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5,570만원짜리 포르쉐 타이칸 4S를 보고 있었다.
같은 시간, 기아 EV9 GT-Line 4WD는 8,849만원이다. 차이가 6,721만원이다. 둘 다 전기차다. 둘 다 프리미엄이다. 그런데 이 6,721만원이 사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
포르쉐라는 이름은 분명히 다른 가격을 요구한다. 하지만 기아 EV9이 그 차이에 무엇을 돌려주는지 숫자로 따져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

530마력 vs 384마력, 그 차이가 6,721만원인가
포르쉐 타이칸 4S는 530마력을 낸다. 오버부스트 기준 듀얼모터 AWD 시스템으로, 0-100km/h 가속 시간은 3.7초다. 전기 스포츠 세단이 내세울 수 있는 수치다.
기아 EV9 GT-Line 4WD는 384마력이다. 전륜 160kW, 후륜 160kW 듀얼모터 구성이다. 스포츠카 수준의 가속을 목표로 설계된 차가 아니다. 7인승 대형 전기 SUV로서의 역할이 분명히 다르다. 마력 차이 146마력이 6,721만원의 이유가 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일상 고속 주행과 합류 구간에서 384마력은 충분히 강하다. 스포츠카가 필요한 상황과 SUV가 필요한 상황은 애초에 다르다.
타이칸은 4인승, EV9은 7인승
포르쉐 타이칸 4S는 스포츠 세단이다. 2열 4인승 구조로 설계됐고, 후방 공간이나 짐칸 크기는 스포츠 세단의 한계 안에 있다.

EV9 GT-Line 4WD는 7인승 대형 SUV다. 3열 좌석이 있고, SUV 특유의 높은 착좌감과 넓은 실내를 가진다. 가족 단위 이동, 장거리 여행, 대형 짐 운반에서 두 차가 만드는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같은 전기차라는 공통분모 외에 두 차가 지향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그 방향의 차이가 6,721만원에 담겨 있는지, 아니면 포르쉐 엠블럼에 담겨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의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을 수 있다.
주행거리 561km vs 439km
타이칸 4S의 주행거리는 WLTP 기준 561km다. 유럽 측정 기준이며, 국내 실제 환경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EV9 GT-Line 4WD의 국내 복합 공인 주행거리는 439km다. 대형 7인승 SUV로서 439km는 충분히 실용적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넉넉하게 커버하는 거리다. 타이칸이 주행거리에서 앞서는 건 맞지만, 122km 차이가 6,721만원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빠르게 확충되는 환경에서 이 차이는 갈수록 의미가 줄어든다.
EV9만의 실용 기능
EV9 GT-Line 4WD는 V2L(차량 외부 전원 공급) 기능을 지원한다. 캠핑이나 비상 상황에서 차를 전원 공급 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 최대 3.6kW 출력으로 가전제품 구동이 가능하다. 타이칸에는 없는 기능이다. 7인승 SUV와 V2L의 조합은 가족 단위 사용자에게 실질적인 이점이다.
충전 규격 면에서도 EV9은 최대 350kW 충전을 지원한다. 국내 충전 인프라 여건에서 빠른 충전이 가능하다. 타이칸 4S가 최대 270kW 충전을 지원하는 것과 비교해 EV9이 불리하지 않다.

브랜드값 6,721만원의 무게
포르쉐 타이칸은 명백히 다른 경험을 준다. 도로 위 존재감, 포르쉐 엠블럼, 3.7초 가속이 주는 물리적 감각. 도로에서 타이칸을 마주치는 순간의 느낌이 다르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이 브랜드 경험에 1억5,570만원을 납득하는 구매자라면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EV9 GT-Line 4WD로 8,849만원을 쓰고 나머지 6,721만원이 남는 시나리오도 있다. 7인승 SUV에 384마력, 국내 공인 439km, V2L 기능까지. 일상 이동, 가족 여행, 고속 합류 모두 부족함 없이 커버하면서 6,721만원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같은 예산, 다른 선택
EV9 GT-Line 4WD는 8,849만원. 포르쉐 타이칸 4S는 1억5,570만원(포르쉐 코리아 공식 가격 기준). 두 차가 겨루는 항목이 다르다.

포르쉐 전기 스포츠 세단의 드라이빙 경험을 원한다면 타이칸이 맞는 선택이다. 7인승 대형 전기 SUV에 6,721만원을 아끼고 싶다면 EV9 GT-Line이 있다. 이 숫자를 한 번도 나란히 놓고 보지 않았다면, 아직 선택을 끝낸 게 아닐 수 있다. 나라면 그 6,721만원이 어디로 가는지 한 번은 더 생각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