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조 생산적 금융, 산업·기업은행에 나뉜 역할과 부담

서울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본사(왼쪽)와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사(오른쪽) 전경  /사진 제공=각 사

국책 금융기관으로서 한국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이 향후 5년간 '생산적 금융'에 55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책의 무게중심이 양 기관에 쏠리고 있다. 산업은행은 큰 틀의 산업 전략과 대형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역할을 맡고,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현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집행하는 구조다. 자금 규모뿐 아니라 위험과 책임 역시 두 기관에 다른 방식으로 배분됐다는 평이 나온다.

결국 생산적 금융의 성패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각자의 역할에 맞는 자금 공급과 리스크 관리를 동시에 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각 기관이 감내해야 할 부담의 성격 역시 구분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우선 250조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을 견인한다. 국민성장펀드 지원 25조원, 인공지능(AI) 등 첨단·미래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100조원, 국가 균형성장을 위한 지역금융 확대 75조원, 산업 업그레이드 및 녹색에너지 대전환 50조원 등이 주요 항목이다. 여기에 국민성장펀드와 연계한 국민성장 프로그램도 25조원 규모로 추진할 계획이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이 기업공개(IPO) 이후에도 성장 과정에서 자금 공백을 겪는 이른바 '데스 밸리' 기업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책금융의 범위를 넓히는 시도지만 리스크 관리의 난이도도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생산적 금융 규모 /그래픽=김홍준 기자

기업은행의 성격은 다르다. 향후 5년간 300조원 이상의 자금을 생산적 금융에 투입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에 250조원을 공급하고 벤처·투자·인프라 부문에 20조원을 배정한다. 여기에 취약계층 지원과 IBK캐피탈 등 자회사를 활용한 투자까지 포함하면 추가 집행 규모는 37조8000억원에 이른다.

산업은행이 산업 전략과 정책 방향을 설정한다면 기업은행은 개별 기업의 재무 상태와 사업성을 기준으로 자금을 집행하는 셈이다. 결국 정책 효과가 실물경제에 얼마나 빠르게 전달되는지는 기업은행의 여신 심사, 집행 속도, 사후 관리 역량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경기 둔화 국면에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부문의 부실 위험이 가장 먼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생산적 금융 확대가 자금 공급 압박으로 이어지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건전성 을 둘러싼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 기관의 지원 규모는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내놓은 향후 5년간 500조원대의 공급 규모를 웃돈다. 자금 투입의 속도와 규모가 큰 만큼 경기 회복 속도가 늦어지게 되면 투자 효과보다 국책은행이 떠안아야 할 건전성의 부담이 먼저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할 분담을 전제로 정책금융기관 간 협업을 주문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을 대상으로 협의체 구성을 지시하며 정책 설계 단계부터 기관 간 아이디어 공유와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기업은행의 생산적 금융 550조원 투입은 정책금융의 외형을 확대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다만 산업은행은 장기·대규모 투자에 따른 회수 불확실성을 책임지고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부문의 건전성 부담을 지게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정책금융의 큰 방향과 산업 전략을 설계하는 역할이라면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을 위한 디테일한 자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기관"이라며 "생산적 금융이 체감될지 아니면 부담으로 남느냐는 두 기관의 자금 집행 구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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