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2 맞아? 가나 2군에도 끌려간 홍명보호, 이강인 왼발만 빛났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모인 3만 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치른 가나전은 스코어만 놓고 보면 ‘1-0 승리’라는 깔끔한 결과였다. 포트2 배정까지 사실상 확정했고, 11월 A매치 2연전도 전승으로 마무리했다. 홍명보 감독이 대놓고 “결과가 우선”이라고 했던 기간이었으니, 표면적인 미션은 다 수행한 셈이다. 그런데 경기장을 나서는 팬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이겼는데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이 경기력으로 월드컵을 치를 수 있을까?”

전반 45분은 사실상 가나의 하이라이트였다. 상대는 유럽 빅리그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진, 말 그대로 1.8군~2군에 가까운 구성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주도권은 한국이 아니라 가나 쪽에 가 있었다. 한국의 전반 슈팅 수는 단 한 개, 그것도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온 권혁규의 헤더뿐이었다. 빌드업은 끊겼고, 중원은 템포를 쥐지 못했다. 수비 라인 앞뒤 공간은 계속 비어 있었고, 가나는 술레마나와 아두를 앞세워 그 틈을 신나게 파고들었다.

홍명보 감독이 꺼낸 가장 ‘파격적인’ 실험은 중원 조합이었다. 황인범과 백승호가 동시에 빠진 상황에서, 그는 가나전 선발로 권혁규–카스트로프라는 새로운 조합을 선택했다. 두 선수 모두 재능이 있는 건 맞다. 권혁규는 프랑스 무대에서 박스 투 박스로 뛰는 유형이고, 카스트로프는 독일에서 활동량과 활동 반경이 강점인 선수다. 문제는 둘이 동시에 A매치급 중원 압박과 속도를 처음 겪는 자리에서, ‘나란히’ 실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전반 내내 이 둘은 어느 지점에도 확실히 발을 딛지 못했다. 수비에 내려앉았을 때는 라인 앞을 가려주지 못했고, 공격 전개 국면에서는 패스의 방향과 속도가 모두 애매했다. 후방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도 못하다 보니, 김민재–박진섭–조유민이 선택할 수 있는 패턴은 자연스럽게 제한됐다. 결국 센터백에서 곧바로 롱패스가 올라가는 장면이 반복됐고, 손흥민과 오현규는 등을 지고 공을 받아 버티다가 혼자 공을 잃는 역할을 계속해야 했다. 팀이 아니라 개별 포지션이 따로 움직이는 느낌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오른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전한 이강인이 하프라인 아래까지 계속 내려와 공을 받아야 했다. 이강인이 내려오는 순간 오른쪽 측면은 비고, 손흥민은 좌우 폭을 혼자 넓혀야 했다. 최전방 오현규는 ‘볼이 오긴 하는데, 차라리 안 오는 편이 나을’ 정도의 애매한 타이밍으로 공을 공급받았다. 그 사이 가나는 단순하지만 명확했다. 중원에서 한 번만 끊어내면 곧바로 전진 패스, 그리고 빠른 발을 가진 공격수들이 전방을 때려 뛰었다. 이렌키의 중거리, 술레마나의 침투와 슈팅은 상황만 조금 더 좋았어도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장면이었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결론을 내렸다. 권혁규와 카스트로프를 동시에 빼고 김진규–서민우를 투입했다. 45분짜리 파격 실험은 이렇게 ‘한 번 해봤다’ 수준에서 끝났다. 선택 자체를 욕하기는 어렵다. 월드컵을 앞두고 중원 뎁스를 늘려야 한다는 건 분명한 과제니까. 다만 실험의 강도와 방식은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경험이 전무한 조합 둘을 한 번에, 그것도 상대가 라인을 올려 강하게 압박해 오는 경기에서 테스트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는 두고두고 이야기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국이 이 경기에서 건진 게 딱 한 가지 있다면, 그 중심에도 역시 이강인이 있었다. 후반 들어 포지션을 조금 더 안쪽으로, 조금 더 아래로 조정한 뒤부터 그의 왼발에서 팀의 공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전방으로 찔러준 패스에서 오현규의 터닝슛이 나왔고, 이어진 세트피스와 크로스 장면에서는 김민재와 조유민의 머리를 차례대로 찾았다. 골이 된 장면도 비슷한 맥락이다. 오른쪽 측면에서 수비를 흔들며 만든 반 박자짜리 공간, 그리고 반대편 두 번째 포스트로 정확히 휘어 들어간 크로스. 이태석은 그 공을 머리만 대서 골망을 흔들면 됐다.

