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앤트맨>이 현실로? 미래를 바꿀 게임체인저, 양자컴퓨터

인류의 복잡한 난제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양자컴퓨터. 이 혁신 기술이 가져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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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두 나라가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성명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양자컴퓨터’다. 미국, 호주, 영국의 공동 안보 협의체를 뜻하는 오커스(AUKUS) 동맹국들이 인공지능(AI)과 함께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일본과 협력한다는 내용이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도대체 양자컴퓨터가 무엇이길래 양국 정상들이 공동성명에 중요한 내용으로 발표를 할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양자역학 개념부터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양자컴퓨터라는 용어는 생소할 수 있지만 개념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익숙하다. 국내에도 팬이 많은 ‘마블’ 시리즈 영화 가운데 <앤트맨>이라는 작품이 있다. 순식간에 개미처럼 작아지거나 대형 빌딩만큼 커지는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활약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해 몸집을 키우거나 줄인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전자와 원자핵의 간격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면 이론상 크기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그러려면 전자보다 작은 미세한 세계, 즉 양자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황당한 소리 같지만 개념은 과학적이다.

독특한 양자 세계를 컴퓨터에 적용하다양자, 즉 퀀텀은 전자보다 작은 아주 미세한 미립자다. 보통 전자의 크기를 0.1나노미터(100억 분의 1미터)로 얘기하는데, 이처럼 작은 미립자는 일반적인 물체들과 달리 특이하게 움직인다. 쉽게 말해 종잡을 수 없는 형태로 움직이며 때로는 그 움직임이 겹치기도 한다. 이처럼 독특한 양자의 세계를 컴퓨터에 적용한 것이 바로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는 두 가지 초능력을 지녔다. 바로 중첩과 얽힘이다. 기존 컴퓨터는 0과 1 두 가지 비트값 중 하나를 선택해 결과를 만든다. 즉 0 아니면 1 둘 중 하나를 선택해 그 값에 해당하는 행동을 한다. 따라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여기에 0과 1이 겹치는 값도 표시할 수 있다. 즉 선택지로 0 또는 1 이외에 0과 1을 동시에 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를 바로 중첩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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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 현상은 여러 경우의 수가 내부적으로 연결돼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동전 2개를 던졌을 때 하나가 앞면이 나오면 나머지도 무조건 앞면이 나오는 현상이다. 세계적인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며 양자물리학의 얽힘 현상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사후에 많은 과학자가 이를 입증했다. 202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연구 주제도 얽힘 현상이다. 양자컴퓨터의 특성인 중첩과 얽힘 현상을 적절히 이용하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빠르게 처리해 기존 컴퓨터에서 불가능한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래서 양자컴퓨터에서는 속도 측정에 쓰이는 정보의 단위를 일반 컴퓨터와 달리 퀀텀 비트(Quantum Bit, 큐비트)라고 부른다. 양자역학의 특징인 중첩과 얽힘을 반영한 큐비트는 일반 컴퓨터의 비트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큐비트가 높을수록 양자컴퓨터의 속도가 빠르다.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다. 그는 1982년 컴퓨터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양자역학의 특징을 적용한 양자컴퓨터 개념을 제안했다.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데이비드 도이치 교수가 이를 뒷받침하는 ‘퀀텀 컴퓨터 이론’을 발표했고, 1994년 미국 MIT 수학과 피터 쇼어 교수가 양자컴퓨터의 알고리즘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인류를 구하는 슈퍼컴퓨터의 슈퍼컴퓨터
양자컴퓨터는 흔히 ‘슈퍼컴퓨터의 슈퍼컴퓨터’로 통한다.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들이 하기 힘든 계산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부터 국방까지 미래 예측에 관련된 계산에 주로 쓰인다. 예를 들어 가상의 적국이 핵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날아오는 미사일 궤적과 이를 막기 위해 어느 지점에서 요격해야 하는지, 태양흑점 활동에 따른 미래의 기상 예측과 농작물 작황 등을 계산할 수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가 환경오염, 자원 감소, 전염병 확산, 인구문제 등 인류의 오랜 난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방 분야에서는 보안이나 해킹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뚫리지 않는 암호체계를 만들어 데이터를 보호하거나 암호 통신에 활용이 가능하다. 이를 뒤집으면 그만한 보안 체계를 갖고 있지 않은 상대의 컴퓨터를 쉽게 뚫고 들어갈 수도 있다.

