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전통문화 각도 틀기

2026. 5. 2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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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구 노스텔지어 한옥호텔 대표이사

우리가 전통문화를 이야기할 때 오랫동안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렸던 관념은 '보존'과 '계승'이었다. 조상의 혼과 얼이 담긴 문화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후대에 잘 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분명 숭고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 '문화'와 우리 '전통'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이 자칫 현시대가 요구하는 기대와 기회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전통을 과거의 추억과 기억 속에만 가둔다면, 혁신을 통한 새로운 문화 창출의 가능성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최근 서촌과 북촌의 '한옥스테이'를 두고 지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한옥은 한국 고유의 전통 건축 양식이자 보존해야 할 문화 자산이기에, 편의성을 위해 모던하게 수리하면 우수한 전통문화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물론 역사적 가치가 압도적인 한옥은 문화재로 지정해 엄격히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곁에 숨 쉬는 한옥의 대부분은 현대적 삶에 맞춰 부엌 구조를 바꾸고, 창호의 재질을 개선했으며, 전기와 도시가스를 도입하고, 마당의 쓰임과 바닥 및 천장을 시대에 맞게 진화시킨 '개량 한옥'들이다. 이들조차 주차나 교육 등 주거환경의 한계로 인해 주민들이 떠나가며 오랫동안 방치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의 냉혹한 현실이었다.

따라서 이 도심 한옥들을 매력적으로 재생해 국내외 여행자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고, 한옥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한옥스테이'는 전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자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 즉 한옥스테이를 단순한 '숙박업'이 아닌 한옥 '문화 콘텐츠업'으로 재정의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시대적 활용도를 찾지 못하고 잊히던 공간을 더 편리하고 가치 있게 재창조해내는 작업이다. 결국 한국 고유의 미학을 다음 세대에게 더 발전된 모습으로 전하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계승'인 셈이다.

전통은 현재의 호흡과 결합할 때 비로소 파괴적인 파급력을 갖는다. 판소리에 팝과 힙합의 비트를 과감하게 섞어 전 세계 MZ세대를 열광시킨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그 선두에 있었다면, '서도밴드'는 국악을 '조선팝'이라는 동시대적 장르로 명명하며 한 단계 더 나아간 시도를 보여준다. 이들은 전통의 창법과 음계를 과거의 한(恨)을 박제하는 데 쓰지 않는다. 대신 고립된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뜨거운 열망을 위로하는 가장 현대적인 언어로 활용한다. 전통이라는 원석을 현대인의 내면과 공명하는 정서적 문법으로 번역해낼 때, 대중은 비로소 전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열광하게 된다.

문화의 고양은 과거의 문법을 현재의 문맥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전통을 박물관 진열대에서 꺼내 와 적극적으로 부수고, 섞고, 다시 조립할 때 전통은 비로소 미래를 향한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

중요한 것은 '지키는 마음'보다 '쓰는 마음'이다. 전통은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주돼야 할 영감의 원천이다. 우리가 전통을 바라보는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보이지 않던 수만 가지의 가능성이 열린다. 한국 문화가 단지 오래된 유산이 아닌 늘 새롭고 가치 있는 존재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지키는 것'의 정적인 숭고함보다 '쓰는 것'의 역동적인 생명력에 집중해야 한다. 문화는 고여 있을 때가 아니라, 거칠게 흐르고 섞일 때 비로소 위대한 문명이 된다.

[박현구 노스텔지어 한옥호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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