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부모 집에 카메라를 달겠다길래.." 화를 냈다가 이유를 듣고 입을 다물었다

올해 일흔넷인 나는 남편과 둘이 살고 있다.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 차로 한 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살지만 아직 장도 보고 병원도 우리끼리 다닌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거실에 카메라를 하나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걱정해서 그러는 줄 알았지만 내 생활을 자식이 들여다본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화가 났다.

"우리가 그렇게 못 미더우냐"고 화부터 냈다

아들은 휴대전화로 볼 수 있는 작은 카메라라고 했다.
"엄마, 거실 쪽에 하나만 달자."
나는 바로 싫다고 했다.
"내가 집에서 뭘 하는지 네가 하루 종일 들여다보겠다는 거야?"

아들은 그런 게 아니라고 했지만 기분이 상했다.
아직 밥도 해 먹고 산책도 다니는데 벌써부터 늙은 부모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우리 아직 멀쩡해. 필요 없어."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아들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며칠 뒤 며느리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뒤 며느리에게 전화가 왔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 카메라 때문에 많이 기분 나쁘셨죠?"
나는 솔직히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며느리가 한참 망설이다 말했다.
"사실 지난번에 아버님 넘어지신 날 이후로 오빠가 잠을 잘 못 자요."

몇 달 전 남편이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가 거실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날 남편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안방에 두고 자느라 남편이 부르는 소리를 바로 듣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서야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들이 카메라를 달고 싶어 했던 진짜 이유를 들었다

그날 저녁 내가 먼저 아들에게 전화했다.
"너 아빠 넘어진 것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말했다.
"엄마, 내가 겁나는 건 두 분이 늙는 게 아니야."
그리고 한참 뒤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데 내가 하루 지나서 아는 게 제일 무서워."
아들은 출근하면 휴대전화를 자주 볼 수도 없고 매일 전화하면 우리가 귀찮아할까 봐 하루에 한 번만 연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넘어진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으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했다.
"엄마 사생활 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침에 거실에 불 켜져 있고 두 분 움직이는 것만 확인하면 돼."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카메라를 자식의 감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그것은 멀리 사는 부모에게 오늘도 아무 일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창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거실 전체가 아니라 현관과 거실 일부만 보이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침실과 주방처럼 사적인 공간은 보이지 않도록 했고 아들이 필요할 때만 확인하기로 약속했다.

대신 나도 조건을 하나 걸었다.
"카메라만 보지 말고 전화도 해."
아들이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실제 노년 부모와 성인 자녀 사이에서 있었던 여러 돌봄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부모에게는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는 자존심이 중요하고 자식에게는 멀리 있는 부모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느 한쪽의 마음만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노년의 돌봄에는 안전만큼 부모의 사생활과 동의도 중요하다.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어디까지 확인할지 함께 정하고 부모가 불편하지 않은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다.

부모가 늙으면 자식의 걱정은 커진다. 하지만 가장 좋은 돌봄은 몰래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괜찮은 방법을 함께 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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