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법의 입안자. 그의 B면을 취재했다.
판사 생활만 29년. 그중 대법관 생활이 6년이다. 빈틈없고 칼 같은 성정일 듯 싶지만 그는 자신을 소심하고 무엇이든 결정이 어려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판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도 소심한 성정 때문이었다고.
“검사는 피의자를 신문하고 조서를 써야 해서 겁이 났어요. 변호사는 다듬어지지 않은 사건을 처음부터 다뤄야 하니 어려워 보였죠.
판사는 변론을 듣고, 판결만 내리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할 줄 아는 게 읽고 쓰는 것밖에 없어서. (웃음)”
그러나 판사 일은 쉽지 않았다. 타인의 삶을 결정한다는 부담감이 그를 짓누르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소설 속으로, 영화 속으로 파고들었다.
# Take 1.판결에서 소설을, 소설에서 판결을 보다
아담한 체구에 은빛 단발머리. 끝까지 단추를 채운 짙은 베이지색 셔츠에 회색 정장 차림이 단정한 68세의 전 대법관.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검박해 보였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습기가 찬 안경을 닦으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한쪽 눈이 녹내장, 백내장에 황반변성까지 생겨서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아요. 다른 눈도 근시가 심해요.
얼마 전 퇴임하신 대법관님들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가 혼쭐이 났어요. ‘여기 그런 직업병 없는 사람이 누가 있어’ 하시길래, ‘예’하고 찌그러져 있었죠. (웃음)”
김영란은 흐릿해진 눈으로 소설을 읽고, 지난 판결을 회고한다. 새만금 간척 허가 판결을 이야기하며, 존 그리샴의 소설 『펠리컨 브리프』를 꺼내온다.
유전油田을 개발하려고 환경을 파괴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대기업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동성애자였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는, 대법원의 성소수자 관련 판례를 떠올렸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며 끝없이 생각한다. ‘나의 판결이 과연 옳았을까?’
# Take 2. 분열된 두 개의 자아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1남 4녀 중 셋째 딸. 어려서부터 몸으로 하는 건 다 어설펐다. 대신 책 읽기에 빠져들었다.
집 안 가득했던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화사, 사상계 같은 전집류들… 어려운 책만 읽은 건 아니었다. 만화책을 빌려다가 온 가족이 돌려 읽었다.
일찍이 중학생 때 자아를 두 개로 나누었다.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 『토니오 크뢰거』 속 주인공에, 자신을 포개어 이입하면서부터다.
주인공 토니오는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낀다.
반면 외향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는 동급생 한스. 토니오는 그에게 열등감과 동시에 동경을 느낀다.
소녀 김영란은 토니오가 꼭 자신처럼 느껴졌다.
“학창 시절도 그렇고 이후 판사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자기 분열을 겪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세상에 나가서 이런 주장을 하지 못하는 걸까? 다른 사람이 되어보길 꿈꾸고, 혹여 실수할까, 엉뚱한 소리 할까 봐 또 주저하고…
내가 속한 세계와 내가 가고 싶은 세계 사이에서 내적 갈등하는 토니오 크뢰거를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죠.”
방황하는 내면과는 별개로 인생의 방향은 의외로 빠르게 결정됐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4학년 초, 처음 본 사법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다른 일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29년 판사 생활의 시작이었다.
# Take 3. 소설, 타인을 바라보는 돋보기가 되다
업무는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록이 배당되면 사무실 책상에 한가득 서류 뭉치가 쌓였다.
마침내는 맞은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읽어도 다 읽지 못하면, 분홍색 보자기에 싸서 양손 가득 들고 집으로 향했다. 2주에 약 90건의 사건을 읽고 처리했다.
법복 입는 해가 쌓일수록 법관에게 필요한 건, 매정함보다 관용임을 깨달아갔다.
“‘저 판사가 내 말을 들어주는구나’, 이 느낌이 중요하겠죠. 한 사람당 무한히 이야기를 들어줄 순 없어요.
적어도 ‘내가 말하는 본질을 저 판사는 이해하는구나’ 알 수 있게끔 표현을 해줘야 해요.”
그러나 밀려 들어오는 서류 더미 속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는 소설을 펼쳐 들었다.
“내가 생각도 못 했던 인물의 심리, 동기, 사건이 소설 안에서 다양하게 펼쳐지잖아요.
책을 많이 읽어왔던 게, 재판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다소 감상적인 접근은 아니었을까. 나의 표정을 읽었다는 듯이 그는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이야기를 꺼내었다.
책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서 누스바움은 “법률가와 판사에게는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시적 정의』 속 한 구절을 내게 들려주었다. 2022년 최고령으로 퇴임한 미국의 대법관 스티븐 브레이어가, 소설 『제인에어』를 인용해 했다는 말이다.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며 김영란은 덧붙였다.
“소설은 하나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거예요. 간접 체험하면서 자기 삶의 폭을 넓히는 거죠.
나와 내면 체계가 다른 이의 마음을 비교하면서, 공감하고 비판하고. 나름 카타르시스도 느껴지죠.”
# Take 4. 소설은 고난의 버팀목이 됐다
소설은 김영란 개인의 삶에도 활력이 되었다. 결정이 숙명이었던 판사라는 업. 타인의 인생에 과하게 참견하는 것 같아, 버거울 때가 많았다.
주변에서 ‘출세했다’는 말을 아무리 해줘도 소용없었다.
“‘이 직업이 저하고 안 맞았던 것 아닌가.’ 몇십 년을 하고서 이런 얘기를 하니, 저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평생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에 괴롭고 힘들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우울증은 늘 기저에 있었던 것 같고요.”
