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이 대장암을 대변한다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2024. 10. 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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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색 변과 가늘고 납작한 변은 암 신호…불쾌한 냄새 나기도
50세 이상에게 5년마다 대변검사 대신 대장내시경검사 추천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대장암은 약 1.5m 길이의 소화기관인 대장(결장·직장)에 생기는 악성 종양을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드물었던 대장암이 지금은 발생률 2위 암종이 됐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것과 육류 중심의 서구식으로 바뀐 식습관이 대장암 증가의 주요 배경이다. 외국보다 잦은 대장암 검사로 대장암을 많이 발견하는 경향도 있다. 

50세 이상 모든 국민은 국가암검진 대상이므로 무료로 대장암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집단 선별검사로 널리 사용하는 대장암 검사법은 흔히 대변검사라고 부르는 분변잠혈검사다. 이 검사는 주로 대변에 혈액이 섞여 있는지를 살펴본다. 대장에 출혈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지만 피가 난다면 대장 내부에 상처가 있다는 신호다. 대장에 암이 생기면 대변이 긴 대장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암을 건드려 상처가 생기고 피도 날 수 있다. 

항문에서 거리가 먼 결장에 암이 있으면 대변 색은 검붉은색이거나 흑색에 가깝다. 항문과 가까운 직장에 암이 생기면 비교적 밝은 적색의 혈변이 나온다. 물론 피가 섞인 대변이 항문까지 내려오면서 희석되거나 혈액량이 적으면 눈으로 혈변을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박윤영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외과 교수는 "대장암의 가장 흔한 증상은 혈변이다. 우리나라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암검진에서도 대장암을 확인하기 위한 1차 검사로 분변잠혈검사를 하고, 양성이 나오면 대장내시경검사를 시행한다. 그만큼 대변에서 혈액이 발견되는 것 자체가 대장암의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혈변은 초기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혈변이 맨눈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진행성 대장암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물론 혈변이 나온다고 해서 모두 대장암은 아니다. 선지나 적포도주를 먹어도 일시적으로 검붉은 대변이 나올 수 있다. 또 항문 질환인 치질·치열·치핵·치루 때문에 출혈이 발생하기도 한다.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은 자주 혈변 증상을 보인다. 항문 조직인 치핵의 혈관이 부풀어 올라 터지면 밝은 선홍빛의 혈변이 생긴다. 그런데 이런 항문 질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혈변이 그 질환 때문이라고 생각해 검사를 미루다 암을 키우는 경우가 있다. 항문 질환 혈변과 달리 대장암에 의한 혈변은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암이 자라는 대장 점막이 허물어지고 괴사하면서 썩은 달걀 냄새와 같은 악취가 난다. 그러나 음식과 장 건강 상태에 따라 대변 냄새가 좋지 않을 때도 있다. 따라서 일반인이 단순히 대변 색과 냄새만으로 대장암을 가려내기는 어렵다. 예전과 다른 대변 색이나 냄새가 지속될 때는 한번쯤 병원을 방문해 원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대장암 신호는 대변 굵기 감소와 배변 습관 변화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은 엄지손가락 1~2개 굵기에 길이가 10cm 이상인 바나나 모양의 황금색이다. 그런데 항문과 가까운 직장에 암이 생기면 대장 내부 공간이 그만큼 좁아진다. 이 공간을 빠져나오는 대변은 새끼손가락 정도로 가늘어지거나 납작해진다. 짧게 끊어진 대변이 나오기도 한다. 또 직장에 암이 있으면 묵직한 느낌을 받아 화장실을 자주 가지만 정작 대변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에 점액질이 묻어나온 대변도 대장암 신호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2주 이상 변비와 설사 반복되면 암 의심

건강한 사람은 하루 3회 이내, 일주일에 3회 이상 배변하면서 하루 약 200g(한 컵 분량)의 대변을 본다. 일주일에 2번 이하로 화장실에 가면 변비로 간주된다. 설사는 하루에 4번 이상 화장실에 가는 경우를 말한다. 일시적인 변비나 설사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2주 이상 변비와 설사가 반복되면 대장암을 의심해야 한다. 항문 가까이에 암이 발생하면 대변을 막기 때문에 변비 증세가 나타난다. 대변이 장내에 오래 머무르면 우리 몸은 장내에서 썩지 않도록 설사로 내보내려 한다. 그래서 힘을 줘서 겨우 보던 대변이 갑자기 설사로 변하기도 한다. 박지원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혈변이 나오거나 대변 굵기가 가늘어지거나 대변 주기가 변하면 대장암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드물지만 갑작스러운 빈혈과 복통도 대장암 증상 중 하나다. 젊은 나이에는 이런 증상이 있어도 대장암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50대 이상이라면 꼭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혈변, 변 굵기 감소, 반복적인 변비와 설사 증상은 대장암뿐만 아니라 염증성 장질환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 신호일 수 있다. 다른 질환과 대장암을 구분하는 진단법으로는 대장내시경검사가 가장 정확하다. 국가암검진의 분변잠혈검사는 대장암을 선별하는 데 제한이 있으며 정확도도 낮다. 그래서 분변잠혈검사에서 양성 결과가 나오더라도 추가로 대장내시경검사를 진행한다. 대장내시경검사는 의사가 눈으로 암 여부를 확인하는 진단법이다. 용종(폴립)을 발견하면 즉시 제거하고, 필요한 경우 조직검사도 시행한다. 

