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아이를 낳으면 친정엄마의 마음은 딸보다 더 바빠집니다. 몸조리는 제대로 하는지, 잠은 제대로 자는지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산후조리원 비용만큼은 친정에서 해 주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올해 예순여섯 살인 윤미경 씨도 1년 전 딸의 산후조리비로 800만 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외손녀 돌을 맞아 찾아간 사돈댁에서, 그 돈이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경 씨는 그날 사돈댁 식탁 앞에서 들고 있던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홀로 키운 외동딸
미경 씨는 서른다섯에 남편을 사고로 잃고 혼자 딸 수진이를 키웠습니다. 보험 회사 영업을 하며 하루에도 수십 군데를 돌았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고객 집 앞에서 기다리던 날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딸은 그런 엄마를 보며 일찍 철이 들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마치고 공기업에 취직했습니다. 3년 전 딸은 같은 회사 선배와 결혼했습니다. 사위는 성실했지만 사돈댁은 자존심이 센 집안이었습니다.상견례 날 사돈 부인은 "저희가 아들 집은 마련해 줬으니 친정에서 섭섭하지 않게 해 주시겠죠" 하며 웃었습니다. 미경 씨는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딸을 위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그 뒤로도 사돈 부인은 명절이나 가족 모임 때마다 은근히 자기 집이 더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미경 씨는 그럴 때마다 딸이 곤란해질까 봐 웃으며 넘겼습니다. 혼자 딸을 키운 엄마라는 이유로 기죽고 싶지 않았지만, 딸의 결혼 생활에 짐이 되는 것은 더 싫었습니다.

800만 원의 산후조리비
작년 봄 딸이 첫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미경 씨는 기쁨에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딸의 산후조리만큼은 엄마가 책임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딸이 알아본 산후조리원은 2주에 800만 원이었습니다. 미경 씨에게는 1년 치 생활비에 가까운 돈이었습니다. 미경 씨는 망설이지 않고 노후를 위해 모아 둔 연금 저축 일부를 해지했습니다."엄마,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시댁에서 반 내준다고 했어." 딸이 말렸지만 미경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엄마가 해 주고 싶어서 그래. 너 낳고 엄마는 몸조리도 제대로 못 했어. 너는 편하게 쉬어." 미경 씨는 그렇게 800만 원 전부를 딸에게 보냈습니다.산후조리원에 들어가던 날 미경 씨는 딸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놓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딸을 낳고 사흘 만에 일어나 시댁 제사 음식을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딸만큼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날 저녁 미경 씨는 혼자 집으로 돌아와 빈 통장을 바라보며 그래도 잘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외손녀의 돌잔치
1년이 지나 외손녀의 첫돌이 다가왔습니다. 사돈댁에서 가족끼리 조촐하게 돌상을 차리겠다며 미경 씨를 초대했습니다. 미경 씨는 금반지와 손수 만든 돌 한복을 정성껏 준비해 사돈댁을 찾았습니다.사돈댁 거실에는 화려한 돌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사돈의 친척들도 여럿 와 있었습니다. 미경 씨는 낯선 분위기에 조금 위축되었지만 외손녀를 안고 웃는 딸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놓았습니다.돌잡이가 끝나고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사돈 부인은 친척들 앞에서 연신 손녀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1년 전 산후조리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미경 씨가 준비한 돌 한복은 밤마다 돋보기를 쓰고 한 땀 한 땀 지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돈 부인은 한복을 받아 들고 "요즘은 이런 거 잘 안 입히는데" 하며 한쪽으로 밀어 두었습니다. 외손녀는 사돈댁에서 맞춘 화려한 대여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미경 씨는 서운한 마음을 꾹 누르고 손녀에게 웃어 보였습니다.

사돈 부인의 자랑
"우리 며느리 산후조리는 우리가 제일 좋은 데로 보내 줬잖아요. 2주에 800이나 하는 데로. 요즘 친정에서 그런 거 해 줄 형편 되는 집이 어디 있어요. 그래도 우리 집에 시집왔으니 대접은 제대로 받아야지."친척들은 사돈 부인을 향해 "역시 통이 크시다", "며느리가 복 받았다"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사돈 부인은 미경 씨를 슬쩍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사돈은 혼자 되셔서 힘드시잖아요.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세요."미경 씨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천천히 내려놓았습니다. 1년 전 연금 저축을 깨서 보낸 800만 원이 어느새 사돈댁의 자랑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았지만 딸은 미경 씨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옆에 앉은 사위도 어딘가 불편한 얼굴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경 씨는 그 자리에서 사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외손녀의 첫돌 잔칫상 앞에서, 그리고 딸이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 앞에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미경 씨의 밥그릇은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딸이 숨긴 이유
돌잔치가 끝나고 딸이 미경 씨를 배웅하러 주차장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딸은 엄마의 손을 잡더니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딸은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던 날 시어머니가 비용 이야기를 꺼내자 친정엄마가 다 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혼자 사는 엄마가 무리했다는 걸 알면 시댁에서 엄마를 더 안쓰럽게 볼까 봐, 그리고 혼수 때부터 이어진 시어머니의 은근한 무시가 엄마에게까지 향할까 봐 두려웠다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그냥 시댁에서 낸 걸로 하자고 했어. 그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엄마 돈인데 시어머니가 친척들 앞에서 자랑까지 할 줄은..." 딸은 엄마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흐느꼈습니다.미경 씨는 그제야 1년 전 딸이 시댁에서 반을 내준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딸은 엄마가 무리하는 것을 막으려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끝내 전부를 보내자, 딸은 그 돈의 주인을 밝히지도 못한 채 1년 동안 혼자 속앓이를 해 온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한 말
미경 씨는 한참 동안 딸의 등을 쓸어 주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댁 눈치를 보며 혼자 속앓이를 했을 딸이 더 안쓰러웠습니다."수진아, 엄마는 돈 아깝다고 생각 안 해. 너 편하게 쉬었으면 그걸로 된 거야. 그런데 하나만 약속해. 다음부터는 엄마 일로 네가 숨지 마. 네가 당당해야 엄마도 당당한 거야. 네 남편한테도 있는 그대로 말해."며칠 뒤 사위가 미경 씨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사위는 그제야 사실을 알았다며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에게도 사실을 바로잡겠다고 했습니다. 미경 씨는 사위의 말에 그동안 막혔던 숨이 조금은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그 일이 있고 한 달 뒤, 사돈 부인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습니다. "사돈, 제가 몰랐어요. 그날 실례가 많았습니다." 미경 씨는 그 문자를 한참 바라보다 답장을 보냈습니다. "괜찮습니다. 우리 둘 다 손녀 할머니잖아요. 앞으로는 서로 솔직하게 지냅시다." 그날 저녁 미경 씨는 오랜만에 밥 한 공기를 다 비웠습니다.

자식을 위해 건넨 돈이 때로는 엉뚱한 사람의 자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미경 씨가 무엇보다 마음 아팠던 것은 800만 원이 아니라, 시댁 눈치를 보며 엄마의 정성을 숨겨야 했던 딸의 처지였습니다.자식을 도울 때는 그 마음이 왜곡되지 않도록 가족끼리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식이 시댁이나 처가에서 당당할 수 있도록, 부모 스스로도 자신의 수고를 숨기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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