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K증시 오명 벗을까…밸류업 공개에도 증권가 ‘시큰둥’

수익성·주주환원 중점 100개 종목 선정, 선반영·차익실현 등 변수 산적
ⓒ르데스크

저평가된 한국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준비했던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공개됐지만 당장 주가 부양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선 의구심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수익성과 주주환원을 중점에 두고 100개 종목을 선정했지만 당장 한국 증시의 주가를 부양할 만큼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주가 부양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상장기업의 자발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이지만 정작 밸류업 지수에 선정된 기업 중 밸류업 공시를 한 곳은 7개에 그친다. 오히려 밸류업 지수에 선정될 것으로 기대됐던 종목이 빠지면서 이로인해 단기간 한국 증시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선 밸류업 지수 개발에 그치지 않고 시장에 우호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거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도입하는 등 반시장적인 투자 정책부터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일관성없는 정책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여 투자를 꺼리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베일 벗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 11월 초 ETF·지수선물 상장 예정

한국거래소가 24일 공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는 100개 기업이 선정됐다. 거래소가 공개한 지수선정 기준은 △시장대표성(시가총액·거래대금·유동비율) △수익성 △주주환원 △시장평가 △자본효율성 등이다.

시장대표성은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시가총액 400위 이내 기업이며, 수익성은 최근 2년 연속 적자기업 또는 최근 2년 손익 합산시 적자 기업은 제외된다. 주주환원은 최근 2년 연속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을 실시해야 한다. 시장평가는 최근 2년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 산업군별 순위비율 상위 50% 이내 또는 전체 순위비율 상위 50% 이내다.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다만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조기에 공시한 기업들은 수익성, 시가총액 순위, 유동성 등의 최소 요건만 충족하면 최우선적으로 편입시켰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조기에 공시한 12개 종목 중 메리츠금융지주, 키움증권, DB하이텍 등 3개 종목은 특례없이 지수에 편입됐다. 반면 콜마홀딩스는 수익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편입되지 못했고 에프앤가이드와 에스트래픽, 디케이앤디, DB금융투자 등은 시가총액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제외됐다.

밸류업 지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업종은 정보기술 분야다. 24종목이 편입됐다. 뒤를 이어 △산업재(20종목) △헬스케어(12종목) △자유소비재(11종목) △금융/부동산(10종목) △소재(9종목) △필수소비재(8종목) △커뮤니케이션(5종목) △에너지(1종목) 순이다.

시장별로는 코스피 시장에서 67개 종목, 코스닥 시장에서 33개 종목이 포함됐다. 시가총액 비중 기준으로는 코스피 편입 종목 시총이 95.3%, 코스닥 편입 종목 시총이 4.7%로 월등한 차이를 보였다.

밸류업 지수가 한국 증시 내에선 우수한 종목을 선별한 만큼 기존 코스피나 코스닥 지수에 비해선 양호한 수익률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최근 5년 기준 밸류업 지수 수익률은 43.5%다. 코스피200 수익률(33.7%)보단 9.8%p, KRX 300 수익률(34.3%)보단 9.2%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소는 오는 30일부터 실시간 지수 산출을 개시하는 한편, 오는 11월 중에는 지수선물 및 ETF를 상장할 예정이다. 또 기업들의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 독려를 밸류업 공시기업 및 표창기업들에 대한 우대방안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밸류업 지수, 증권가 엇갈린 반응…“지수 자체는 긍정적, 증시부양 효과는 글쎄”

증권가에선 밸류업 지수를 도입한 데 대해선 한국 증시에 긍정적인 변화라고 입을 모았지만 이로 인한 증시 부양 효과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미 올해 초부터 밸류업 지수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증시에 선반영된 만큼 주가가 눈에 띄게 오르긴 힘들거라는 설명이다.

특히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게 기업 경영진의 주가 부양 의지인데, 자발적으로 밸류업 공시에 나선 곳은 극소수에 그친다는 점에서 밸류업 지수 도입 이후 실질적인 주가 부양으로 이어지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실제 이번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100개 기업 중 밸류업 공시에 나선 기업은 7곳에 불과하다.

▲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한국거래소는 밸류업 공시를 예고한 기업들이 20여개에 달하고, 아직 공시하지 않은 기업도 이번 지수 발표를 계기로 공시에 나설 거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밸류업 지수가 이미 발표된 상황에서 뒤늦게 공시하는 건 등 떠밀려 발표한 모양새다 보니 투자자들 사이에선 의구심어린 반응이 나온다. 기업의 주가부양 의지가 희석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밸류업 지수가 주가를 올리는 게 아니라 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가치가 올라야 주가가 오르는 것이다”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밸류업 공시에 참여하고, 주가 부양 성과를 시장에 어필하는 등의 노력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밸류업 지수 발표를 기점으로 주가가 단기간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밸류업 기대감이 선반영된 상황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밸류업 지수 ETF와 선물 출시 시점이 주가의 향방을 결정할 거라는 분석이다.

밸류업 지수만으론 한국 증시 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있다. 국내 증시 부양을 위해선 해외 투자자와 큰 손으로 불리는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자금 유입이 필수적이지만 밸류업 지수만으로 한국 증시가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해외서 바라보는 한국 증시는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곳이란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에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투자 관련 정책이 수시로 변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공매도 전면 금지를 시행한 데 이어 주가부양과 정반대되는 금투세의 폐지 여부조차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부가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다보니 한국 증시를 향한 해외 투자자들의 시선이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도 금투세와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지만 정부가 금투세를 도입할 지 폐지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거래소 입장에서 금투세는 시기적으로 도입하기에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며 “증시가 건강하게 떠받쳐줘야 가능한데 국내 증시는 금투세를 도입하기에 아직 체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