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티로드, 미쉐린 패션 익스피리언스

모나코 시승 출장은 늘 아슬아슬한 모험으로 가득하다. ‘모나코’라는 지명을 떠올리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몽환적인 인디 음악 들으며 여유롭게 해안도로를 질주하는 상상에 빠져든다. 하지만 정작 도착해 보면 항상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도전적인 임무가 기다린다. 공교롭게도 프랑스 남동부 리비에라 지역을 달리는 시승이 올해만 세 번째다.

포르쉐 마칸 EV, 맥라렌 아투라 스파이더 출장 때는 니스와 안티베 북부 지역을 돌았는데, 이번에는 모나코 오른편 멍똥 지역을 지나 소스펠로 향하는 완전히 다른 코스였다. 출발 전 코스 브리핑 때까진 이번에야말로 그토록 원하던 낭만 가득한 시승일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신차를 타고 주행 감상과 스펙을 늘어놓는 뻔한 레퍼토리가 아니다. 미쉐린 행사지만, 새 타이어 테스트도 아니다. 미쉐린 패션 익스피리언스(Michelin Passion Experience, MPE)에 참가해 미쉐린의 다양한 가치를 심도 있게 경험하는 기회다. 당연히 시승이 빠지지 않는다. 고성능 미쉐린 타이어 체험은 MPE의 핵심이다.

차는 포르쉐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 GTS, 타르가 4S, 페라리 296 GTS, 포르토피노 M, F8 스파이더, 벤틀리 컨티넨탈 GTC를 준비했다. 나는 컨티넨탈 GTC와 296 GTS를 번갈아 탔다. 타이어는 전부 파일롯 스포츠 4S(PS4S). 노면을 쫀득쫀득하게 붙들어 일명 ‘떡 그립’으로 소문난 미쉐린 서머타이어다. 물론 이보다 윗급으로 가면 트랙용 슈퍼카나 1000마력 웃도는 하이퍼카에 끼우는 파일롯 스포츠 컵2와 컵2 R이 있다.

호텔을 나설 땐 컨티넨탈 GTC에 먼저 올라탔다. 3명 중 1명이 억만장자인 모나코에선 흔하디흔한 차지만, 그만큼 벤틀리의 품격은 럭셔리한 도시 분위기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우러진다. 번잡한 모나코 중심부를 빠져나가는 일도 매끄럽고 편안했다. 행인 때문에 자주 가다 서기를 반복해야 해서 번거롭기는 했지만, 지붕 열어젖힌 슈퍼 럭셔리카를 타고 모나코를 누빌수록 가슴 가득 행복이 차올랐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도시의 화려한 경관을 눈에 담았다.

모나코 사람들은 어떤 차인지 관심조차 없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반대였다. 우리 행렬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도심 외곽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부가티 시론이 옆으로 유유히 추월해 지나갈 땐 진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부가티는 컵2 타이어를 쓴다. 일반 컵2는 아니고, 초고속 안정성을 위해 미쉐린이 특별 제작한 제품이다). 전시한 모습도 보기 힘든 유니콘 같은 차가 바로 옆으로 신나게 달려 지나가니 새삼 신기했다. 부자로 가득한 동네답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산악 코스에 들어서자 어김없이 도로 폭이 좁아졌다. 오래전에 깐 도로라 요즘 자동차가 다니기엔 폭이 너무 좁았다. 심지어 정상에 다가갈수록 더욱 비좁았다. 마주 오는 차에 사이드미러가 날아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러시안 룰렛이 따로 없다. 마냥 차를 바깥쪽으로 바짝 붙이기도 녹록지 않았다. ‘연석에 휠이 갈릴까’하는 걱정은 둘째치고, 난간 너머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까 두려웠다. 이곳을 지나는 차 대부분이 미니 쿠퍼나 피아트 500 같은 소형차인지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속도를 아예 못 낸 건 아니다. 296 GTS로 갈아탄 후에는 최종 목적지가 있는 셍뜨 아녜쓰까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를 달렸다. 로켓 같은 펀치력에 흠뻑 빠져서 산 이곳저곳을 누볐다. 830마력 뒷바퀴굴림 슈퍼카로 마음 놓고 맹렬한 질주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타이어 때문이다. 타이어의 중요성은 입이 닳도록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차체자세제어장치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타이어가 견디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물론 최고출력의 절반도 못 썼겠지만, 구불구불 이리저리 휘어지는 산길에서 끝끝내 트랙션을 지켜낸 PS4S는 정말이지 든든한 수문장이었다.

전 세계 여러 투어링카 챔피언십에서 활약하는 아우디 RS 3 LMS에 동승해 랠리 주행을 간접 체험하는 시간도 인상적이었다. LMS는 투어링카 레이싱 규정에 맞게 손본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과 1200kg대 경량 차체, 변속과 토크 전달이 매우 빠른 6단 시퀀셜 변속기, 다운포스에 중점을 둔 공기역학 설계, 레이싱 전용 서스펜션을 조합했다.

830마력 슈퍼카에서 막 내린 터라 최고출력 330마력(일반 RS 3보다 훨씬 낮다) 경주차가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았다. 실제 주행해 보니 LMS는 놀랍기 그지없었다. 통행을 차단한 산길을 미친 듯이 달리는데, 조금 과장해서 제동을 아예 안 하는 줄 알았다.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5(PS5)를 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최근 애마 타이어를 PS5로 바꿨는데, 아무래도 엄청난 타이어를 산 듯하다. 내 차는 고작 190마력인데….

