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법개정 이후 처음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70곳이 넘는 상장사가 자사주 소각 관련 정관을 손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는 규제에서 벗어나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이에 자사주를 재무·지배구조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온 기업들로서는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9일 열린 '2026년 상반기 KIS 크레딧 이슈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김수민 수석애널리스트는 "70개 이상의 상장사들이 이번 주총에서 자사주 관련 내용을 정관에 추가했다"고 말했다.

최근 시행된 3차 상법개정안의 골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지만 일정한 절차와 요건을 충족할 경우 예외적으로 보유·처분이 가능해 기업 입장에서는 우회로가 열려 있다.
3차 상법개정안은 △자기주식 권리 제한(제341조의3) △자기주식 소각 의무(제341조의4) △합병, 분할 및 분할합병 시 자기주식에 대한 신주배정 금지(제529조의2, 제530조의13) 등 세 축으로 구성된다.
특히 '자기주식 소각 의무'에서는 취득한 자사주를 1년(기존 보유분은 1년6개월) 내 소각하도록 의무화했다. 다만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이 있는 경우, 이사 전원이 기명 날인한 자기주식 보유·처분계획서를 작성하고 주총의 승인을 거치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이에 이번 주총에서도 정관을 추가한 사례가 잇따랐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CJ △CJ대한통운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넷마블 △미래에셋증권 △롯데지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더블유게임즈 △엔씨소프트 △하이브 등 70개 이상의 상장사가 관련 조항을 정관에 반영했다.
계획 미정 자사주, 절반 이상

자사주 소각 의무화 시한이 정해지면서 기업들은 활용방안을 결정해야 하지만, 아직 절반가량은 방향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한신평에서 투자등급 이상의 유효 신용등급을 갖고 있으면서 자사주 관련 계획을 발표한 일반기업 87곳과 금융회사 27곳 가운데 처리계획이 미정인 자사주 비율은 일반기업 57.6%, 금융회사 52.3%로 집계됐다.
김 애널리스트는 "많은 기업들이 자기주식 처리 계획을 정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개정상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자기주식의 소각 의무 시한이 시행일로부터 1년6개월이라 현재 즉각적인 소각이 요구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3차 상법개정이 기업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자사주를 주주환원 수단이 아니라 지배구조 관리와 자금조달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해온 기업일수록 영향이 클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 애널리스트는 "기업 신용도에 대한 자사주 관련 상법개정안의 영향은 전반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라며 "평균적인 자사주 보유 비율이 높지 않고, 자사주 소각도 현금유출을 수반하지 않으며, 일정 절차를 거칠 경우 자사주를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어 활용이 전면 차단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무전략이나 지배구조상 자기주식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큰 기업의 경우 상법개정에 따른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향후 자기주식 처리 계획에 대한 공시 내용과 실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 신용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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