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도움이 될 의미있는 공시를 소개·분석합니다.

태광산업은 19일 '장래사업 및 경영 계획' 공시를 통해 10년간 10조원을 투자한다고 공시했습니다. 석유화학 부문에 6조원을, 섬유부문에 4조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태광산업은 "기존 사업과 신사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태광산업은 경기 침체로 불경기에 접어든 지금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이번 투자는 태광그룹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인데요. 투자 시기와 투자 규모면에서 눈여겨 볼 점이 많습니다.
10년 만에 '역대급' 투자하는 태광그룹
태광그룹은 총 투자규모 12조원 중 10조원(83.3%)을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에 배정했습니다. 태광산업은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제조 부문인 태광산업에 집중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5년간 총 8조원을 투자하고, 나머지 5년 동안 2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입니다. 태광산업은 총 10조원의 투자금 중 6조원(60%)을 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부문에 배정했습니다. 친환경 및 고기능성 소재를 중심으로 한 신사업에 4조원(40%)을 투자해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입니다.
2조원(20%)의 투자금은 촉매기술 내재화 등 기존 공장의 설비 및 환경개선에 씁니다. 유형자산의 성능을 높이는 자본적 지출(CAPEX)에 해당됩니다.
나머지 40%는 스판덱스와 나일론 등을 생산하는 섬유부문에 배정했습니다. 섬유부문은 1조5000억원(15%)은 신사업에 쓰고, 나머지 2조4000억원(24%)은 스판덱스 및 아라미드 공장 증설과 노후 설비 교체 등에 씁니다.
이번 투자는 태광산업의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투자입니다. 1950년 창립한 태광산업은 1979년 국내 최초로 스판덱스를 생산해 안정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석유화학산업에 진출해 '석유화학-섬유-직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태광산업은 시장에서 안정적인 점유율을 확보했고, 꾸준히 성장했던 만큼 투자 수요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 단위 투자를 집행한 이력을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탄소섬유 개발한 2010년 전후로 투자활동 '활발'
태광산업 설비 투자에 대한 '씀씀이'가 크지 않은 회사입니다. 안정적인 점유율과 안정적인 현금흐름 덕분에 투자 수요가 많지 않았습니다. 이는 태광산업의 현금흐름표에 잘 담겨 있습니다.
<블로터>가 2000년 이후 태광산업의 투자활동 현금흐름표를 분석한 결과 투자 활동은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가장 활발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연 평균 유형자산 취득 규모는 1772억원에 달했습니다. 2001~2005년은 평균 478억원, 2006~2010년은 평균 825억원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연 평균 3배 이상 투자규모를 늘렸습니다. 유형자산은 부동산과 기계장치, 공구 등 생산활동 및 영업활동에 필요한 설비를 뜻합니다. 이 기간 동안 유형자산 취득 규모가 컸다는 것은 활발하게 설비 투자에 나섰다는 의미입니다.

태광산업은 2009년 탄소섬유를 독자 기술로 개발했고, 2011년 탄소섬유 상업생산 설비를 구축했습니다. 이듬해 연산 1500톤 규모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부터 2022년 3분기까지 유형자산 취득 규모가 가장 컸던 해는 2012년이었습니다. 태광산업은 2012년 2709억원을 투자해 유형자산을 취득했습니다.
이후 탄소섬유 생산체계가 어느 정도 갖춰진 후 투자활동은 다시 위축됐습니다. 2016년부터 2020까지 연 평균 유형자산 취득 규모는 933억원에 그쳤습니다. 다시 이전 규모로 돌아온 것이죠.
이호진 회장 부재 동안 금융상품 투자에 '집중'
태광산업은 탄소섬유 투자를 마무리한 후 이렇다 할 투자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자산의 성능을 효율화하기 위해 자본적지출(CAPEX)을 집행하는데, 태광산업도 CAPEX 투자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석유화학 산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이며, 시스템으로 구성된 연속공정입니다. 태광산업은 업력이 60년에 달하는 만큼 노후설비가 많고, 설비 보수에 필요한 CAPEX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태광산업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연 평균 924억원 규모의 유형자산을 취득했습니다. 이는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신사업 투자보다 CAPEX 투자로 볼 수 있습니다.
대신 태광산업은 금융상품 투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6년까지 7994억원에 달했던 현금성 자산은 2017년 4961억원으로 37.9% 감소했습니다. 태광산업은 2017년 5210억원을 비상장채권에 투자했습니다. 현금성자산이 1조원을 넘어서자 비상장투자로 투자 전략을 바꾼 것입니다. 무작정 유동성을 쌓기 보다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투자에 나선 것이죠.

비상장채권이란 장외시장에서 매매하는 채권으로 매매 시간과 매매 수량, 수익률에 제약이 없습니다. 비상장채권은 매매 당사자의 특수한 사정에 의해 거래되며, 증권거래소에서 또한 거래되지 않는 점이 특징입니다.
태광산업은 2017년부터 현금성 자산의 약 절반 가량을 비상장채권에 운용했습니다. 2018년 비상장채권의 규모는 45% 늘어난 9540억원으로 달했습니다. 2021년 비상장채권 규모는 9354억원에 달했고, 2022년 6884억원으로 26% 감소했습니다. 2021년 현금성자산 중 비상장채권의 65%에 달했습니다.
이호진 회장은 2018년 말 보석취소로 재수감됐고, 2021년 10월 3년의 복역을 마치고 석방됐습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진행되는 동안 태광그룹이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석보다는 태광산업은 탄소섬유 투자를 마무리한 이후 이렇다 할 투자처를 찾지 못했고, 금융상품 투자에 집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태광그룹, 제조 부문의 성장 동력 필요성 '절감'
태광산업의 10조 투자는 미래 성장동력을 절감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태광산업은 탄소섬유 외에 이렇다 할 투자없이 유동성을 쌓았습니다. 현금성 자산의 추이와 비상장채권의 추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인 LG화학부터 경쟁사인 효성까지 많은 석유화학 기업은 이 기간 동안 미래 성장발판을 찾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섰습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2016년 베트남을 방문해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을 만났었죠. 12억달러(1조5648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전부터 석유화학산업은 성숙기를 만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았습니다. 당시 많은 화학기업이 2차전지 소재 개발에 나선 것도 사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한 고민의 일환이었습니다.

하지만 태광산업은 주력 산업인 석유화학 사업과 섬유사업이 침체됐지만 이렇다 할 투자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2011년 4조원에 달했던 매출은 2조원대로 줄었고, 성장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시그널'이 있었습니다. 매해 8%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달성해, 수익성이 '하이싱글디짓'이었기 때문일까요.
태광산업의 미래 투자는 다소 늦은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기 10조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배정한 것은 그만큼 성장 동력이 절박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태광산업이 오랜 기간 유동성을 쌓기보다 석유화학과 섬유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과 다른 사업구조와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지 않았을까요. 태광산업을 100년 기업으로 지속할 만한 아이템이 없다면 다가올 미래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절박함이 이번 투자를 만든 것이 아닐까요. 태광산업의 투자가 의미있는 결실을 맺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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