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여행’, ‘조금 깊은 사랑’ 같은 명곡으로 90년대 발라드 전성기를 이끌었던 가수 원미연.
무대 위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디바였지만, 인생의 무대에서는 조금은 서툴고 조심스러운 한 여인이었다.

그런 그가 남편 박성국을 만난 건, 우연 같으면서도 운명 같은 일이었다.

1996년, 부산 교통방송 개국과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마이크를 잡게 된 원미연.
서울에서 살던 그녀는 매주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그곳에서 방송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6살 연하의 박성국을 처음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은 그저 “안녕하세요” 정도의 인사를 나누는 직장 동료였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낯선 부산에서 방을 구해야 했던 원미연이 박성국에게 조심스럽게 도움을 청했을 때였다.

“도와줄 수 있냐”는 원미연의 말에 박성국은 다음 날, 공책 가득 적힌 자료를 건네왔다.
방송국과의 거리, 교통편, 월세, 주변 환경까지 세세히 정리된 리스트.
함께 집을 보러 다니며 “여긴 치안이 불안해 보여요”, “수도 물이 탁하네요”라며 자기 집을 고르듯 꼼꼼히 살피던 그의 모습에 원미연은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엔 묘한 ‘썸’이 시작됐다.

직장 동료 이상의 관계로 가까워졌지만, 6살이라는 나이 차와 가수와 방송국 직원이라는 위치 때문에 두 사람은 쉽게 마음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던 2003년 추석 무렵, 원미연의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폐혈증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원미연은 본능적으로 박성국을 찾았다. 함께 병실을 찾은 그는 아버지 앞에서 용기를 내 말했다.

“아버지, 저 이 사람과 결혼하려고 해요.”

살고자 하는 희망을 드리고 싶어 내뱉은 말이었다.
아버지는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박성국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내가 못 일어나면… 우리 미연이를 잘 부탁하네.”
그 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숨에 ‘썸’에서 ‘운명’으로 바꿔놓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박성국은 묵묵히 장례를 도맡아 챙겼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건넨 한마디.
“원미연 씨, 우리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 순간 원미연은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야죠.”
짧은 대답이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대답이었다.
재미있는 건, 결혼을 약속하기 전까지도 서로를 ‘원미연 씨’, ‘박성국 씨’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애인처럼 “자기야” 대신 여전히 존댓말을 쓰던 사이. 그래서인지 더 오래, 더 단단하게 이어질 수 있었다.

2004년 6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고 이듬해 딸 유빈이를 품에 안았다.
결혼 후에도 원미연은 가수 활동과 라이브 카페 운영을 이어갔고, 박성국은 방송국에서 일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결혼을 오래 생각하다간 남편이 도망가버릴까 봐 바로 승낙했다”는 원미연의 솔직한 고백처럼, 두 사람의 사랑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진심 하나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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