이후 일정은 최고급 라이프스타일 이벤트로 채워졌다. 고급스러운 경험은 미쉐린 브랜드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쉐린은 타이어를 단순히 자동차 부품으로 여기지 않는다.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재화로 생각한다. 타이어가 삶을 더욱 안전하게 지키고, 그로 인해 편안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MPE 프로그램에 포함된 라이프스타일 경험은 미쉐린 철학과 브랜드 가치의 최상급 표현인 셈이다.

팔자에도 없는 선상 파티를 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호텔에서 열 걸음만 나오면 만나는 마리나에서 커다란 요트에 올라타 모나코 앞바다를 가르는 꿈 같은 일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리 요트는 볼리유-슈흐-메흐까지 항해한 후 멈췄다. 왼편으로 길게 뻗은 르 쎄마포흐 반도만 지나면 니스였다. 볼리유-슈흐-메흐는 프랑스의 초호화 휴양지다.

해안가엔 숙박비가 1박에 수백만 원이 넘는 5성급 호텔이 즐비하고, 앞바다엔 그들의 손님일지도 모르는 요트 수십 척이 장관을 이뤘다. 선원이 닻을 내렸고, 본격적인 파티를 시작했다. 고기와 술을 내어오고, 흥겨운 음악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바다로 무작정 다이빙하고 보는 사람, 스노클링하는 사람, 패들 보트 타는 사람. 다들 각자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순서는 저녁 식사. 고대하던 미쉐린 가이드 미식 체험이었다. 미쉐린 가이드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가장 권위 있는 매체 중 하나다. 미쉐린이 추구하는 파인다이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예술과 같은 정교한 요리와 품격에 걸맞은 서비스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미쉐린 별을 받은 레스토랑은 요리의 맛뿐만 아니라, 식재료, 창의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전반적인 고객 경험까지 두루 만족스러운 곳으로 인정받는다.

이번 MPE 미식 레스토랑은 쎄또(Ceto)로 선정했다. 절벽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모습이 인상적인 메이본 리비에라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미쉐린 원스타 레스토랑이다. 지중해를 굽어보고, 모나코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테라스 전망이 비명이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이탈리아까지 시야에 들어와요.”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발견한 한 직원이 뿌듯한지 한 마디 건넸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나도 몰래 감상에 젖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이때가 딱 그랬다. 기대 이상의 호사였고 크나큰 행운이었다.

처음엔 콤부 해초와 함께 숙성한 참치의 깊은 풍미와 XO 소스의 감칠맛을 즐길 수 있는 전채 요리가 나왔다. 콤부는 일본 요리에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해초다. 앞서 커다란 숙성 참치덩어리를 테이블로 가져와 보여줬을 땐 꼭 스페인 햄 하몽같았다.

첫 번째 코스는 해상추를 사용한 라비올리에 랑구스틴이라는 작은 바닷가재가 속 재료로 들어간 요리였다. 근해에서 채취한 해상추만 쓰고, 감귤 향으로 비릿내를 잡았다. 두 번째 코스는 신선한 ‘오늘의 생선’과 함께 작은 해초를 곁들인 요리가 나왔다. “접시 위에 놓은 작은 생선 살만 보고 오늘의 생선이 무엇인지 알아 맞추는 분에게 소정의 선물을 드릴게요.” 미쉐린 관계자가 ‘절대 못 맞출걸?’하는 표정으로 깜짝 퀴즈를 냈다. 사전에 서버에게 오늘의 생선이 무엇인지 물어본 우리는 틀릴 수가 없었다.

대망의 마지막 코스는 향이 풍부한 샹테렐 버섯, 제철 야채로 곁들인 부드러운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로 장식했다. 바다를 테마로 한 요리로 가볍게 입맛을 돋우다가 마지막에 음식의 무게감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메뉴 구성이 흥미로웠다. 코스와 페어링한 와인 3종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서버의 친절한 음식 설명이 만족스러웠다. 내가 먹는 요리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 더 깊이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전시한 자동차 중 상당수가 사실상 개인 소장품이라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낮에 모나코 자동차 박물관에서 본 엄청난 자동차 컬렉션 얘기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모나코 자동차 박물관은 자동차 애호가이자 모나코 공작이었던 레니어 3세가 30년간 모은 개인 자동차 컬렉션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개인 소장품 보관소 성격이 짙었지만 1993년부터는 대중에게 개방했다.

현재는 희귀한 자동차를 100대 이상 전시 중이고, 클래식 자동차 가운덴 정말 보기 드문 희귀 모델도 여러 대 있다. 페라리 250 GT 카브리올레, 테스타로사, 람보르기니 미우라, 쿤타치, 메르세데스-벤츠 300SL 등 역사적 가치가 큰 스포츠카뿐만 아니라 모터스포츠 우승 경주차까지 잔뜩 늘어서 있었다. 모나코는 유서 깊은 F1 그랑프리 개최지다. 그래서인지 한때 모나코 공작이 F1 우승차라면 앞뒤 안 가리고 사들였다는 루머가 돌았다. 정말 여러모로 상상을 초월하는 나라다.

모나코에서 진행한 이번 MPE는 기술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미식을 통해 미쉐린이 어떻게 우리 삶에 의미를 더하는지 살펴보는 특별한 기회였다. 우리는 와인잔을 부딪치며 성공적인 여정을 자축했다. 누구도 그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도 종종 와인을 마시지만, 지구 반 바퀴를 날아와 유럽, 그중에서도 지중해의 보석으로 불리는 곳에서 사람들이 선망하는 슈퍼카를 타고 신나게 달린 뒤, 그것도 미쉐린이 인정한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와인 맛은 분명 남달랐다. 다시 MPE에 참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눈곱만큼의 아쉬움도 없는 시간이었다. 다시 그곳에 간다면 망설임 없이 같은 결정을 하겠다. “그때랑 같은 걸로 주세요.”

박지웅 사진 미쉐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