분변잠혈검사보다 대장내시경검사가 더 정확

용종 대부분은 대장암으로 진행하므로 '대장암의 씨앗'이라고 불린다. 용종은 5~10년 동안 서서히 대장암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50세 이상은 5년마다 대장내시경검사가 권고된다. 최근 전문가들은 대장내시경검사 시작 나이를 45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50세 이전이라도 정기적으로 대장내시경검사를 받으면 대장암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약 50%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대장암 고위험군(염증성 장질환이나 가족력 등이 있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2~3년마다 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윤영 교수는 "대장암 발병 나이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 50세 미만이어도 혈변, 반복되는 설사나 변비·체중 저하와 피로감 등 대장암 의심 증상이 있거나 염증성 장질환 및 대장암 가족력이 있다면 대장내시경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정기적인 검사 외에도 대장암을 예방하기 위해 평소 식습관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채소·과일·콩류처럼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은 대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배변량이 늘어나 배변 습관을 유지하는 데도 이롭다. 다만 채식이 과하면 대변이 굵어져 치질이 생길 수 있으므로 원활한 배변을 위해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좋다. 반면, 대장암 발병과 관련이 있는 적색육(소·돼지·양)과 가공육(햄·소시지·베이컨) 섭취는 제한할 필요가 있다. 

식습관·대사증후군 개선도 예방법

음식의 종류와 상관없이 섭취하는 총열량이 높을수록 대장암 위험이 증가한다. 예를 들어, 술은 열량이 높은 식품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대장암 위험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있다. 따라서 고칼로리 음식 섭취를 줄이는 것이 대장암 예방에 이롭다. 

일반적으로 대장암이 잘 발생하는 중년쯤 되면 각종 질환이 찾아온다. 특히 대장암 위험을 높이는 질환을 잘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이 대장암 예방의 한 가지 방법이다. 대표적인 질환이 대사증후군이다. 대사증후군은 복부비만, 높은 중성지방혈증, 낮은 고밀도콜레스테롤(HDL), 고혈압·공복혈당장애 중 3가지 이상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대병원 연구에 따르면, 여러 질환이 혼합된 대사증후군은 대장암 발병 위험을 20% 이상 높인다. 그중에서도 복부비만은 가장 강력한 단일 위험인자다. 복부비만(허리둘레 남성 100cm 이상, 여성 95cm 이상)인 경우, 정상인보다 대장암 위험도가 53%까지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고도 비만(체질량지수 30kg/㎡ 이상) 환자도 정상인보다 대장암 위험도가 45% 상승한다. 심장대사증후군학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40대 남성 3명 중 1명이 대사증후군에 해당한다.  

■최신 대장암 치료 방향은 '항암·방사선 치료 후 수술'

대장암의 5년 생존율은 74%로 다른 암보다 높다. 특히 1기는 94%에 이르며, 1기 중에서도 초기에는 수술 없이 내시경적 치료로 암을 제거할 수 있다. 대장암 2기부터는 수술이 기본 치료다. 과거에는 배를 여는 개복 수술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복강경이나 수술 로봇을 활용한 수술이 많다. 개복 수술보다 절개 부위가 작아 환자의 회복이 빠르고 통증도 적다. 박윤영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외과 교수는 "로봇 수술은 관절이 있는 로봇팔과 3차원 입체 화면으로 확대된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손 떨림을 보정하는 기능이 있어 정밀한 수술에 유리하다. 관절 없이 일자로 만들어진 복강경 기구에 비해 자유도가 높아 좁고 깊은 골반강에 있는 직장을 수술할 때 더 세밀한 치료가 가능하다. 즉 자율신경 보존과 정확한 조직의 박리로 배뇨 기능이나 성기능 저하를 방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와 달라진 대장암 치료의 방향은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 순서다. 지금까지 표준 치료법은 방사선 치료-수술-항암 치료 순서였으나, 최근에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모두 수술 전에 시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직장과 항문을 보존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술로 직장암을 제거할 때 직장과 항문도 거의 모두 잘라내고 인공항문(장루)을 만드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암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방법이지만 수술 후 환자 삶의 질은 크게 저하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 의료진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수술 전에 시행하는 것이 항문 보존은 물론 생존에도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박병관 중앙대병원 암센터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직장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전체 선행 항암·방사선 치료(TNT)'가 표준 치료법으로 적용돼 환자의 치료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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