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엔 역발상, 목표엔 올인… 미래 여는 ‘뚝심 경영’[Leadership]
아시아나 합병 심사, 이르면 이달말 유럽 최종 승인
12월중 자회사 편입후 세계 11위 항공사 올라설 듯
코로나 등 국제적 위기 때 환승·화물 ‘틈새시장’ 공략
발상 재전환으로 혁신 성공…2021 ‘항공계 오스카상’


“우리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100%를 걸었습니다. 무엇을 포기하든 반드시 성사시키겠습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지난해 6월 발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 결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 결합과 관련, 이르면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 중으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EC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은 이후 미국 연방 법무부(DOJ)가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대한항공은 올해 12월 20일까지 아시아나항공 신주를 인수,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020년 11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를 밝힌 지 약 4년 만에 합병이 완료되는 것이다.
양 사 간 기업 결합의 최대 난관이던 14개 경쟁 당국의 심사가 종료되고 최종 승인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업계에서는 합병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조 회장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조 회장은 주요 경쟁 당국의 심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양사 합병에 100% 집중하고 있으며 합병 성공을 위해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며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발상의 전환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경영인 = 고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의 장남인 조 회장은 1976년(양력) 서울에서 출생했다. 경기국민학교(현 경기초)와 청운중을 다녔고 이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조 회장은 2003년 한진그룹의 정보기술(IT)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의 영업기획담당 차장으로 입사한 이후 지난 2004년 10월 대한항공으로 자리를 옮겨 자재부, 여객사업본부, 경영전략본부, 화물사업본부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다.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2009년 여객사업본부장으로 선임된 조 회장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신종플루 등으로 전 세계 항공업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위기를 기회로 삼는 ‘역발상’ 전략을 전개했다. 구체적으로는 눈에 띄게 감소한 한국발 수요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과 아시아에서 출발하는 환승 수요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틈새시장을 공략했고 이를 통해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대한항공은 이후 2010년 창사 이래 최초로 ‘영업이익 1조 원’ 클럽에 가입했고 이를 계기로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조 회장은 2013년 8월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을 설립하고 지주사 전환 작업을 진두지휘함으로써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투명성 증대 등 장기적 성장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데도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아울러 2018년 5월 델타항공과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의 출범을 직접 이끌며 글로벌 경영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특히 2019년 조 선대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회장 자리에 오른 이후에는 리더십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대내외 경영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19 사태라는 최대 변수까지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 회장의 ‘역발상’ 전략은 이 시기에도 빛을 발했다. 당시 전 세계 주요 공항이 폐쇄되고 ‘하늘길’이 막히면서, 글로벌 항공 산업은 존폐를 걱정할 정도로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조 회장은 당시 “유휴 여객기의 화물칸을 이용해 화물 수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면, 공급선을 다양화하는 한편 주기료(주차료) 등 비용까지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유휴 여객기를 화물 전용 여객기로 운영하며 화물 공급을 확대하는 혁신적 전략을 선보였다. 그 결과 여객 사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었음에도,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 중 유일하게 2020년 2분기부터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며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21년 코로나19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간 경영 성과를 토대로 글로벌 항공 업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ATW(Air Transport World) 올해의 항공사상’을 수상했다. 이어 2022년에는 ‘ATW 올해의 화물 항공사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조 회장이 직접 ‘ATW 올해의 항공업계 리더’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대한항공, 글로벌 11위권 항공사로 재탄생 =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한 2020년 말은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때로 항공업계의 회복 시기를 장담할 수 없었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당시 업계에서는 양 사 합병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또 이후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 등 해외 경쟁 당국의 승인 심사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대한항공은 합병이 무산될 위기도 여러 차례 겪어야 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을 ‘세계 10위권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로 도약시키겠다’는 조 회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조 회장은 올해 3월 발표한 창립 기념사에서도 “오랜 시간 많은 고민을 담았던 과정(합병)이 마무리되고 나면 우리 모두 역사적인 다음 페이지의 서사를 써내려가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합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양 사 합병 절차가 마무리 수순에 돌입하면서 국내 항공 업계에서는 초대형 항공사 등장에 대한 기대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 결합이 완료되면 대한항공은 여객 수송 실적(국제선) 기준 현 글로벌 18위권에서 11위권으로 단숨에 도약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현재 여객기 136대, 화물기 23대 등 총 159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아시아나항공이 매각을 추진 중인 화물 부문을 제외하면 총 69대의 여객기를 보유 중인 만큼 합병 후 총 항공기 수도 228대로 늘어나게 된다.
회사 관계자는 “인수·통합 후 대한항공은 노선망, 항공기, 공급 규모 등 주요 지표에서 글로벌 초대형 항공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연결편 스케줄 개선, 마일리지 통합 사용 등으로 편익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항공 산업 전반의 안전 역량 제고로 더욱 안전한 항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난 대한항공 대표 사원”… 구석구석 직원 찾아다니며 ‘친밀 대화’
격의 없는 ‘소통 행보’
점심시간 자율선택제 등
수시로 의견 청취해 반영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자신을 ‘대한항공의 대표 사원’으로 소개할 정도로 직원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 2019년 취임 이후 사내 익명 게시판과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직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를 회사 경영 전반에 반영하는 ‘소통 경영’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고 있다. 실제 조 회장은 사전 고지 없이 현장 직원을 찾아 수시로 격려하는 한편, 신입 사원 수료식이나 현장에서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한 직원을 수상하는 ‘엑설런스’ 시상식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는 등 임직원과의 스킨십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 회장의 소통 행보는 노사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7년 대한항공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조종사 노조와 조종사 새 노조, 일반 노조 등 3개 노조를 찾아 발전적 노사 관계 정립을 위해 서로 노력하자며 대화의 물꼬를 튼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지속적인 소통 행보는 2017년 3월 조종사 노조의 파업을 철회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근무 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조 회장은 취임 직후인 2019년 7월부터 사내 업무 시스템을 구글의 클라우드 기반 생산성 및 협업 소프트웨어 도구 모음인 ‘G스위트(GSuite)’로 전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자율적 업무 환경을 구축했다. 아울러 사전 임직원 선호도 조사를 통해 사무실 의자를 최신형 의자로 교체하는 등 전반적인 근무 환경도 개선했다.
취임 후 국내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복장 자율화 조치도 전면 시행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는 한편, 창의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였다. 대한항공은 또 개인이 선호하는 근무 패턴에 맞게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 사이에 1시간 동안 점심시간을 갖는 ‘점심시간 자율선택제’ 등을 실시하고 있다. 또 2021년부터는 수행 업무 특성과 개인 상황에 따른 유연근무제도를 시행, 근무 만족도와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은 직원들과 소통의 통로를 항시 열어 의견을 청취하고, 좋은 의견일 경우 가감 없이 업무에 반영하는 등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1976년(양력) 출생 △미국 마리안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장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장 △대한항공 화물사업본부장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 △한진그룹 회장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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