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영화 속 과학] ④인간 장기 대체품 만든다…'아일랜드(2005)'

박정연 기자 2024. 10. 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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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용 장기를 제공할 인력을 수용하는 시설을 그린 영화 <아일랜드>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편집자주] 공상과학소설(SF) 영화에 등장하는 놀라운 첨단 과학기술은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기술의 힘을 빌린 영화 속 주인공은 현실세계의 우리들보다 편리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기도 하고 때때로 기술이 일으킨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고뇌에 빠지기도 합니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이러한 영화 속 상황을 곧 현실로 이끌어냅니다. 상상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던 첨단 기술이 우리 삶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이러한 기술들이 우리 삶을 바꾸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을지 살펴봅니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아일랜드>는 사람에게 이식할 장기를 구하기 위해 복제인간을 양성하는 시대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들은 자신이 생태적인 재앙으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아 남은 지구 종말 시대의 생존자라고 믿는다. 유토피아란 시설에서 매일 양질의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으며 모든 생활을 통제받는 가운데 오염되지 않은 희망의 땅 '아일랜드'로 이주할 기회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을 비롯한 유토피아의 사람들은 사실은 자신에게 자금을 대는 인간이 질병 등에 걸렸을 때 장기와 신체부위를 제공할 복제인간이었다. 

몇몇 치명적인 질환들은 대체할 장기가 없으면 치료나 호전이 불가능하다.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말기 신부전은 신장이식을 받아야 하며, 간경변이나 간염 및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간 기능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 말기 간부전도 간 이식이 필요하다. 폐섬유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폐고혈압 등 말기 폐 질환도 폐 이식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위해 장기이식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적기에 알맞은 장기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환자에게 이식되기 위해 비축된 장기의 물량 자체도 만성적으로 부족하다.

학계에선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장기를 개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인간의 장기는 비단 이식 수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 장기를 활용한 실험 연구에서도 중요하다. 인간에게 사용할 의약품이나 공산품의 안전성을 시험하는 데도 사용된다. 인공장기가 인간의 장기와 유사해질수록 인간의 삶의 질이 다방면에서 풍족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 새로운 치료기술 시험하는 인공 장기

뇌 어셈블로이드의 구조를 나타낸 3차원(3D) 모델링 이미지. 미국 스탠퍼드대 제공

큰 범주에서 인공장기에 포함되는 장기유사체(오가노이드)는 새로운 치료기술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세르지우 파스카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오가노이드를 여러 개 합친 어셈블로이드를 활용해 유전성 질환인 티모시 증후군에 대한 유전자 교정 치료법의 효과를 확인한 연구 결과를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티모시 증후군은 뇌의 신경세포의 칼슘 채널에 결함이 생겨 자폐 증상, 뇌전증, 심장 손상 등이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민감한 장기인 뇌에 이상이 생긴 만큼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종류의 오가노이드를 이어 붙인 어셈블로이드로 연구의 돌파구를 열었다. 

기존 뇌 오가노이드는 생물의 발달 초기 단계에서 배(胚)가 형성될 때 가장 바깥 쪽을 덮는 외배엽으로 분화를 유도하는 인자를 줄기세포에 투여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중배엽에서 유래한 혈관세포 등은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장기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연구팀이 사용한 어셈블로이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뇌 오가노이드와 혈관 오가노이드를 이어 붙여 실제 인간의 뇌와 더 유사한 구조를 갖췄다. 진짜 뇌처럼 정교한 신경망을 구현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렇게 만들어진 뇌 어셈블로이드를 생쥐의 뇌에 이식한 뒤 유전자 교정 치료법의 효과를 시험했다.

티모시 증후군의 원인인 신경세포의 칼슘 채널을 암호화하는 유전자 'CACNA1C'를 표적으로 삼았다. 이 유전자의 결함을 교정할 수 있는 합성 리보핵산(RNA)을 주입한 뇌 어셈블로이드를 만든 뒤 티모시 증후군에 걸린 쥐의 뇌에 이식했다. 이식 받은 쥐의 성장 과정에서 본래 뇌와 어셈블로이드 뇌가 통합됐고 티모시 증후군이 치료됐다.

질의 상피와 내벽을 구현한 장기칩 '바기나 온 칩'의 단면. 미국 하버드대 와이즈연구소 제공

다양한 형태의 인공장기는 동물실험을 줄이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플라스틱 위에 세포를 배양해 인체 조직이나 장기를 모방한 '장기칩(Organ-on-a-chip)'은 신약의 효능과 독성을 평가할 때 동물실험 대신 활용된다. 2022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은 질염 치료 약물의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실리콘 소재의 장기칩을 개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이성균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연구팀이 면역세포가 혈관벽을 뚫고 염증 부위로 이동하는 현상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생체모사 장기칩'을 개발하고 관련 연구 논문을 지난해 12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헬스케어 머티리얼즈'에 발표했다.

정교한 장기 유사체를 개발하는 국내 연구진의 기술력도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선웅 고려대 의대 교수와 조일주 고려대 의대 교수 연구팀은 2022년 중추신경계 일부 중 척수를 모방한 장기 유사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명의학공학'에 발표했다. 척수 모방 오가노이드는 뇌와 척수로 발달하는 배아 구조인 신경관의 형태를 그대로 구현해 선천성 발달장애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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