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i7 1000km 시승기... 충전비 고작 3만원?

조회수 2023. 12. 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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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어느 토요일 아침, 전기차 충전 완료 문자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전날 배터리를 가득 채운 BMW i7로 300km를 달린 뒤 다시 충전기를 물려놓고 잤는데…. 세상에, 완충 비용이 1만원이 아닌가.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또렷이 떠올랐다. “당장 전기차를 사야 한다.”

처음엔 사실 걱정만 한 아름이었다. i7이 14회차에 이른 <탑기어> 1000km 시승 시리즈 최초의 전기차인 탓이다. 불과 3일 남짓한 기간 동안 필연적으로 배터리 충전 시간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 과연 1000km 여정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의심만 가득했다. 시승 결과는 뭐, 첫 문단에 써놨듯 홀딱 반해버렸지만.

크리스털 조명은 어떤 색을 골라도 화려하다

비단 만만한 충전 비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승차가 i7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전기차를 열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차를 표현할 말은 다소 진부하지만 ‘환상적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롤스로이스처럼 곧게 뻗은 보닛으로 그린 윤곽이 남달리 당당하고, 은은히 빛나는 크리스털 조명이 가로지른 실내는 부담스러우리만치 화려하다. 섬유계의 보석이라고 부르는 캐시미어로 뒤덮은 시트의 건조하면서도 아늑한 촉감은 또 어떻고. i7은 1000km 여정 내내 고급스럽다 못해 꿈을 꾸듯 몽환적이었다.

전기모터로 나아가는 감각은 당연히 매끈하다. i7은 그 매끈한 감각을 속도가 올라도 잃지 않는다. 도심이건, 고속도로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종일관 매끈한 유리 표면 위를 달리듯 미끄러진다. 무게가 2750kg에 달하는 육중한 차체를 에어서스펜션이 공기로 떠받드니, 작은 노면 진동 따윈 에어스프링 공기 통 안에서 힘없이 녹아버린다.

특히 누더기 같은 노면을 지나는 승차감이 놀라웠다. 에어서스펜션을 쓰는 다른 플래그십 세단들도 신경질적으로 운전자 고개를 뒤흔들던 길을 i7은 구렁이 담 넘듯 가볍게 통과했다. 단언컨대 여태껏 타본 차 중 가장 유연하다. 조금 뜬금없지만 비슷한 감각을 느낀 차가 하나 있었는데, 오프로드에서 스태빌라이저바(좌우 바퀴를 이어 차체가 한쪽으로 기우는 쏠림을 억제하는 서스펜션 구조물. 오프로드에선 각 바퀴의 독립적인 움직임을 방해한다)를 분리한 지프 랭글러가 딱 이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흥미롭게도 i7도 랭글러처럼 스태빌라이저바를 분리한다. 직선로를 달리거나 한쪽 쏠림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스태빌라이저바 고정 장치를 분리해 좌우 바퀴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도록 풀어놓는다. 공중에 떠서 달리는 듯한 고속주행 승차감의 비결이자, 포트홀을 때운 아스팔트 덩어리를 밟을 때도 평온하던 이유다. 시승 기간 중 잠깐 뒷좌석에 모셨던 한 어르신은 이 차를 이렇게 평했다. “다 좋은데 단점이 딱 하나 있다.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

물론 아무리 편하다 할지언정 이 차는 BMW다. 스태빌라이저바를 분리했다고 술에 취한 황소처럼 코너에서 뒤뚱거리지 않는다. 되레 코너에 빠른 속도로 던져 보면 놀랍도록 안정적이다. 풀어놨던 고정 장치를 즉각 체결할 뿐 아니라, 코너 바깥쪽 바퀴가 짓눌려 (쏠림을 버티느라) 꽈배기처럼 휜 스태빌라이저바를 전동으로 더 강하게 비틀어 수평을 지켜내는 까닭. 더욱이 높이 10.9cm에 불과한 105.7kWh 배터리를 차체 바닥에 납작하게 깔아 무게중심까지 낮다. 본디 7시리즈는 언제나 역동적인 대형 세단이었다.

