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동물에서 인간 질병 해결책 보인다”
사람과 동물, 자연 건강 연결된 원헬스
동물 진료 바탕으로 항생제 내성도 연구 중
“전 세계 항생제 중 73%가 가축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과도한 항생제 사용은 내성균 문제를 일으킨다. 큰 문제는 가축에서 발견되는 항생제 내성균이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토마스 반 뵈켈 취리히대 동물병원 원헬스 연구소((One Health Institute) 교수는 29일(현지 시각)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901곳에서 2만8500개의 시료를 수집해 가축 항생제 내성 지도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취리히대 동물병원에 한국과 스위스의 연구자들이 모였다. 입구는 반려견과 사람이 진료를 기다리는 평범한 동물병원의 모습이지만, 이 곳에는 특별한 연구소가 있다. 유럽 최초로 대학이 중심이 돼 설립한 원헬스 연구소다. 뵈켈 교수는 전 세계 연구자들과 협력해 가축, 담수에서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 데이터를 수집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원헬스는 사람과 동물, 자연의 건강이 서로 연계돼 있어 사람의 건강을 지키려면 다차원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동물과 자연에서 사람 질병을 치료할 단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헬스 개념은 야생동물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더 주목 받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미지의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해 원헬스를 연구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원헬스를 통해 항생제 내성균, 인수공통감염병을 비롯한 보건 문제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뵈켈 교수는 “취리히대 원헬스 연구소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협력해 과일, 채소, 가축에서 발견된 항생제 내성균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플랫폼 ‘레지스트뱅크’를 운영하고 있다”며 “최종 목표는 동물에 대한 의료 서비스가 열악한 ‘의료 사막(desert)’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헬스 연구소는 취리히대 수의학부, 의학부, 과학부가 모여 지난해 설립했다. 설립 목표는 원헬스를 통한 공중 보건 증진 방안을 찾는 것이다. 뵈켈 교수의 연구도 그중 하나다. 원헬스 연구소의 핵심적인 역할은 동물병원이 맡고 있다. 동물병원은 이 곳에 모인 동물에서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됐거나 인수공통감염병을 가진 사례를 수집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
취리히대 동물병원 내부로 들어서자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진료를 앞둔 동물의 혈액 채취를 할 수 있는 실험실이 있었다.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처럼 넓은 복도를 따라서 진료실과 함께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대형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장치도 마련돼 있다. 동물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질병을 연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컴퓨터단층촬영(CT)실과 함께 내과, 피부과, 중환자실 등 다양한 진료를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스테판 운터러 취리히대 동물병원 소동물 클리닉 소장은 “동물에서 나타나는 항생제 내성균은 인간의 건강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영상의학, 피부 질환, 대사 질환 등 대부분 연구가 원헬스와 관련이 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항생제 내성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핵심 연구 분야”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균인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중 일부는 사람과 돼지에서 모두 발견된다. 전문가들은 돼지에 항생제를 오남용하면서 내성균을 만들었고, 사람에게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의 해결책을 동물에서 찾을 수도 있다. 당뇨병은 사람과 고양이, 개 모두에서 나타나는 질병이다. 동물을 치료한 경험을 통해 사람의 당뇨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사람용 당뇨병 치료제를 통해 동물을 치료할 수도 있다.
한국과 스위스 과학자들이 협력 방안을 찾는 ‘한-스위스 혁신 주간’ 행사를 위해 모인 만큼 이날 원헬스 분야에서도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한국은 생물학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아직 원헬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없다. 스위스 전문가들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 원헬스 시스템 구축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로라 투쇼스 루딘 원헬스 연구소 교수는 “유럽에도 원헬스라는 이름을 가진 기관이 3~4곳에 불과하지만, 적극적인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원헬스는 전 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한 만큼 협력 네트워크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헬스 연구소가 구축하고 있는 항생제 내성균 데이터베이스도 북한 지역의 데이터는 확보했으나, 한국은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사람에서 발견되는 항생제 내성균 관리 체계는 우수하다고 인정 받고 있으나, 동물이나 환경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뒤쳐진 셈이다.
막스 가스만 취리히대 수의생물학연구소 소장은 “한국 과학계도 원헬스에 관심을 갖고, 정부 차원에서 연구기관 설립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감염병 예방과 보건 증진을 위해서는 전 세계 연구자들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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