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526> 추운 겨울에 뜨뜻한 뜨물국을 무김치와 먹은 이규상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목압서사 원장 2025. 12. 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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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밥에 뜨물국 봄날처럼 따스한데(豆飯泔漿暖似春·두반감장난사춘)

콩밥에 뜨물국 봄날처럼 따스한데(豆飯泔漿暖似春·두반감장난사춘)/ 여리고 허연 무로 김치 새로 담갔네.(菁根軟白作菹新·청근연백작저신)/ 시골집의 늦은 저녁밥 꿀처럼 달아(田家晩食甘如蜜·전가만식감여밀)/ 인간 세상 산해진미 몰라도 된다네.(不識人間有八珍·불식인간유팔진)

위 시는 18세기 문인 이규상(李圭象·1727~1799)의 ‘시골의 노래(村謠·촌요)’로, 그의 문집인 ‘일몽고(一夢稿)’에 수록돼 있다. 본관이 한산인 이규상은 잠시 홍릉(弘陵) 참봉을 지내고 다른 벼슬은 지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규상의 저술 중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은 18세기 문화 예술과 인물사를 조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18세기에 먹을 것이 많이 없던 시골집에서는 콩밥과 뜨물국이 예사로 먹던 음식이었다. 농사를 짓고 집으로 와 늦게 먹는 저녁밥은 꿀맛이다. 반찬이라곤 새로 담근 무김치 하나뿐이다.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인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음식을 먹으라고 한다면 몇이나 먹을까.

위 시를 읽으며 상상하니 절로 침이 고인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까지 어머니는 쌀뜨물국을 뜨끈하게 끓여주셨다. 이규상이 어머니 정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뜨물국은 추운 날씨에 맛이 더 좋고 몸까지 따뜻하게 데워 준다.

필자는 그제 하동 읍내 시장 안 우물 옆에 시래깃국으로 유명한 밥집인 ‘밤골집’에 가 점심을 먹었다. 식탁이 하나밖에 없는 아주 작은 식당이다. 전날 식당 주인인 강월례(63) 사장님이 김장했다며 배추김치와 무김치를 내놓으셨다. 큼직하게 쓴 무김치를 베어 먹으니 단맛이 났다. 강 사장님이 지대가 높은 밤골에서 직접 배추와 무 농사를 지어 맛이 더 좋았다. 이 집 특미인 시래깃국도 직접 농사지은 시래기를 말려 국을 끓여 맛이 좋다.

지난해까지 필자의 마을에도 할머니들께서 자식과 며느리를 불러 김장 김치를 담갔는데 올해는 김장하는 집이 없었다. 할머니들이 연세도 많으신 데다 자식들이 사 먹으면 되니 이제는 고생스럽게 김장하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무김치 이야기가 나와 말이 길어졌지만, 위 시를 읽으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깊은 생각이 담긴 한시를 읽는 맛이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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