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너무 오래했다” 삼성 향한 충격적 경고…벼랑끝 쇄신, 마지막 기회 [김민지의 칩만사!]
HBM 이어 차세대 D램서도 SK에 밀려…내부 충격
‘30년 메모리 1등’에 안일해진 삼성…전문가들 경고
“실패 두려워 말고 도전하는 조직문화 되살려야”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살다살다 삼성 반도체가 D램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죠.”
최근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말들이 적잖이 들립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30여년 간 글로벌 메모리 1등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90년대생인 제 기억 속에도 삼성은 늘 1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 아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삼성의 젊은 반도체 직원들 사이에서는 “삼성이 1등을 내어주는 광경을 목격하는 첫 세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섞인 목소리가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너무 1등을 오래했다”며 해이해진 조직 분위기를 지적합니다.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을 필두로 한 반도체 사업의 쇄신이 예고된 가운데, 골든타임은 ‘내년’까지라고 입을 모읍니다. 12만여명의 임직원을 지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는 진정한 혁신을 통해 반등할 수 있을까요? 오늘 칩만사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11일 이재용 회장은 동남아 3개국 경제사절단 동행 일정을 마치고 매우 굳은 표정으로 귀국했습니다. “위기에 대한 극복 방안이 있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죠. 통상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삿말 정도는 건냈는데, 이번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최근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한 위기설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요즘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모두가 ‘삼성전자 걱정’부터 합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했던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90년대부터 늘 위기를 말해왔지만, 요즘처럼 크리티컬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찐’ 위기인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주변에서 들리는 삼성 내부 분위기가 정말 안 좋다며 하루 빨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우려의 시선이 가득합니다.
지난 3분기 잠정실적 부진에 전영현 부회장은 이례적으로 ‘반성문’을 내며 대대적인 쇄신을 예고했습니다. 모두가 반도체 사업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선 전 부회장은 성과가 부진한 사업부터 손을 대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DS부문은 LED 사업팀 정리에 나선 것으로 전해집니다. TV용 LED, 카메라 플래시용 LED, 자동차 헤드라이트 LED 부품 등을 맡아오던 조직인데, 저가 제품 중심으로 시장 경쟁이 심화되며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해당 팀 인력들은 차세대 먹거리인 전력 반도체와 마이크로 LED 사업을 비롯해 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에 재배치될 예정입니다.
동시에 삼성전자의 주축 사업인 메모리 경쟁력 회복에도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선두를 내준 것이 단적인 사례이지만, 그 배경에는 ‘기술 경쟁력 약화’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수율, 생산효율 등뿐 아니라 고객사 중심의 영업 역량에서도 삼성전자가 꽤 뒤쳐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기술력으로는 삼성전자를 따라갈 회사가 없을 것 같던 ‘차세대 D램’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린 것이 컸습니다. 지난 8월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6세대 1c(11나노) 미세공정을 적용한 16GB DDF5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수율은 1b 공정과 비슷한 60% 정도로 전해집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1c 공정의 수율 확대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HBM에 이어 차세대 D램에서도 밀리자, 삼성 내부에서도 충격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년째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 전략에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2019년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를 선언한 후 수십조원의 투자를 단행했지만, 여전히 대만 TSMC와 시장 점유율 격차가 50%포인트 이상 납니다. 오는 17일 TSMC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데, 업계에서는 매출 236억2200만 달러(31조860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 중입니다. 이는 시장 전망치(233억3000만 달러)를 웃도는 수치며, 전년 동기(173억 달러)보다 36.5% 늘어났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올해 파운드리 사업에서 수조원의 적자가 예상됩니다. 3분기에도 5000억원 수준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전해집니다. 수율 개선에 한계에 부딪히면서 신규 고객사 확대는 커녕 기존 고객사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구글은 삼성 파운드리에 스마트폰 ‘픽셀 시리즈’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주문을 맡겼지만, 차세대 제품은 TSMC에 주문을 맡길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의 파운드리 성장에 대한 의지는 굳건해 보입니다. 이 회장은 지난 7일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서 로이터통신에 “(파운드리 분사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제기된 파운드리 사업 분사 가능성에 대해 확실히 선을 그은 셈입니다.
업계 전문가들은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나 매각 없이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인재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합니다. 국내 반도체 인력의 수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메모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파운드리 전문 인력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메모리와 달리 파운드리 사업에 필요한 ‘고객사 중심의 영업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파운드리 고객사들은 세계 최초 같은 타이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칩을 제대로 만들어줄, 기술력과 서비스가 좋은 회사를 찾는 것”이라며 “메모리 시장처럼 단순히 제품만 파는 게 아니라 수주형 영업 역량 증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안일’해진 조직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하는 조직 문화를 다시 되살리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죠.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 임원들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데만 급급해졌다는 평가가 있다”며 “솔직하게 소통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삼성만의 DNA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반도체 쇄신의 ‘골든타임’은 언제일까요? 많은 이들이 내년이 마지노선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6세대 제품인 HBM4에서 SK하이닉스를 이기지 못하면 영영 HBM 시장의 리더십을 빼앗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HBM과 같은 고성능·고부가가치 메모리와 차세대 D램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합 니다. 범용 D램 및 낸드는 삼성전자 매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IT 기기 수요 증감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안정적이지는 않습니다.
4분기 삼성전자의 실적이 낮게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4분기(10~12월) 범용 D램 가격은 0~5% 오르는데 그칠 전망입니다. 반면, HBM을 포함한 전체 평균 D램 가격 상승률은 8~13%로 예상됩니다. 메모리 시장에서의 가격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HBM의 전체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내년 HBM의 수요는 5세대 제품인 HBM3E가 80% 이상을 차지할 전망입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에는 HBM이 전체 D램 비트 생산량의 10%를 차지하고, D램 시장 수익에 대한 HBM 기여도는 30%를 초과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삼성전자가 HBM 역량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전체 D램 시장에서 정말 SK하이닉스에 1위를 내어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올 2분기 SK하이닉스의 전체 D램 시장 점유율은 34.5%로, 전분기(31.1%) 대비 3.4%포인트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의 격차도 12.8%포인트에서 8.4%포인트로 줄었습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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