이런 말이 있다. 자동차 승차감은 지극히 물리적인 조건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라고. 3215mm 기다란 휠베이스는 움직임이 진중하고, 2750kg 육중한 덩치가 나아가는 관성은 굳건하다. 무게중심은 바닥에 내리깔았으며, 부드러운 에어서스펜션과 가변식 스태빌라이저바, 시시각각 감쇠력을 조절하는 전자제어 댐퍼를 갖춘 i7은 이미 조건만으로 편하지 않을 수 없다. 3일간 1000km 장거리를 달리면서 단 한차례도 힘들지 않았다. 여정을 함께한 아내도 ‘꿈의 차’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유로운 주행의 뒤편엔 언제나 강력한 전기모터가 있었다. 최대토크가 75.96kg·m에 달하는 데다 가속 페달 반응에 정확히 필요한 힘만을 끌어내, 커다란 차체를 어떤 속도에서든 가뿐히 내몬다. 설명이 와닿지 않는다면 고성능 세단 M5의 최대토크 (76.5kg·m)가 출발할 때건, 고속으로 달릴 때건, 또는 국도를 느긋하게 항속할 때건 언제든 즉각 터져 나온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뒷심이 약한 다른 전기차와 달리 최고출력이 무려 544마력인 만큼 고속에서도 여전히 강력했다.

시트 조작 버튼이 고작 두 조각이다(상세 설정은 디지털 화면으로 한다) / 신형 7시리즈는 크리스털에 진심이다

1000km 여정 중 가장 걱정스러웠던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와 충전 시간은 3일간 매일 300km 가량을 달리도록 계획을 짰더니,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공인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438km로 넉넉하고, 실제 내 운전 패턴을 반영한 주행가능거리는 배터리가 100%일 때 639km까지 치솟아 전혀 걱정 없었다. 덕분에 시승차를 반납할 때까지 급속충전기 한 번 물리지 않았다.

이 시승기를 ‘<탑기어> 드라이브스’에 실었다면 점수판에 10점 만점에 10점을 적을만큼 모두 만족스러웠지만, 그중에서도 소리가 가장 인상 깊었다. 음악 감상에 별다른 취미가 없는 내가 들어도 입체적이고 풍요로워 ‘고급차의 완성은 소리구나…’ 라며 감탄했다. 전문가가 듣기에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음악 관련 업계에 일하는 아내는 “전율이 감도는 사운드”라며, “특히 콘트라베이스 무게감이 정말 생생하다” 라고 평했다. 참고로 i7엔 1965W 출력으로 스피커 35개를 울리는 바워스앤윌킨스 다이아몬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 들어간다.

시승 마지막 날, 모두 23시간 33분 동안 1008.9km를 달려 무사히 1000km 시승을 마쳤다. 누적 평균전비는 20.3kWh/100km. 환산하면 1kWh에 4.93km다. 복합 전비 3.7km/kWh보다 훨씬 높은 숫자며, 단순 계산해 보면 105.7kWh 배터리를 얹은 i7이 한 번 충전으로 521km를 달릴 수 있다는 결과다. 무엇보다 충전 비용이 놀랍다. 1kWh에 180원인 아파트 충전기로만 충전했더니 전체 소모 비용이 3만6865원에 불과했다(맨 아래 순위표는 한국 전력 전기 요금을 기준 삼은 결과).

커다란 F세그먼트 대형 세단을 타고 1000km를 3만원대로 달리는 날이 오다니. 충격이다. 전기차 교통비가 저렴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더구나 i7은 더없이 편안했고,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넉넉해 별 걱정도 없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간 <탑기어> 1000km 시승 시리즈 가운데 가장 편한 차는 제네시스 G90이었고, 가장 효율적인 차는 BMW 218d 액티브 투어러였지만, 이제 모두 i7이다.

글·사진 윤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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