3년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가나를 상대로 조규성의 추격골을 도왔던 ‘택배 크로스’가 다시 재생된 순간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대표팀이 스스로 길을 만들지 못하고 있을 때 이강인의 한 방이 답답한 흐름을 끊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이겼지만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고 담담히 말했다. 개인의 빛나는 장면보다 팀의 전체적인 그림을 먼저 떠올리는 듯한 말이었다.

이번 11월 A매치에서 눈에 띈 건 골키퍼와 측면 자원들의 활약이다. 가나전 선발 골키퍼로 나선 송범근은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K리그에서 시즌 내내 보여준 안정감이 국가대표 데뷔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A매치 기회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전반과 후반에 각각 한 번씩 나왔던 술레마나의 날카로운 슈팅, 세컨드볼 상황에서 굴절되며 날아온 공들을 차분하게 처리했다. 김승규·조현우가 오랜 시간 지키던 골문 경쟁 구도에 비로소 ‘진짜 3번째 옵션’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쟁자로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황희찬 역시 페널티킥 실축이라는 큰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측면에서의 돌파와 몸싸움, 수비수를 달고 들어가는 움직임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본인이 “생각이 너무 많았다”고 고백했듯, PK 상황에서의 선택과 킥은 분명 반성 포인트지만, 그 장면을 만들어내기까지의 디테일은 분명 팀에 도움이 되는 요소다. 결국 문제는 이 개별 장면들이 ‘전술의 결과물’로 이어지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개인의 번뜩임에 기대는 흐름으로 남느냐다.

가나의 오토 아도 감독이 경기 후 “한국과 일본을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지금 레벨은 일본이 한 수 위”라고 말한 것도 이런 부분을 정확히 짚고 있다. 일본은 같은 기간 브라질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가나·볼리비아를 상대로도 내용과 결과를 동시에 가져왔다.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자신들이 준비한 축구가 경기장에서 어느 정도 일관되게 구현되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한국은 이 두 경기에서 손흥민의 프리킥, 이강인의 크로스, 그리고 수비수들의 개인 수비력에 크게 의존했다. 포트2 배정이라는 ‘표면적인 위치’와 실제 경기력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지점이다. 기사들이 “포트2지만 경기력은 포트5 수준”이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렇다고 비관만 할 상황도 아니다. 월드컵까지는 아직 7개월이 남아 있고, 그 사이 3월과 6월 A매치에서 더 많은 조합과 전술을 시험해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11월처럼 “결과가 우선”이라는 명분 아래 과정을 계속 뒤로 미루기 시작하면, 정작 본선 직전에야 허겁지겁 방향을 틀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미 한 차례 그런 경험을 했던 게 카타르 월드컵이었다. 당시 벤투호는 나름의 색깔을 유지했지만, 조별리그에서 흔들린 건 결국 ‘경험치 부족한 플랜B’ 때문이었다.

홍명보호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3선 구성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누구를 써도 좋지만, 어떤 유형의 미드필더를 어떤 경기에서 함께 쓰겠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빌드업을 책임질 6번, 템포를 조절할 8번, 라인 사이를 파고들 10번의 기능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가 명확해져야 한다. 둘째, 앞서고 있을 때의 경기 운영 훈련이다. 가나전 후반 막판처럼, 리드를 잡은 뒤 오히려 주도권을 내주며 버티기만 하는 그림은 월드컵에서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다. 라인을 언제 올리고, 언제 내리며, 어느 지점에서 압박을 끊을지에 대한 팀 차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강인·손흥민·김민재로 대표되는 ‘코어 라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그들이 더 효율적으로 뛰게 만드는 방향으로 전술을 다듬어야 한다. 지금처럼 이강인이 하프라인 아래까지 내려와 공을 살리고, 손흥민이 좌우를 오가며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구조는 장기 레이스에서 체력과 집중력을 갉아먹는다. 같은 능력을 조금 더 앞선 지역에서, 조금 더 짧은 시간에 폭발시키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그러려면 나머지 8명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서울의 늦가을 밤, 전광판의 숫자는 분명 우리에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7개월 뒤, 월드컵 본선에서도 이렇게 뛰어도 되겠냐”고.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이번 가나전 한 경기는 단순한 졸전이 될 수도 있고, 진짜 변화를 이끈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제부터는 결과만으로는 아무도 설득할 수 없다. 포트2라는 간판에 어울리는 경기력, 월드컵 본선에서 팬들이 진짜로 기대할 수 있는 축구를 보여줄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