이쯤 되면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자컴퓨터 기술 협력을 논의한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한마디로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미래의 생존을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에 목을 매는 것은 미국, 일본만이 아니다. 영국 국방부도 2022년 영국의 오르카 컴퓨팅이 만든 양자컴퓨터 ‘PT-1’을 도입했다. 영국 국방부가 오르카의 양자컴퓨터로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암호해독과 보안, 군사용 AI 개발 등에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해 양자컴퓨터를 국가 신성장 전략 프로젝트의 하나로 선정해 2028년까지 50큐비트급 고성능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울산과학기술원 등과 협력해 양자컴퓨터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함께 지금의 통신망으로는 불가능한 양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유선 및 무선 중계기를 2026년까지 개발해 2036년부터 양자 인터넷 시범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양자컴퓨터, 누가 만들까?

당연히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전 세계 IT 기업들은 양자컴퓨터에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들었다. 구글은 ‘시커모어’라는 이름의 54큐비트급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데 이어 72큐비트급 양자컴퓨터도 개발했다. MS도 양자컴퓨터 기업 퀀티넘과 함께 양자컴퓨터를 개발 중이다.

IBM은 2016년 5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데 이어 2021년 127큐비트의 ‘이글’을 개발했다. 이어서 2022년 433큐비트의 성능을 지닌 ‘오스프리’를 발표했으며, 지난해 1121큐비트의 ‘콘도르’를 개발하며 1000큐비트의 양자컴퓨팅 시대를 알렸다.

최초의 모듈형 양자컴퓨터이자 양자 중심 슈퍼컴퓨팅 아키텍처의 초석인 IBM 퀀텀 시스템 투(IBM Quantum System Two). ©IBM

국내에서는 아이온큐가 양자컴퓨터로 유명한 기업이다. 노벨물리학상 후보로도 거론된 미국 듀크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김정상 교수가 메릴랜드대학교 물리학과 크리스토퍼 먼로 교수와 2015년 창업한 기업으로, 칼리지파크에 본사가 있다. 2021년 뉴욕 증시에 상장돼 기업가치가 16억7000만 달러(약 2조3000억원)에 이른다.

아이온큐에서 기술총괄(CTO)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물리학부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1992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 ‘단일광자 빔 발생장치 연구’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되며 양자컴퓨터 개발의 근간이 됐다. 덕분에 그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다.김 교수는 대학원 졸업 후 미국 벨연구소에 들어가 5년간 통신기술을 연구했고, 2004년 듀크대학교로 옮겨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먼로 교수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먼로 교수는 원자물리학 분야에서 양자컴퓨팅을 최초로 실험한 학자로 꼽힌다. 두 사람은 연구 분야가 겹쳐 2000년대 중반부터 공동 연구를 많이 했다. 그때 벤처투자사에서 일하던 먼로 교수의 제자가 두 사람의 논문을 읽어보고 창업을 권유해 아이온큐가 탄생했다.

이터븀으로 움직이는 독특한 양자컴퓨터
아이온큐가 주목받는 이유는 독특한 중앙처리장치(CPU)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의 CPU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연에 존재하는 원자를 이용하거나 반도체 제조 기술로 양자를 만드는 것이다.아이온큐는 이터븀이라는 희토류의 원자를 이용하는 독보적 기술을 개발했다. 이터븀은 희토류지만 작은 조각으로 양자컴퓨터를 가동할 수 있어 어디서 희토류 수출을 제한해도 지장이 없다. 동위원소 171을 사용하는 이터븀은 바늘 끝만 한 조각으로 양자컴퓨터에 필요한 원자 30~40개를 제공한다. 이터븀은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 나온다.

