 안 찔렸잖아. 누가 죽거나 다쳐야 돼요. 그 다음에 경찰이 보는 앞에서 벌어져야…]
지난해 지하철에서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 받은 30대 여성 김모 씨.
초등학생 때부터 망상과 환청을 겪던 김 씨의 칼날은 먼저 가족을 겨눴습니다.
[조현병 환자 아버지 : 이놈이 주방에서 칼을 가지고 칼을 들고 할머니한테… 우리 딸이 정신병자란 말이야? 이게 말이 안 돼…]
가족이 억지로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 거듭됐고 원망은 쌓여갔습니다.
[조현병 환자 아버지 : 얘가 나중에 노트를 썼는데 내가 (병원에서) 나가서 복수해야 할 대상. 네 번째 죽여야 될 사람으로 나를 썼더라고.]
김씨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 나를 강제로 끌고 가서 입원시켰다는 분노가 쌓이고 가족 간에 치유하기 어려운 악감정이 (남을 수밖에요.)]
결국 치료를 포기한 가족과 따로 살게 되고, 약을 끊으면서 질환이 악화돼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겁니다.
[조현병 환자 아버지 : (피해자들께) 백번 죄송하죠. 가서 내가 무릎 꿇고 빌고 싶고…]
지난해 수용시설에 수감된 정신질환자는 6094명으로 10년 사이 2배 넘게 늘었습니다.
지난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입원은 더 어려워지고, 사회 복귀는 빨라졌습니다.
[조현병 환자 아버지 : 부모님 둘이 다 와야 된대. 우리 아들(환자 오빠)은 보호자가 될 수 없대. (엄마가) 그때 부산인가 어디 지방에 가 있을 때거든.]
[권준수/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좌교수 : (환자를) 빨리 지역사회로 내보내고 입원을 어렵게 만들면 사회에 재활도 못 하고 적응도 못 해 다시 병원에 입원을 해요.]
지난해 신림역과 서현역 사건 등 잇따라 흉기 난동이 발생하자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습니다.
[한덕수/국무총리 (2023년 8월) :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적기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사법입원제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습니다.]
사법입원제는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이 필요한 지를 판사가 의사와 당사자 의견 등을 종합해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운영 중입니다.
[권준수/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좌교수 : (강제 입원의) 책임을 (사법기관의) 법적인 판단으로 해달라. 그래야지만 이 문제가 해결이 된다.]
지난해 8월엔 대대적인 홍보 속에 범정부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개선 TF가 꾸려졌고 복지부, 법무부, 경찰, 소방이 함께 해법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TF는 4차례 만난 뒤 지난 1월부터 회의가 멈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복지부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 산하 조직을 만들어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논의는 10개월 동안 멈춰 있습니다.
[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 보호 의무자, 즉 가족에 대한 부당한 의무와 책임을 이제 국가가 제자리로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자료제공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
[VJ 허재훈 이지환 / 영상취재 김재식 / 영상편집 유형도 / 영상디자인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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