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피’가 아닌 ‘정책 패키지’
프랑스는 2013년부터 ‘프랑스 초고속망(France Très Haut Débit, PFTHD)’을 출발시켜, 전국 단위 광대역을 공공 재원과 민간 투자를 결합해 깔아온 대표적 정책국가다. 이 계획은 행정구역을 촘촘히 나눠 민간 주도 지역과 공공 주도 지역을 구분하고, 규제·보조·경쟁을 동시에 설계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표면적으로 한국과 유사해 보이지만, 프랑스는 인구밀도·지형·지방자치 재정 구조가 달라 배치 순서와 재원 조달이 다르게 설계됐다. ‘베끼기’라는 표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차이가 분명하다.

99.2% ‘접근 가능’의 의미
프랑스 정부는 2021년 말 기준 전국 가구와 사업체의 99.2%가 초고속망에 ‘접근 가능(passed)’ 목표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패스드’는 광섬유가 구내 또는 인근까지 도달해 연결이 가능한 상태를 뜻하지만, 실제 가입·개통을 의미하는 ‘일리저블’ 또는 ‘테이크업’과는 구분된다. 같은 시점 FTTH 기준으로는 약 70%대가 가입 가능한 상태로 보고됐고, 이후 2025년 중반에는 90%대 중반까지 확대되는 추세가 제시됐다. 즉, 커버리지 달성은 기술·재원·행정이 합쳐진 중간지표이며, 품질·접속·이용률은 별도의 과제다.

구리선 퇴장, 광섬유 상용화
프랑스는 구리 기반 ADSL·VDSL 망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FTTH로 전환하는 로드맵을 병행했다. 민간이 투자하는 고밀도 지역과 공공이 개입하는 저밀도 지역을 분리하고, 지역 공공망(PIN) 모델을 통해 민간 사업자가 상업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위성·고정 무선 등 기술 중립 원칙을 병행해 도서·산간의 공백을 메웠고, 최종적으로는 광을 기본축으로 상용화 속도를 끌어올렸다. 전환의 핵심은 ‘전국 동일 요금제’가 아니라 지역별 최적 기술 조합과 단계적 구리망 종료에 있었다.

한국 모델과의 닮은 점과 차이
한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 주도 광대역 확대, 시장 개방, 규제와 보조의 투트랙으로 초고속 인터넷 보급과 품질을 가파르게 끌어올렸다. 다중 사업자가 동일 건물에 진입하는 설비 경쟁, 도심-농촌 간 격차를 줄이는 보편 서비스 개념, 그리고 초기에 케이블·xDSL·광을 혼합해 속도 경쟁을 촉발한 점이 특징이었다. 프랑스는 출발이 늦었지만 지방정부의 재정 참여와 민간-공공 분할 모델로 단숨에 외연을 넓혔다. 결과만 보면 ‘한국을 따라했다’는 인상이 들 수 있으나, 재정·지형·도시 구조가 달라 설계 철학은 비슷해도 실행 수단은 각기 달랐다.

‘세계 2위’ 서사의 허상과 실체
프랑스가 단기간에 초고속망 보급·FTTH 커버리지에서 유럽 최상위권으로 올라선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을 베껴 10년 만에 세계 2위’라는 단정은 지표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별 비교는 ‘광 비중’, ‘가입 가구율’, ‘실사용 속도’, ‘지연·품질’, ‘도시-농촌 격차’ 등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순위가 바뀐다. 프랑스의 성취는 정책 패키지의 정합성과 일관된 재정 집행에 기반해 있고, 한국의 강점은 조기 보급·품질·경쟁 구조에서 비롯됐다. 요컨대 두 나라는 ‘같은 산을 다른 길로 오른’ 케이스다.

서로의 경험을 자산으로 만들자
초고속망은 단순한 통신 인프라가 아니라 데이터 경제, 원격의료·교육, 산업 자동화의 기반이다. 한국과 프랑스의 축적을 비교하는 일의 목적은 서열화가 아니라 정책 도구 상자의 확장에 있다. 구리망 종료의 질서, 공공-민간의 역할 배분, 품질·접속·이용률의 동시 관리라는 공통 과제를 더 정교하게 풀어가자.
좋은 정책은 서로에게서 배우며 더 나은 연결을 향해 진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