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한일전이 이상하다 [스한 위클리]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가위바위보도 이겨야 한다는 한일전. 항상 치열하고 박빙이지만 한국이 극적으로 이긴 기억이 많았기에 더 강렬했던 한일전의 양상이 최근 많이 달라지고 있다.
양국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와 야구뿐만 아니라 그래도 비슷했던 여타 종목에서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모두가 알지만 외면했던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민낯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S급으로 버티던 한국, 뿌리부터 키워오던 일본
많은 종목에서 한국과 일본간의 라이벌전은 양상이 비슷했다. 소위 S급 선수들이 튀어나와 양상을 바꿔 놓은 한국, 탄탄하게 뿌리부터 키워오는 일본이었다.
축구는 차범근부터 시작해 박지성, 손흥민으로 대표되는 소위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있었고 야구에서는 'ML 아시아 최다승' 박찬호, 'ML 아시아 최다홈런' 추신수, 그리고 '괴물투수' 류현진이 있었다. 또한 피겨에서는 김연아가, 배구에서는 김연경 등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S급 선수들이 배출됐고 그들을 필두로 일본과의 맞대결뿐만 아니라 국제 경쟁에서도 앞서거나 혹은 대등함을 유지했다.
물론 일본도 세계적으로 뛰어난 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축구에 나카타 히데토시, 카가와 신지, 야구에 노모 히데오, 이치로 스즈키, 다르빗슈 유, 오타니 쇼헤이, 피겨의 아사다 마오 등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일본은 뿌리부터 탄탄히 키워와 선수층이 두텁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축구, 야구 등에서 해외 진출 선수는 양적으로 한국을 압도했다. 그들이 나가도 비슷한 급의 선수가 언제나 자국리그를 메우고 또 해외로 진출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왔다.
▶최근 확 벌어진 한일 스포츠 격차
하지만 최근 한일간의 스포츠 격차가 심상치 않다. 일단 맞대결인 '한일전'에서 일방적이다. 남자 축구는 연령별 대표팀 포함 4연속 0-3 패배를 당했다.
-남자 축구 한일전 4연속 0-3패
2021년 3월 A대표팀 맞대결 : 0-3 패
2022년 6월 U-16대표팀 맞대결 : 0-3 패
2022년 6월 한국 U-23대표팀vs일본 U-21대표팀 : 0-3 패
2022년 7월 A대표팀 맞대결 : 0-3 패
야구는 더 심각하다. 프로 선수들이 출전한 대회에서 6연패 중이다.
-야구 한일전 6연패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예선 7-8 패배, 결승 0-7 패
2019 프리미어12에서 슈퍼라운드 8-10 패, 결승 3-5 패
2020 도쿄 올림픽 준결승 2-5 패
2023 WBC 조별리그 4-13 패
축구의 경우 해외파 모두 포함되지 않아 제대로 된 맞대결이 아니었다는 핑계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남자축구 A대표팀간 역대 한일전 통산 42승23무16패의 압도적 우위를 생각하면 심상치 않다. 야구의 경우 6연패를 당하기 전만해도 프로가 나온 국가대표간 맞대결에서 9승7패 우위였다.
축구와 야구의 S급에서도 이제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최근 EPL에서 가장 핫한건 손흥민이 아닌 일본 윙어 미토마 카오루(브라이튼 알비온)며, 오타니 쇼헤이는 단순히 아시아가 아닌 현존 야구 선수 No.1의 실력과 인기를 보유하고 있다.
축구와 야구뿐만 아니다. 남자 골프에서는 마쓰야마 히데키가 2022년 1월부로 최경주가 보유했던 아시아인 PGA 최다승(8승)과 타이기록을 이뤘고 1승만 추가하면 최경주를 넘어선다. 농구에서는 와타나베 유타(브루클린 네츠), 하치무라 루이(LA 레이커스)가 세계 최고 NBA에서 활약 중인데 한국은 2006년 하승진 이후 17년째 감감무소식이다.
피겨에서도 남자에서는 우노 쇼마, 여자에서는 사카모토 카오리가 세계 1위다. 테니스는 아시아 역사상 최고 선수인 남자 니시코리 케이, 여자 세계 1위를 경험한 오사카 나오미로 일본 절대 우위다. 배구가 그나마 남자가 최근 10년간 한일전 10승10패, 여자는 9승11패로 비슷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양국 배구 수준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불편한 진실이 드러나자 보이는 민낯
사실 한국과 일본은 인구수(5100만 vs 1억2300만)나 국토 면적차(1004만ha vs 3780만ha)의 격차가 크다. 그만큼 일본은 내수시장이나 인프라가 갖춰지기 좋은 환경이다.
풀뿌리에서부터 차이가 명확하다. 일본 남자 고교 축구는 등록팀 3962개로 한국의 고등부 등록팀 190개와 20배 넘게 차이 난다. 야구 역시 일본은 고교팀 4000여개, 한국은 겨우 70개팀을 넘겼다.
한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와 야구가 이러한 상황인데 나머지 종목은 더 말해 뭐하겠나. 사실 이런 풀뿌리에서부터 압도적 차이를 그동안 한일전에 대한 강한 정신력과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S급 선수들의 대활약 덕에 버텨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WBC 참사나 축구에서 4연속 0-3 패배로 일본과의 격차라는 둑이 무너지고 말았다. 둑은 이미 터졌고 물은 쉼 없이 콸콸 쏟아질 것이다.
160km/h를 던지는 일본 선수가 나올 때 한국은 여전히 150km/h를 던지면 어화둥둥 해주고 있다. 신체조건이 더 나은 한국 선수들이 구속에서 밀리는 건 결국 육성 시스템의 문제다. 축구 역시 어린시절 기본기를 등한시하고 전술 맞춤 축구로 결과에만 집착하며, 일관성 없는 시스템에 하고자 하는 축구색깔 없이 윗사람 맞춤형 축구를 하고 있다. 일본하면 '스시타카'로 대변되는 패스 축구를 2~30년째 고수하면서 색깔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이제 불편한 진실이 수면 위에 드러났다. 거울로 부끄러운 민낯을 봐야 할 때가 왔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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