시대적 상황도 그에겐 낯설었다. 사법연수원(11기)에 들어갔던 1979년, 연수원생 120여 명 가운데 여성은 그 하나였다.
혼자 밥 먹는 일부터 익숙해져야 했다. 퇴근 후에도 짬짬이, 도망치듯 책을 읽어댔다.
“책이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어요. 판사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책으로 풀어냈죠. 소설, 인문, 사회과학…
책을 읽으면 머리를 청소하는 느낌이랄까. 한번 싹 씻어내고 업무에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서울에서 줄곧 살다가 출생지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부산으로 발령이 나기도 했다. 큰아이가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갔을 시기. 발령받고 보니 뱃속엔 둘째가 있었다.
남편과 떨어져 홀로 아이들을 키웠다. 최루탄 연기를 뚫고 퇴근하면, 외롭고 고된 엄마 역할이 남아 있었다.
성공적인 작가이면서 어머니의 역할도 수행했던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읽으며, 위로받고 또 자신을 연민했다.
“나는 책에서 세상과 싸울 무기를 구하기보다는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세상을 납득해 보려는 도구를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책 읽기가 때로는 사유의 샘을 깨우는 폭포수일 수도 있지만, 삶의 각 페이지를 어렵게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_김영란, 『시절의 독서』에서
# Take 5. 자기 의심에서 깨달음으로
‘판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뭘 해야 하는 직업일까’.
해가 갈수록 외려 질문만 늘어갔다.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과 마주했으니, 대법관 임명이었다.
그가 대법관이 되자마자 여성의 권리를 배제해 온 오랜 관습과 대법원 판례가 깨졌다.
2005년 ‘여성 종중원宗中員’ 인정 판결이 대표적. 종중이란 같은 조상을 둔 이들의 모임을 뜻한다.
이전까지 여성은 종중 회원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재산도 분배 받지 못했다.
“제가 대법관으로 들어가자 이전에 강경하게 반대하시던 남성 대법관들이 쉽게 동의하셨어요.
일에 적응하기 급급할 때라 제가 특별히 의견을 낸 것도 아니었거든요.
‘이제 여성 대법관도 생겼는데 나도 우리 외손녀 생각해야지’ 하시더라고요.”
자신이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는걸, 그제야 실감했다.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대법관이 되자 대법원에 여성 비서관, 여성 전속재판연구관도 채용됐다.
의문을 품었던 그는, 점차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를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 Take 6. 소심이 뚝심으로 자라나다
소심했기 때문에 마음속은 누구보다 시끄러웠던 김영란. 그는 대법관 퇴임 당시 이렇게 말했다.
“이제껏 답을 내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 살겠다”. 지금 그는 어떤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을까.
2015년 첫 번째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를 펴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참여했던 전원합의체 판결 중 할 말이 있는 사건들을 모았다.
『판결과 정의』는 대법원을 떠나고 난 이후 나온 판결 중, 그가 ‘유감’인 내용을 다뤘다.
2024년 4월의 김영란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얼마 전 펴낸 『판결 너머 자유』에서 그는 최근 선고된 전원합의체 판결들을 해제하며, ‘합의’가 우리 사회에 갖는 중요성을 짚었다.
소설로 시작하는 것도 ‘김영란’답다. 이청준 작가의 소설, 『소문의 벽』으로 책은 화두를 던진다.
6·25 전쟁 이후 좌우 이념대결이 극에 달했던 50년대. 신문관들은 오밤중에 무작정 들이닥쳐 전짓불(손전등 불빛)을 비추며 물었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손전등 빛은 너무 밝아, 그 너머에 어떤 편이 있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김영란은 바로 지금이, ‘모두에게 전짓불을 들이미는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이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짓불을 들이대는 것 같다.
기성 미디어는 물론,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많은 미디어들이 전짓불을 들고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라고 묻고 있기 때문이다.”
_김영란, 『판결 너머 자유』
그는 다양한 목소리가 각자 극단으로 치닫는, 다원주의 사회의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누구의 편인지 집요하게 묻는 시대. 함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중첩적 합의’를 제시한다. 합리적인 신념 체계들 간의 합의점을 말한다. 충분한 토론을 통해 갈등이 분열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법대로 해!’ 하는 게 과연 옳을까요. 법을 두고도 이런 의견과 저런 의견은 나옵니다.
조금씩만 양보할 수는 없을까 질문했고, ‘중첩적 합의’라는 결론을 내린 거죠.”
폭력과 불법으로 악을 응징하는 ‘다크 히어로’ 드라마가 인기인 시대에, 김영란은 다시 법의 ‘합의 역할’을 꺼내 들었다.
“법으로 구현하는 정의는 대중이 보기에는 미흡할 수는 있어요. 예컨대 독일은 사형제를 채택하지 않고, 아무리 흉악한 범죄에도 과도한 형을 내리지 않습니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대중의 입맛엔 안 맞을 수도 있죠. 하지만 공적 이성과 중첩적 합의로 사람들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중첩이 아닌 ‘침해’라고 생각하는 시대. 김영란은 책으로 질문을 던지며, 천천히 대중을 설득하고자 한다.
“인류는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의 범위를 넓히면서 발전해 왔다고 믿어요.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점점 어려워지지만…
중첩적 합의는 맞아요, 이 시대엔 어쩌면 이상理想일 거예요. 하지만 이상적이면 어때요. 이상이 있어야, 향해갈 수 있지요.”
하지만 결국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답을 찾아냈다. 삶에 대한 해답은 자연스레 찾아지기도 한다. 그의 두 자아는 서로에게 스며들듯 하나가 됐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 오늘의 다큐멘터리를 공유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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