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프로, 콘텐츠 부족에 판매 부진…"킬러 앱 개발 필요"

애플의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프로가 애플리케이션(앱) 부족으로 판매 부진을 겪고 일부 구매자들은 제품을 중고시장에 내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 '비전프로' MR 헤드셋 /사진 제공=애플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 비전프로 출시 이후 매달 해당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앱 개발 속도가 느려졌다고 전했다. 앱 분석 업체 앱피겨스에 따르면 9월 앱스토어에서 출시된 비전프로용 앱은 10개에 불과했다. 이는 출시 직후 첫 두 달 동안 수백개의 앱이 출시됐던 것과 비교된다.

앞서 애플은 8월 비전프로용으로 2500개 이상의 앱이 개발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앱피겨스에 따르면 9월 기준 비전프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앱은 1770개로 집계됐다. 앱피겨스는 두 수치에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일부 앱 사용량이 저조해서 순위에 들지 못해 집계가 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1770개의 앱 중 비전프로 전용으로 개발된 앱은 34%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기존 애플 앱에 비전프로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게임컨설팅업체 게임디스커버 설립자인 사이먼 칼레스에 따르면 헤드셋 업계 선두주자인 메타는 퀘스트스토어에서 약 3500개의 앱을 제공 중이다.

비전프로 앱 생태계의 성장 속도는 아이폰과 애플워치와 비교했을 때도 현저히 느리다. 2008년 아이폰용 앱스토어가 출범한지 약 1년 후  5만개의 앱이 개발됐다. 애플워치는 출시 약 5개월 후 1만개의 앱이 개발됐다.

3499달러인 비전프로의 높은 가격은 출시 전부터 판매 걸림돌로 꼽혔다. 애플은 프리미엄 버전을 먼저 출시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MR 헤드셋 시장을 활성화한 후 저가의 보급형 제품을 판매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비전프로가 판매 부진을 겪으며 이러한 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애플 전문 애널리스트인 대만 TF인터내셔널의 궈밍치 연구원은 애플이 올해 비전프로 출하량을 종전 70만~80만대에서 40만~45만대로 하향조정했다고 4월에 밝힌 바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 2분기 비전프로 판매량은 전 분기 대비 80% 급감했다. 또 초기 구매자의 상당수가 전액 환불이 가능한 2주 이내에 기기를 반품했다. 일부는 중고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약 2000달러인 저가형 헤드셋인 비전을 내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일부 주요 가상현실(VR)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비전프로용 앱을 개발을 서두르지 않고 있고 저가형 모델 등이 출시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계획이다. 그 여파로 콘텐츠 부족으로 제품 확대가 더뎌지고 있고 특히 비전프로만의 킬러 앱의 부재가 최대 해결 과제로 꼽힌다.

VR게임 개발업체 알딘다이내믹스의 흐라프른 토리손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다음 기기가 출시돼서 추세가 더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메타플랫폼의 퀘스트 헤드셋용 인기 게임인 ‘마법사의 월츠’를 개발했다. 비전프로에서도 해당 게임 테스트를 시작했지만 출시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조사업체 크리에이티브스트래티지의 팀 바자린 애플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앱 성장이 느려 보일 수 있는 단계인데 앱 개발자들은 가능한 최고의 앱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그들은 앱 출시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애플에서 비전프로 개발에 참여했던 벤처캐피털(VC) 투자사 트립틱캐피털의 버트랜드 넵뷰 파트너는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넵뷰는 애플이 앱 개발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기존 앱을 비전프로용으로 개발하거나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타는 콘텐츠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여러 앱 제작업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칼레스는 퀘스트가 VR 게임 생태계에서 AR 콘텐츠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 비전프로는 AR 중심의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퀘스트에서는 게임 앱이 가장 큰 인기를 끄는 반면 애플은 비전프로를 업무, 건강 및 엔터테인먼트가 가능한 공간형 컴퓨팅 디바이스라고 소개해왔다.

퀘스트는 게임에 필수인 컨트롤러를 사용해야 하지만 비전프로는 눈동자 움직임, 음성 등으로 제어할 수 있다. 그 덕분에 보다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를 조작할 수 있지만 VR 슈팅 등 일부 게임 개발업체들은 전용 앱을 개발하지 않는 이유로 비전프로에 컨트롤러가 없다는 점을 꼽는다.

한편 지난달 메타는 새로운 혼합현실(MR) 헤드셋인 ‘퀘스트3S’를 공개했다. 이 제품은 퀘스트2와 퀘스트3의 혼합 버전이다. 가격은 299달러로 책정돼 신규 사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저렴하다. 메타는 최근 새로운 증강현실(AR) 스마트글래스인 ‘오라이언’의 시제품도 공개했다. 메타는 아직 오라이언의 공식 판매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 제품은 애널리스트와 소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최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