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의 디자인" 호불호 갈렸지만 최고 판매량 경신한 국산 세단

앞서 주력 세단 라인업인 아반떼와 소나타의 신형 모델을 차례로 선보이며 '충격과 공포' 작전을 펼쳤던 현대차는 끝끝내 필살기까지 꺼내 들어 소비자들을 패닉에 빠뜨렸습니다. 모델 체인지를 업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으로 이루어내는 현대차의 장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새 차를 사도 금방 구형으로 만드는 바람에 기존 오너들한테 욕도 많이 먹지만요.

아무튼 그동안은 체감되는 변화의 폭이 컸을 뿐 직전 모델의 구성을 상당 부분 유지했었죠. 그에 반해 신형 '더 뉴 그랜저'는 말만 페이스리프트지, 내외관 디자인부터 파워트레인, 심지어 휠 베이스까지 늘려 사실상 풀체인지에 가깝게 변경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이 차급에서 이런 디자인을 선보였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죠. 매끈하게 빚은 전면부는 헤드램프와 그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보닛 절개선을 없애 그동안 익숙하게 봐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는데, 그릴 패턴 중 일부를 주간주행등 및 방향지시등으로 활용하는 재치 있는 디테일로 일체감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방향지시등 점등 시 꼭짓점 부근에 조명 하나가 안 들어오는데 화살표 모양이 강조되면 상대 차량에게 혼동을 줄 수 있어 끄트머리는 의도적으로 안 들어오도록 설정했다고 하네요.

다만 꺽쇠 모양의 주간주행등이 찡긋 이모티콘을 연상케 해 가벼워 보인다는 지적을 받는가 하면, 마치 눈이 여러 개 있는 것 같아 징그럽다며 불편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마름모 패턴이 반복되는 그릴과 헤드램프로 '마름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어요.

외계에서 온 앞모습과 달리 옆모습과 뒷모습은 다행히 지구의 디자인이었습니다. 측면은 길어진 휠 베이스로 더욱 늘씬해졌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알루미늄 휠은 외관의 독특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죠. 개인적으로 캘리그라피보다 일반형 19인치 휠이 들어간 게 더 스포티하고 멋져 보이더라고요.

베일 듯 날카로운 리어램프가 시선을 사로잡는 후면부는 닌자 거북이의 안대를 한 줄로 이어 깔끔한 인상을 줬고 페이크 머플러 팁으로 지적받았던 기아 'K7 프리미어'와 달리 제대로 된 머플러 팁을 달아 직전 모델보다 훨씬 스포티하면서도 고급 차다운 분위기를 전달했습니다. 뒷모습만큼은 신형 모델보다 낫다고 평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전반적으로 전작이 가지고 있던 보수적이고 중후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다시금 젊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거듭났는데 '플래그십'이라는 지위와 5m에 가까워진 전장, 부드러워진 주행 질감과는 다소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호불호는 차 문을 열자마자 해소됐습니다. 5천만 원 미만에 이런 근사한 인테리어를 가진 차가 몇이나 될까 싶죠? 기존의 레이아웃은 유지하면서 많은 부분을 디지털화해 말 그대로 현대적인 고급차 인테리어를 선보였어요. 특히 최상위 트림 캘리그라피에 적용되는 화사한 실내는 차급 이상의 고급감을 선사했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호평받았습니다. 끝물 할인에 마음을 달래던 'IG' 오너들도 결국 여기서 무너져 내렸어요.

브릿지 형태로 솟아오른 콘솔, 나란히 배치된 두 개의 디스플레이가 달라진 실내 분위기를 주도했고 전자식 변속 버튼과 터치스크린을 더한 공조장치까지 최신차다운 첨단 감각으로 무장해 전작과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이패스 단말기를 오버헤드 콘솔에 옮기면서 얄쌍해진 룸미러도 눈에 띄는 변화였어요.

또 무선 업데이트를 지원하는 내비게이션,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집안의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카 투 홈' 기능이 탑재되는 등 생김새에 걸맞은 기능은 물론 내장형 블랙박스 '빌트 인 캠', 파도 소리, 산새 소리 같은 백색 소음으로 탑승객의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는 '자연의 소리'라는 독특한 기능까지 추가됐습니다. 로드레이지를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안 그래도 운동장 같던 뒷좌석은 휠 베이스가 늘어나면서 더 넉넉해졌고 옆과 뒤를 감싸는 블라인드와 개방감이 좋은 파노라마 선루프도 여전히 좋은 구성이었습니다. 제네시스 G90에나 제공됐던 스웨이드 목베개와 나중에는 후석 엔터테인먼트까지 악세사리로 제공하면서 플래그십 답게 꾸밀 수도 있었어요.

