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불패’ 공식마저 깨졌다…소비변화·한파 덮친 APT상가 몰락
소비자들도 자영업자도 단지내 상가 외면…"방문할 일 별로 없을 것 같아"
최근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공실이 속출하고 있다. 고분양가와 고금리 여파는 물론 소비 트렌드 변화로 인해 단지 내 상가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과거 아파트 거주민의 수요만으로도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됐던 것과 달리 최근엔 온라인 쇼핑·배달 문화가 확산하면서 아파트 주민이라도 굳이 단지 내 상가를 찾을 이유가 사라졌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마트나 과일가게, 정육점 등이 먼저 자취를 감췄다. 태권도나 피아노 등 방과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원들은 저출산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특히 음식점의 경우 배달 문화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상가 수요가 급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가 투자율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집합상가(아파트·오피스텔 상가) 투자수익률은 1.07%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상가 투자수익률은 월세에서 대출 이자 등을 제외한 순수 수입이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소장은 “시중은행 예금 금리가 오르다 보니, 상가 투자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강남권 아파트 단지 내 상가도 미분양 속출…"안정적인 투자처는 옛말"
서울권 재건축·신축 아파트들도 상가 공실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탄탄한 배후수요와 소비력을 갖춰 입점만 하면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됐던 강남권에서도 아파트 단지 내 공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분양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상가 개포자이스퀘어는 100개 호실 중 입점된 호실은 분양 사무실을 포함해 58개로 42%가 공실인 상황이다. 로열층인 1층은 경우 39개 호실 중 22개가 비어있었다. 3층의 경우도 절반 이상이 공실인 상태다.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세대수는 3375세대 인근 아파트까지 합치면 9000세대 이상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자이 프레지던스(개포주공4단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는 분양대행사를 통해 미분양 상가 통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재공고를 올릴 것이다”고 밝혔다.
개포의 한 공인중개사는 “고금리와 소비 한파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쉽게 입점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그래도 강남권 소비력이 높은 만큼 금리가 내려간다면 고려해 볼 만한 매물이다”고 주장했다. 개포자이스퀘어 매매가는 위치마다 다르지만 10억원 이상에 1층의 경우 15억원에 매물이 올라와 있다. 월세의 경우 보증금과 평수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00만원에서 1000만원 사이로 나타났다.
개포자이스퀘어뿐만 아니라 송파구 ‘헬리오시티’도 5년째 상가 미분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헬리오시티(가락시영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조합)는 작년 11월 다섯 번째 상가 보류지 매각 공고를 냈다.
신도시에 불어닥친 상가 한파…편의점 하나만 덩그러니
신도시 아파트 단지 내 상가들은 한파를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 구도시 아파트 상가들의 경우 기존 자리를 잡은 가게들이 상가를 채우고 있지만 신도시 상가들은 공실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단지별로 편의점과 몇몇 업종을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있다.
고덕국제도시, 청라, 검단, 위례, 옥정 등 신도시 아파트 상가들 대다수가 분양 및 임대에 애를 먹고 있다. 청라의 한 대규모 오피스텔 단지내 상가는 임대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공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평택 고덕국제신도시의 상가 역시 대부분 비어있었다. 한 상가의 경우 아파트가 700세대 이상임에도 부동산과 이마트 편의점만 입점해 있었다. 고덕의 한 공인중개사는 “아직 공사 중인 단지가 많고 도시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삼성 임직원들이 많이 머무는 만큼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 소비력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인근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단지 내 상가가 꽉 찬다면 좋겠지만 자주 사용할지는 의문이라는 반응이다.
고덕 신도시 거주하는 주부 김서영(37·가명) 씨는 “막상 생각해 보니 상가를 방문할 일이 많이 없을 것 같다”며 “식료품은 마트에서 한 번에 장을 보거나 쿠팡 등 배송을 시키고 외식도 배달, 미용은 내가 원하는 곳에서 하고 싶으니 가깝단 이유만으로 상가를 찾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가에 필수적으로 어떤 업종이 들어온 좋겠냐는 질문에는 “편의점은 필수고 부가적으로 이비인후과와 약국 그리고 은행, 카페, 세탁소 정도만 있으면 정말 편할 것 같다”고 밝혔다.
자영업자들 또한 상가 입점을 기피하는 추세다. 문구점과 커피숍을 운영하는 김수현(55) 씨는 “요즘 상가는 돈 날리고 싶으면 들어가는 곳이다”며 “옛날에 배달·배송이 발달하지 않았을 당시에는 아파트 자체 내수로 먹고살았지만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오히려 족쇄로 작용할 위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금리와 더불어 소비 형태의 변화를 상가 몰락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권강수 ‘상가의 신’ 플랫폼 대표는 “아파트 상가 입주 업종이 제한되다 보니 이용자가 더 줄어들고 있다”며 “2010년대 중반만 해도 아파트 상가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투자처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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