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中전기차 대응 놓고 혼돈에 빠진 유럽연합 [★★글로벌]

문가영 기자(moon31@mk.co.kr) 2024. 10. 1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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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에 난민 갈등 점입가경
유럽연합 글로벌 경쟁력 위기
난민 ‘의무 수용’에 회원국 반발
결국 ‘이민자 송환 허브’ 추진
中 전기차 고율 관세 ‘사분오열’
환경·테크 과도한 규제 반발도

“‘유럽’ 프로젝트가 갈림길에 섰다”

최근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는 “스스로 글로벌 강국이 되려던 유럽연합(EU)의 야망이 정치적 마비, 외부 위협과 저성장의 조합으로 종식될 위기”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패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두 나라는 방위 산업과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해 민간과 공공 부문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다. 반면 유럽은 이러한 이점을 찾아볼 수 없으며 그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강조했다. 산업 구조와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여러 개별 국가로 구성된 EU의 대응력이 시험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오랜 저성장 기조에 난민 위기로 인한 사회적 혼란까지 더해지면서 분열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블룸버그는 “EU 회원국이 각국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지적했다.

◆난민 위기에 빗장 걸어잠가...‘솅겐조약’도 위협
유럽에는 지난 2015년 ‘난민 위기’가 빚어진 이후 육지와 바다를 통해 이민자가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내전, 테러리즘 등 정치적 불안이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21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리반의 폭정을 피해 탈출하는 난민이 늘어난 데다, 지난해 시리아에 강진이 덮치면서 최근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이 급격히 늘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에는 29만2985명의 난민이 도착했는데 이는 2016년(38만9976명)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EU는 지난해 48만5000명의 이민자에게 떠날 것을 명령했지만 이 중 80%는 여전히 역내에 남아 있다.

최근 중동 분쟁으로 난민 유입이 급증하면서 역내에서 난민 위기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던 EU도 백기를 드는 모양새다.

EU는 작년 말 회원국 간 난민을 의무적으로 나눠 수용하는 내용의 협약을 타결했지만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네덜란드·헝가리 등 일부 회원국은 ‘난민 의무 수용’에 반발하며 이행 거부를 예고하고 나섰다.

이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국가가 늘면서 회원국 간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솅겐조약도 위협받고 있다. 최근 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회원국 27개국 가운데 8개국이 올해 들어 국경 검문 절차를 새로 도입했다.

더 이상 난민을 받지 않고 이미 받은 난민은 제3국으로 내보내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폴란드는 지난 15일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을 일시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지난 11일 유럽 최초로 역외 ‘이주민 송환허브’를 알바니아에 개소했다. EU 역시 최근 입장을 선회해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역외 송환허브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독일, 프랑스 국경 통제 독일은 불법이민을 줄이기 위해 지난달 16일(현지시간)부터 프랑스·덴마크·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와 국경에서 검문에 들어갔다. <사진=AP 연합뉴스>
◆각국 산업구조 달라...엇갈린 이해관계에 한 목소리 실종
각종 산업 정책을 둘러싸고도 회원국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양상이다.

유럽 핵심 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 부문은 값싸게 양산되는 중국산 전기차에 밀려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EU는 이달 초 27개 회원국 투표를 통해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45.3%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투표 과정에서는 회원국 간 입장차가 여실히 드러났다. 중국 시장에 대한 자동차 수출 비중이 높은 독일과 스페인 등 5개국은 반대표를 던졌고, 중국발 보복 규제에 부담을 느낀 12개 회원국도 무더기 기권표를 던졌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농산물 수입 정책을 둘러싸고도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첨예한 갈등이 빚어졌다. 지난 2022년 5월 EU는 러시아의 해상 봉쇄로 농산물 수출이 막힌 우크라이나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에 대해 무관세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그러나 값싼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유입으로 역내 곡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농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동유럽 5개국의 곡물시장 보호를 위해 적용됐던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지’ 조치마저 작년 9월 해제되면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이 중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3개국은 자국 농민 보호를 위해 자체적으로 수입 금지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EU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아울러 유럽 각국의 농민들은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의 유입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작년 말부터 시위에 돌입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농민들은 트랙터로 국경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였고, 농업이 발달한 프랑스에서도 트랙터가 고속도로를 점거했다. 올해 2월에는 열린 EU 특별정상회의에 맞춰 상경한 트랙터 약 1000대가 브뤼셀 벨기에 도심을 점거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결국 EU는 지난 3월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무관세 혜택에 총량규제안을 도입하기로 했다. 2022년과 2023년 수입량의 평균치를 초과하는 수입 농산물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해 회원국과 그 농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벨기에 도심 점령한 트랙터 올해 2월 1일(현지시간) EU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 정책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트랙터 행렬이 늘어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래산업 규제에 혁신 동력 실종
최근 전기차 전환과 인공지능(AI) 혁신 등으로 산업지형이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일괄적인 규제가 EU의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2035년까지 유럽에서 판매되는 차량 100%를 전기차로 전환하려는 EU 계획이 대표적이다.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지난 16일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보프케 훅스트라 EU 기후담당 집행위원은 다음달 예정된 유럽의회 청문회 답변 자료에서 2021년 도입된 전기차 전환 법률에 대해 “철회할 수 없으며 철회해서도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유럽 완성차 업체와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은 중국산 전기차로 인해 생존 위기에 몰린 역내 기업들의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전환 계획 연기와 유연한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 최대 단일시장으로 회원국 간 시너지를 자랑했던 EU가 산업 위기 속 무리한 규제에 불만을 터뜨리며 분열하는 양상이다.

EU가 인공지능(AI) 등 기술 관련 규제를 의욕적으로 도입하면서 미국 등 빅테크 업체의 진출은 물론 역내 혁신 산업 양성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유럽에서 활동하는 기업가와 연구진은 이례적으로 EU의 AI 규제를 비판하는 공개 서한을 냈다. 유럽의회가 지난 5월 통과시킨 AI법을 겨냥한 것이다. AI법에는 챗GPT와 같은 AI 서비스가 개인정보 보호, 차별적 표현 금지 등의 규제를 위반하면 전 세계 매출의 최대 7%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스포티파이, 에릭슨, SAP 등 유럽 대표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49명의 기업 임원, 교수 등이 서한에 서명했다. 이들은 “유럽이 일관성 없는 규제로 AI 부문에서 더욱 뒤처질 위험에 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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