원격으로 주차된 차량을 꺼내는 등 운전자 없이 차량을 이동하기 위해서 '전자식 변속 레버'는 필수 요소죠. 다만 버튼의 크기나 누르는 방식이 동일해 주차나 출차 등 변속기를 보지 않고 전후진을 반복하는 상황에서는 레버식보다 불편했습니다.

그나마 소나타와 달리 경사면에 배치돼 조작하거나 보기에는 나은 편이긴 했지만, 버튼식을 쓰는 다른 제조사는 전진과 후진의 디자인을 달리하거나 작동 방식을 다르게 설정하는 등 안전에 대한 고민도 느껴졌는데 이런 부분이 빠진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실제로 이 방식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죠.

파워트레인에도 드디어 변화가 찾아왔는데요. 주력 트림이었던 2.4L 쎄타 GDi 가솔린을 새로운 2.5L 스마트스트림 GDi 엔진으로 대체해 출력과 효율을 높였습니다. 특히 이 엔진은 새로운 CVVD 기술이 적용됐고 주행 환경에 따라 간접 분사와 직분사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독특한 엔진이었어요. 여기에 2.5L 모델에도 8단 자동 변속기를 탑재해 배기량이 커졌음에도 연비까지 좋아졌죠.

6기통 가솔린은 현대의 기함이라는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인지 종전의 3.0을 없애고 3.3L 모델만 남겨 K7 프리미어와 차별화했습니다. 하이브리드와 LPi는 직전 모델의 것을 유지했지만 LPi 모델은 종전의 원통형 가스통이 아닌 신형 소나타에 쓰인 도넛형 봄베로 변경해 트렁크 공간을 온전히 쓸 수 있게 했어요.

또 3.3L 모델에 한해 전동 스티어링 방식을 기존의 컬럼 타입 C-MDPS에서 랙 구동형 R-MDPS로 변경했는데 조향 품질이 좋아진 것은 좋지만 차급이 아닌 트림에 따라 조향 시스템에 차이를 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직전 모델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단단한 승차감은 다시금 단정한 고급 세단으로 성격을 확립하면서 부드러운 승차감으로 회귀했습니다. 운전하는 아빠는 지루해졌을지언정 함께 탄 가족이 더 안락하고 편안해진 것은 분명했어요.

부드러움도 과거 모델들처럼 무턱대고 출렁해진 것이 아닌 적당히 폭신한 승차감으로 승차감과 주행 성능 사이에서 적당한 밸런스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죠.

직전 모델에서 만족스러웠던 주행 보조 기능도 이제는 볼보의 파일럿 어시스트가 부럽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2021년형 모델부터는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옵션과 깔끔한 내장을 갖춘 '르블랑' 트림을 추가, 구매력 있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이름까지 갈아치운 기아 'K8'의 공세에도 꿋꿋이 왕좌를 지켜냈습니다. 이 르블랑 트림은 가격 대비 풍부한 구성이 돋보이면서 애매한 수입차는 물론 풀옵션 중형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에게까지 영향을 줬고, '그돈씨'의 상대 차량으로 활약하기도 했죠. 특히 엔트리 수입차를 선택할 때 발목을 부여잡는 강력한 복병이었습니다.

출시 초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HG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호불호를 일으켰던 더 뉴 그랜저는 그 이름이 주는 신뢰와 경쟁차를 압도하는 상품성으로 여전히 잘 팔렸습니다. 2016년 6세대 출시 이래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량 55만 대를 돌파하며 이번에도 최고 기록을 경신했죠.

CF도 남달랐는데 이전 TG에서 조롱받았던 CF와 동일한 메시지를 가졌지만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연출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오너들의 지위와 그들이 이뤄낸 사회적 성취를 1차원적으로 풀어낸 것이 아닌 일상 속 사소한 에피소드에 녹여내 좋은 반응을 얻었죠. 개인적으로 유튜버를 소재로 한 광고가 기억에 남더라고요.

여담으로 1세대 모델처럼 경찰차로 투입되어 임무 수행하는 장면이 포착됐는데요. 전작들처럼 VIP 경호용으로 특수 목적에 사용되는 것이 아닌 고속도로 순찰대 차량으로 투입됐고 알려진 바로는 무려 V6 3.3L 가솔린 사양이 쓰인다고 합니다.

간혹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임무 특성상 차량 안에 탑승해 있는 시간이 긴 데다 신속하게 출동해야 하는 일이 잦은 만큼 쾌적한 공간과 높은 안전성, 좋은 성능을 가진 모델을 쓰는 것이 저로서는 좋아 보이네요. 소나타처럼 낮고 늘씬한 차체에 둘러진 경찰 랩핑이 은근히 멋져 보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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