반면 반도체 기술로 양자를 만들면 극저온을 유지해야 작동한다. 일반 컴퓨터처럼 상온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양자가 주변 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온도뿐 아니라 지구자기장, 전자기 신호 등에도 취약하다. 즉 완전 밀폐된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중첩과 얽힘 현상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반도체 기술로 만든 양자컴퓨터는 전자회로가 간섭을 덜 받는 극저온 상태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극저온 상태를 만드는 장치 때문에 양자컴퓨터의 크기가 커진다.

아이온큐는 기존 반도체를 이용한 양자컴퓨터의 한계를 극복해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는 진공 용기에 이터븀 원자를 가두는 기술로 저온뿐 아니라 상온에서도 양자가 잘 작동하도록 했다. 더불어 저온 장치가 필요 없어 크기도 줄었다. 김 교수가 자체 개발한 이터븀 진공 용기는 가로세로 3 4cm 크기의 작은 상자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들어보면 묵직하다. 이터븀 진공 용기에 회로가 있고, 그 한가운데 원자가 있다. 김 교수는 현재 크기를 더 작게 만드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크기를 줄이면 비용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아이온큐에서는 ‘하모니’, ‘아리아’, ‘포르테’ 등 3종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 2018년 나온 하모니는 2020년부터 이용료를 받는 구독형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된다. 양자컴퓨터를 설치하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22년 기능이 개선된 아리아가 나왔고, 최신형 포르테는 지난해 공개됐다. 현대자동차 등 제휴사들이 아이온큐에서 운영하는 폐쇄형 클라우드에 접속해 포르테를 이용한다.

아이온큐 홈페이지에 소개된 포르테. ©ionq.com

아이온큐의 양자컴퓨터 성능은 어느 정도일까. 구글이 2019년 공개한 양자컴퓨터 시커모어의 처리 능력은 53큐비트다. 구글은 시커모어가 슈퍼컴퓨터에서 1만 년 걸리는 문제를 200초 만에 풀었다고 발표했다. 아이온큐의 포르테는 발표 수치가 29~32큐비트다. 그러나 김 교수는 미국 양자컴퓨팅산업선도기업연합(QED-C) 성능 평가 등에서 아이온큐가 가장 앞선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자컴퓨터는 논리 게이트를 그때그때 만들어 양자 정보를 계속 이동시켜야 한다”라며 “다른 업체들의 양자컴퓨터는 논리 게이트를 바로 만들 수 없어 오류가 쌓이면서 발표 수치와 달리 10큐비트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현대자동차,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 미국 GE 연구소와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등이 아이온큐의 양자컴퓨터를 이용한다. 현대자동차는 자율주행 기술을, 에어버스는 항공기에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방법론을 아이온큐의 양자컴퓨터로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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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의 양자컴퓨터, 언제 나올까양자컴퓨터가 누구나 사용하는 대중화 시대를 열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가장 큰 난제는 ‘까다로운 환경’이다. 핵심인 CPU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온도, 소리, 열, 전자기파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밀폐된 공간을 만들어서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극저온 상태를 만드는 장치 때문에 덩치가 커진다. 이처럼 환경에 민감하다 보니 큐비트를 향상시키기 위해 CPU 숫자를 늘리면 오류가 함께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양자컴퓨터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

반면 김 교수처럼 양자컴퓨터 대중화가 머지않았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실제로 그는 듀크대학교 연구실에서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데스크톱 PC 크기의 양자컴퓨터를 사용한다. 그는 극저온 환경에서 벗어나 상온에서 작동하는 양자컴퓨터가 많이 등장하면 스마트폰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양자컴퓨터 시대도 머지않을 것으로 본다.

이런 난제에도 불구하고 양자컴퓨터가 AI와 결합하면 대변혁을 불러올 수 있다. 김 교수는 “양자컴퓨터와 AI가 접목하면 많은 분야에서 기존에 상상하지 못한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ㅣ 덴 매거진 2024년 7월호
글 최연진(한국일보 IT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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