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팬데믹은 AI로 싸운다…약물 탐색 과정 30% 줄여
팬데믹 오면 200일 이내 치료제 개발
후보물질 데이터베이스 확보 집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고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일상을 회복한 지 2년 정도가 지났다. 다만 전 세계적인 감염병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제기되면서 감염병 치료제를 빠르게 개발하는 역량을 키우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어떤 감염병이 덮칠지 모르는 만큼 적당한 치료제를 개발할 도구로 인공지능(AI) 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24일 오전 10시 충북 청주시 오송 청사에서 ‘감염병 치료제 개발 아카데미’를 열고 AI와 같은 신기술을 활용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대비 치료제 개발 계획을 소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과 김경창 국립감염병연구소 신종바이러스매개체연구과장, 김진일 고려대 의대 바이러스병연구소 교수가 참여했다.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이후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감염병 8종을 중심으로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조류 인플루엔자(AI), 코로나19, 라싸열,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뎅기열, 니파,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이다. 이들 감염병 팬데믹이 일어나면, 비임상과 임상시험을 신속히 지원해 100~200일 안에 치료제 개발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가 감염병 치료제 개발에 나선 이유는 코로나19로 발생한 사회·경제적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 세계 확진자는 7억8000만명, 사망자는 700만명에 달했다. 한국은 3500만명 정도가 코로나19로 확진됐고, 그중 약 3만6000명이 사망했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로 발생한 경제적 피해액을 14조달러(약 1경8600조원)로 집계했고, 한국은 40조원 정도의 경제적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 규모가 큰 유럽과 중국까지 합치면 전 세계 피해액은 2경(京)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항바이러스 작용 과정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코로나19 항체치료제인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주는 바이러스가 세포에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미국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자기 자신을 복제할 때 사용하는 단백질의 합성을 차단한다. 두 약물은 같은 코로나19 치료제지만, 오미크론 변이로 가면서 렉키로나주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팍스로비드 사용이 확대됐다. 바이러스의 종류와 변이 상태에 따라 적합한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질병청은 감염병 치료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 김경창 신종바이러스매개체연구과장은 “팬데믹을 대비해 후보물질을 많이 확보하고, 개발하는 데 있어서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AI를 활용하는 게 방법”이라며 “렉키로나주의 경우 임상시험 진입까지 150일이 걸렸는데, AI 플랫폼을 사용하면 감염병 항바이러스제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일 고려대 의대 교수는 AI를 활용하면 10~20년 걸리는 전통적인 약물 스크리닝(탐색) 과정을 30%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물리학·컴퓨터 기반 스크리닝으로 다수의 약물을 한 번에 탐색하는 게 AI의 강점이다. 바이러스마다 유효한 약물 반응 과정이 다른데, AI로 목표 단백질 설정과 약물 결합 방향, 화학물질 구성을 예측할 수 있다. 심지어 목표 단백질에 약물을 붙이는 데 필요한 금속 이온이 약물의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도 시뮬레이션(가상 실험)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AI 기술은 몇 개 물질로 후보물질을 검색하는 게 아니라 후보물질 수십억 개를 도출한다”며 “후보물질의 효과를 점수로 자세히 평가하고, 딥러닝 기반 AI 기술로 실제 단백질에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지 예측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바이러스에 특화된 실험법을 만들어 개발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비용이 많이 들었던 항바이러스제 개발의 문제를 AI로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연은 AI로 감염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치료약물 라이브러리’ 구축에 나선다. 박현영 보건연 원장은 “글로벌 제약사들은 오래전 AI 전환을 시작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이미 확보했다”며 “최근 어느 학문에서든 AI를 빼고 과학을 논할 수 없는 만큼, 신종 바이러스를 대비한 후보물질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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