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교장을 뽑는다?…가능하다! [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후보자님, 엠비티아이(MBTI)는 뭐예요?” “분배와 성장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하다고 보세요?” 학생들이 훅 던진 초반 질문에 후보자가 멈칫한다. 이백명 넘는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강당. 와그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난 9월22일(일). 제천간디학교 교장을 새로 뽑는 과정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됐다.
학교 안팎에서 개방형 공모제 방식으로 역대 네번째 교장을 선임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 20년째 경력을 쌓아온 교사, 대안학교 현장 지원에 10년 이상 종사한 활동가, 그리고 충북 지역에서 공립 대안학교를 설립 운영하는 데 헌신했던 교사 출신 교장. 이렇게 세명이 지원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 것이다. 왜 학생이 질문을 던질까? 신임 교장 선호도 투표를 할 때 학부모, 교사와 더불어 학생도 동등하게 참여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3주체를 구성하는 인원이 각기 다르므로 투표자 수를 헤아리지 않고, 누구를 지지하는지 후보자별 득표율을 산출한다. ㈔간디공동체 이사회로 해당 결과를 송부하면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진 이사장과 이사들의 협의와 검토를 거쳐 교장을 선임한다.
지난달 22일 1차 대면에서는 후보자별로 2시간씩 사용 시간을 배정했다. 후보자가 학교 운영계획을 요약 발표했다. 그다음 청중들이 미리 써낸 질문을 사회자인 내가 전달 대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총 6시간. 3주체들로 꽉 찬 강당 바닥에 쪼그려 앉아 긴 시간 무대를 주목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보았다. 중학교 1학년 재학생부터 몇년 전 환갑을 넘긴 우리 공동체 김명철 이사장의 눈빛을. 비좁은 강당의 공기를 휘감던 설렘과 긴장,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침묵 속 뜨거운 바람을.
2차 대면 토론은 10월6일(일)에 열렸다. 이번에는 3주체 참여 아래 후보자들 사이 상호 토론이 80분 동안 지속됐다. 다음에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따로 모인 토론장을 후보자 세명이 각각 1시간씩 번갈아 방문하여 더 심도 있는 질의응답 기회를 가졌다.
교사와 학부모를 놀라게 한 주체는 학생들이었다. 교장 후보자 토론회를 앞둔 9월11일(수). 아이들은 학년별 간담회를 연다. 교장의 역할을 어떻게 바라보며, 그이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인지, 가장 변화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점검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다 보니 교장 후보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들이 쏟아졌나 보다. 두툼한 간담회 기록과 후보자를 향한 질문 목록을 검토하던 나는 손끝이 절로 떨렸다.
개인정보만 지운 채 아이들에게 교장 후보자의 자기소개서와 학교 운영계획서를 모두 개방했다. 아이들이 작성한 질문 목록을 보면 학부모나 교사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를테면 대안학교의 존립과 신입생 확보 방안, 재정을 안정적으로 늘리기 위한 계획, 학교의 핵심 교육과정 설계 방향, 학생과의 소통 방식을 묻고 있었다. ‘돌직구’에 가까운 질문들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어른들에게 준 것과 동등한 정보를 주면 학생들은 자기 책임감을 느끼며 어른스럽게 판단한다.
교장 후보 토론회를 밀도 있게 진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실행한 ‘나서기(Step-Up) 회의’가 있다. 교장이 바뀌는 시기를 맞아 학부모-학생-교사 3주체가 조금 더 긴밀한 소통을 펼치면서 상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해보자는 취지 아래 온라인상에서 네번 개최됐다. 나는 교장으로서 첫번째 회의에 초빙받아 학부모들과 토론했다. 두번째는 학부모 임원, 세번째는 학생회 집행부, 네번째는 교사 세명이 발제와 논의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소통 방식이 내겐 무척 인상 깊었다.
4월6일부터 첫 모임을 가진 ‘교장 공모위원회’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학생, 교사, 학부모 대표와 법인의 이사, 상임이사, 이사장을 포함해 모두 11명으로 구성되었다. 새 교장을 선임하는 과정을 관리하며 3주체의 의견을 최종 취합하여 그 결과를 이사회에 상정함으로써 소임을 끝내는 특별위원회였다.
최종 결과 수집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새로 뽑은 지도력 아래 우리 학교는 또 다른 역사를 작성해 나갈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 함께 겪어온 선출 과정만 해도 이미 가슴 부풀어 오르는 역사가 되었다. 모든 학교의 교장이 구성원들의 검증과 환영을 동시에 받는 축제 속에서 선출된다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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